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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詩세계

윤동주

작성자김명|작성시간10.11.02|조회수112 목록 댓글 0

윤동주(尹東柱 1917~ 1945)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출생하여 연회전문 문과를 졸업하였고 일본 교토 동지사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39년 산문「달을 쏘다」를 '조선일보'에, 동요「산울림」을 '소년'에 발표하였으며 1941년 자선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1943년 독립운동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구주 복강 형무소에서 옥사한 후 유작「쉽게 씌어진 시」가 경향신문에 발표되었으며 유고전집「하늘과 밤과 별과 시」가 간행되었다.

 

 


 

  시인 윤동주는 1917년에 북간도에서 태어나 1945년 2월에 일본 감옥의 차디찬 바닥에서 조국의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28세를 일기로 요절한다.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지성인으로서 암담했던 조국과 일제의 탄압에 신음하는 민족의 고통을 알면서도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부끄러움의 성찰 즉, 자기 반성이 지배적 정서를 이룬다. 또한, 시인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영혼의 순결함도 엿볼 수 있다.

  시인 윤동주의 문학은 우리 문학사의 암흑기에 시작되었다. 그는 1936년부터 창작을 시작했지만, 그의 주된 작품들의 창작 시기는 1941년 이후이다. 대표적인 작품 <서시>를 비롯해서 <별 헤는 밤> <길> <십자가> <새벽이 올 때까지> 등이 모두 그렇다. 그의 시는 서정적이고 감각적이며 겸허하기까지 하다. 대화의 상대를 높이는 존대어가 많이 쓰이며, 하늘, 바람, 별들 외에도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사물들이 시적 소재로 많이 쓰인다. 다른 문학인들의 잇따른 친일과 변신은 우리 문학의 암흑을 한층 두텁게 했으며, 그러한 시기에 용기와 신념, 그리고 타고난 시인으로서의 천명을 다해 아름다운 언어의 목소리로 우리의 내면에 침전하고 있던 삶의 의지와 저항의 목소리를 일깨웠던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차디찬 감옥의 공간에서 암울하고 서글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시와 행동을 일치시켜 식민 조선의 지식인으로서 아름답고 고귀한 삶을 살다 멀리 후쿠오까 형무소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시인 윤동주의 보석 같은 시를 되뇌며 우리는 늘 그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문학 속에 있는 시인이 시인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학 안에 있는 윤동주의 삶을 보며 스스로를 반성하고 또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늘 자신을 돌아봤던 겸손한 시인. 윤동주의 삶과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그의 삶을 가슴 속에 담아보려 한다.
  1941년, 연희전문 졸업반이었던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자작시집을 발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검열을 염려한 스승의 만류로 출판을 포기한다.
  우리가 잘 아는 "서시(序詩)"가 바로 그 시집의 서문에 해당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 윤동주는 서시에서처럼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도록 하고자 괴로워 했으며",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는 소명의식과 결의"로 28세의 짧은 삶을 끝마친다.
  이처럼, 서시는 시인으로서, 식민지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윤동주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 모두 반영되어 있다.


  윤동주는 1941년 5월부터 11월까지 서시, 별 헤는 밤, 십자가, 또다른 고향 등을 창작하였다.
  "별 헤는 밤"에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다"고 말하였는데, 가을은 우수와 명상의 계절로, 당시 우리 민족에게 근심과 걱정의 우울한 계절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한다"고 하였는데, 밤이란 어둠이고, 두려움이며, 암담함이다. 바로 우리 민족이 감당해야 했던 길고 긴 어둠의 터널, 일제강점기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시의 화자는 스스로 부끄러워 했다.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보고 남녀노소 만백성이 울분을 감추지 못하건만, 지식인이 되어서 조국과 민족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을 부끄러워 한 것이다.
  그러나, 윤동주의 시는 후회하고 반성하며 추락하는 시가 아니다. 그의 시 후반부에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것이다"라고 노래함으로써 확신에 찬 의지와 믿음으로 용솟음치듯 반전을 이룬다. 그렇기에 그의 시가 일제 강점기하의 저항시로 주목을 받는 것이다.
  "또다른 고향"에서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라고 노래함으로, 무기력한 자아에 대한 부끄러움과 성찰을 거듭하고 있으며,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라고 말함으로 어둠이 상징하는 일제강점기하에 있는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과 안타까움에 부끄러워 한다.
  그리고 "십자가"에서는 "괴로웠던 사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피를 흘리겠다"며 화자는 몸부림치며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
  이처럼 시대적 양심과 반성 그리고 성찰의 시인 윤동주는, 시집 출판이 좌절되자 일제에 대한 자책감과 울분을 격정적인 어조로 표현하였는데, 그 작품이 바로 "간(肝)"이다.
  윤동주는 "간"에서 "내가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하고 울부짖으며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라고 시대적 울분을 토로하였다.
  윤동주가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기 앞서 조국 땅에서 마지막으로 쓴 시가 "참회록"이다. 참회록은 말 그대로 자기 생활을 뉘우쳐 고백한 기록을 말한다.
  그렇듯이 윤동주는 "참회록"에서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욕되다" 라고 부끄러워 하며,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하고 자책을 한다.
  그러나 화자는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지금의 부끄러운 고백을 참회해야 한다"고 하며 부끄러움은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 부족임을 인식하고, 조국 광복을 확신한다.
그리고 "밤이면 밤마다 거울을 닦아 보자"고 하며 결의를 다진다.
  윤동주는 1942년 일본에 유학하여 "쉽게 쓰여진 시"를 쓴다. "쉽게 쓰여진 시"는 시인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 중 하숙방에서 쓴 시로,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성찰을 통한 미래에의 신념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암울한 상황을 뚫고 찬란히 부활하는 순간에의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고 표현함으로 하숙방의 비좁기만한 공간을 화자가 처한 역사적 현실 즉, 조국의 식민지 상태를 은유하였다.
  또,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라고 노래함으로 화자는 조국의 암담한 현실상황과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 부모님이 어렵게 보내준 학비로 그런 현실과는 동떨어진 학문(공부)를 해야만 하는 것에 좌절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등불을 밝혀 어둠을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린다"고 말하므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이렇듯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말과 글이 빼앗기고 우리들의 민족혼이 모두 말살된 때에 윤동주는 끝까지 우리 시를 지켰다. 윤동주가 그런 환경 속에서 썼던 시들은 아름답다 현실을 초월해서 인간의 내면의 고요한 세계를 더듬어 갔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동시에서 엿볼 수 있다 그의 따스한 마음과 인간의 깊은 정신을 추구하는 기독교적인 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세계는 깊은 수렁 속에서 민족의 슬픈 모습도 그렸다
  다시 말하면 윤동주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는 이 때의 시의 정신은 기독교적 의식과 민족주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는 단순한 민족정신이 아닌 보다 더 큰 도덕가치관으로 일제 암흑기를 살아간 시인이며 시대적 고뇌를 거칠고 폭력적인 혁명이 아니라 연속에서 곱게 여과하여 애틋하고 한 맺힌 감정으로 시를 썼다 시를 씀으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란 생각을 지렛대 삼아 물과 바람 그리고 구름 별 달과 해로 비유될 수 있는 넉넉한 화해의 정신을 기반으로 해서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하늘에 그의 시를 통해서 시대의 고뇌와 부끄러움 슬픈 자아를 하늘에 일체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두고 단편적으로 윤동주가 저항시인이냐 아니냐 하며 따지는 문제는 어찌 보면 불필요한 논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은 존재론적 고뇌를 아름다운 서정으로 이끌어 올림으로써 우리에게 따뜻한 위안과 아름다운 예지 그리고 자신의 힘을 일깨워준다
  "쉽게 쓰여진 시는" 시인 윤동주가 쓴 최후의 시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는 그 다음 해인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된다.
  이처럼, 시인 윤동주는 스물여덟의 짧은 삶을 마감하기까지, 일제에 강점되어 신음하는 조국과 민족의 아픔에 괴로워했으며, 신음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뭔가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반성 그리고 다짐을 반복하며 별처럼 노래하다 별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은, 시인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낸 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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