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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詩세계

임화 시인

작성자김명|작성시간10.11.02|조회수835 목록 댓글 0

임화 시인[1908~1953〕

 

 

190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보성중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7년 <조선지광>에 '화가의 시'를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 시집 <현해탄>이후 <찬가>등의 시집과 평론집 <문학의 논리>를 간행하였다. 카프, 조선문학건설본부,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였으며 1947년 월북하여 1935년 처형되었다. 

 

 


 

  1. 임화의 시를 읽는 관점

  임화는 1908 10월 13일 서울 낙산에서 출생하여, 1921 보성중학에 진학하여 1925 졸업직전에 중학교를 중퇴하였다. 1926년 12월경 카프에 가입하여, 1927 임화(林和)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임화는 「현해탄」,「찬가」, 「회상시집」, 「너 어느 곳에 있느냐」등의 시집을 남간 한국의 대표적인 프로시인이지만 그의 문학사적인 위치는 시인으로서보다는 비평가, 문학사가 운동가 등으로서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1925~1935)의 서기장을 지낸 만큼 그는 가장 급지적인 계급문학론을 펼치면서 카프 내의 인사들과 지속적인 논쟁 속에서 문제적인 평론을 발표했다.

  더욱이 그의 평론은 프로문학운동 뿐만 아니라 김기림 등 모더니즘 계열의 인사들과는 꾸준히 논쟁을 해 나갔다. 그의 평론은 좌우파를 가로질러 식민지 한국 근대비평사의 핵심적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중심에서 격정적으로 살았던 식민지 조선의 문단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 중 하나인 임화가 남긴 시를 읽는 재미는 무엇보다도 임화라는 한 개인의 내면을 읽는 데에 있을 것이다. 상당이 격정적이고 낭만적인 그의 시는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활동한 지식인의 내면을 투명하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생애는 식민지 시대의 다른 문인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게 알려진 편이다

  그가 중퇴한 보성중학이 불에 타 학적부가 유실되었을 뿐 아니라 북에서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그의 전기를 구성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들이 상당부분 빠져있다. 이런 사정을 강조한다면 그의 시를 통해서 그의 내면을 더듬어 가는 일은 다른 시인들의 경우보다 더 각별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임화의 시를 임화라는 개인의 문제적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한국 현대시사 자체의 맥락에서 읽어 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카프시들은 생경한 구호나 감상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카프 계열의 시들을 단순히 평가절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카프계열의 시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간단하지 않다면 그 중 임화의 시가 차지하는 자리 또한 소흘히 처리할 수 없는 곳이다.

  그의 시세계는 카프계열의 시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뛰어나다. 이 글은 이러한 관점에서 임화의 시를 몇 가지 단계로 나누고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 양상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임화 시의 전개 과정

  기존의 임화 연구들은 임화의 대략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로 나누어 이해하는 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첫번째 단계는 처음 발표한 시「무얼 찾니」(1926)에서 「지구와 빡테리아」(1927)에 이르는 기간이다. 이 기간은 가출 소년 임화가 노동 계급적 세계관에 의탁하기 이전까지 거쳤던 정신의 정처들을 보여준다. 감상적 허무주의와 다다이즘 등에 경도되었던 시절에 씌어진 시들이다.

  두번째 단계는 이북만의 일본어 번역으로 일본 프로예술연맹에서 낸「프로레타리아 예술」(1927)에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한 프로시 지향의 완성기이다.

  세번째 단계는 1929년에서 1933년에 이르는 동안으로 이른바 '단편서사시'계열의 시들을 발표하는 동안이다.

  네번째 단계는 1934년 카프 2차 검거 시기로부터 1939년 시작을 중단하기에 이르는 동안이다. '밀려오는 군국파시즘의 폭압을 어떠한 조직적 연관도 미래에의 과학적 전망도 없이 오로지 하나의 개별자로서 감당해야 했던 임화는 거의 자학적이라 할 수 있는 실존의 고투와 흔들림이 고스란히 담겨진 시편들"이다. 임화의 시는 총 100여편을 조금 웃도는 정도인데 이 중에서 53편이 이 시기에 발표되었으며 그의 시들중 가장 많은 양의 작품들이 이 시기에 씌여진 셈이다.

  다섯번째 단계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1년에 이르는 동안이다. 이 글에서는 초기 임화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첫 번째 단계와 단편 서사시 계열의 시를 발표한 세번째 단계 그리고 암담했던 일제 말기의 내면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네번째 단계를 중심으로 그의 시세계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1)"회화에서도 도망한 예술가"

  '어느 청년의 참회' (문장,1940)는 그가 자신의 생애에 대해서 남긴 기록 중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료이다. 여기에는 그가 마르크시즘에 몸을 기대기 이전에 어떤 지적 편력을 지녔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등 동안 高橋新吉이란 이의 시집을 사읽고 어느틈에「따따이즘」이란 말을 배웠습니다. 一氏義良이란 이의 未來派硏究란 책...(중략)...한-
  연전부터 공부하든 양화에서 그는 이런 신흥예술의 양식을 시험할만 하다가
  우연히 村山知義란 사람의 '금일의 예술과 명일의 예술'이란 책을 구경하고 열왕했습니다/그때로부터 그는 낡은 감상풍의 시를 버리고.
  「따따 」풍의 시작을 시험했습니다
  -「어떤 청년의 참회」중에서

  이러한 그의 고백과 가장 잘 합치하는 시는 다음의 시일 것이다.

  암만해도 나는 회화의 조망한 예술가이다/미래파-공적이고 란조미의 추구/그것도 아니다 결코나의 그림은 미술이못되니까-/ 하마트면 또는 1917년 10월에 일어난 병정의 행열과동궁오후3시와 9시사이를 부조하고 있을 지도 모를 것이다/ 사랑할만한 '아카데믹'의 유위한 청년의 작품이-/오오 나의 그림은 분명히 나를 반역했다/그러고 새롭은 나를 강요하는 것이다/뺑기-냄새를 피우고 핏냄새를 달낸다/그리할것이다 나는 이후부터는 총과 마차로 그림을 그리리라
-「화가의 시」중에서

  위 시에서 생각해 볼 만한 것은 초기 임화에게서 다다 계열의 예술세계가 자는 의미이다. 자기 선언적인 다짐을 단호하게 내리고 있는 위 시에서 '회화'는 곧 '란조미'를 추구하는 '미래파'의 회화로 대표할 수 있는 다다이즘 예술을 지시한다.
  그렇다면 임화는 '다다'를 문학세계에서 경험한 것이 아니라 회화라는 영역에서 경험한 셈이다.

  이러한 사정은 임화의 개인적인 특수성에서 비롯했다기 보다는 당시 서양화단의 사정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후에 임화가 '다다'를 부정과 비판의 기호 정도로 회고하고 있는 데서 알수 있듯이 아직 마르크시즘이 체계적으로 소개되기 이전에 현실에 비해서 비판하고 저항할 수 있는 예술 세계를 꿈꾸는 자들에게 다다풍의 세계의 적지 않은 호감의 대상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화자는 기존의 "아카데믹"의 유위한 청년의 작품"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1917년 10월에 일어난 병정의 행열"이란 러시아 10월 혁명을 지시하는 바 이후 그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 이로부터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초상(肖像)」이나 「혁토(赫土)」와 같은 작품도 이와 같은 계열에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는데 모두 그가 몸담고 있던 다다이즘이라든가 서향화 등을 지양하고 대신 이후 자신이 지향할 미학적 세계들을 선언적으로 밝히고 있다.

  초기 임화에게 있어서 '다다'게열의 예술은 초기 임화의 감상적인 시들이 '프롤레타리아시'로 빠르게 변화할 수 있었던 매개적 역할을 하는 의의를 지닐 뿐이다.

  2)단편 서사시

  임화가 시인으로서 유명하게 된 계기는 「네거리의 순이」,「우리 오빠와 화로」,「우산밧은 요꼬하마의 부두」등 소위 '단편서사시' 계열의 작품들을 발표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단편서사시'는 임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시단의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1927년 목적의식론의 전개이후 발표된 대부분의 프로시는 현실과 문학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감정과 의욕만 앞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이들 시는 시인의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작품에 노출시키면서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만을 덩그라니 내놓은 경우가 허다했다. 즉 이 당시의 프로시는 시의 양식적 특성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그 내용의 선동 선전성과 작가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정당성 여부만 문제삼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점차 예술적 진실의 탈각,대중성의 약화 등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임화가 고안한 단편서사시라는 시 형식은 이러한 상황에서 씌어진 것이다. 이 단편서사시는 「담(曇)-1927」이래 자신이 해오던 일련의 실험을 일단락 지은 것으로 강력한 계급의식 표출과 대중성 획득이라는 동시대 프로시의 두 가지 당면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임화의 단편서사시는 대체로 「젊은 순라(巡邏)의 편지」(「조선지광」1928)에서 시작하여 1929년에 집중적으로 발표하면서「양말 속의 편지」(조선지광,1930)를 끝으로 절정을 넘어선다. 볼과 1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집중적으로 발표된 것이지만 단편서사시는 발표 당시부터 큰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동시대 의 대표적 형태로 자리잡았으며 이후 수많은 아류를 만들게 되었다.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든 오빠의 거북문 이질화로가 깨여졌어요/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이가/지구에 해가 비친 하로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민 이화로가 깨여졌어요.

  그리하야 지금은 화 적가락만이 불상한 영남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가 나란히 걸렸어요

  ...(중략)...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어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오빠는 파란 얼골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든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웨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단배 연기로 방속을 미워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었에요/ 천정을 향하야 긔여올가가든 외줄기 담배 연긔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백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에요/ 그리하야 제가 영남이에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었을 동안에/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바루르 밟는 거치른 구두소리와 함께 -가버리지 안으섰어요

  ...(중략)...

  화로는 깨어저도 화적갈은 깃대처럼 남지 안어에요/우리 오빠는 가섰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이고 있고 /그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듯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즉도 더웁습니다
-「우리 오빠와 화로」중에서

  위 시는 "누이동생과 아우", "오빠" 세 남매의 가족 이야기를 주요 모티프로 하고 있다. 항상"신문지 냄새"가 나는 "오빠"와 "제사기를 떠나서 백장의 일전짜리 봉투에 손톱을 뜨러트리"는 "누이동생"과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투 꽁무니를" 무는 막내 "영남이"가 이 가족의 전부이다. "오빠"가 감옥으로 끌려간 후"누이동생과 아우"가 남아서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동무"가 되어 투쟁 속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3)암담한 일제 말기 지식인의 내면 보고서

  1934년 무렵부터 임화는 내적 또는 외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우선 자신이 몸담고 있던 카프는 1934년 박영희,신유인의 전향성명과 탈당계 제출로 일차 내용을 겪고,6월엔 세칭'신건설사사건'으로 대대적인 검거를 당해 맹원의 상당수가 투옥되는 등 사실상 와해 단계에 이르게 된다. 결국 카프는 이듬해인 1935년 7월 김남천,김기진과 함께 카프 해산계를 제출한다. 이로써 카프는 10년 만에 그 깃발을 내리고 이해 12월에 풀려난 맹원들은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개별화 고립화의 길을 걷게 된다.

  1937년에 일본의 미나미 총독의 부임과 함께 내선일체,병참기지화 정책이 강제되기 시작했고,상상범보호관찰령 등으로 국내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민족운동도 원천봉쇄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더욱이 임화는 이 시기 폐결핵을 앓았다. 임화는 이 폐결핵을 이유로 조직사업에서 손을 놓고 요양을 위해 병원을 전전한다. "병석에서 카프의 패산을 맞는 임화의 비감한 심정으로부터 쓰여지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 임화의 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더우기 옳은 희망을 실천한다는 것은.../그러나 희망을 버린다는 것은 일층 더 어려운 일이다/비록 죽엄이 일체를 무덤 속에 파묻는 때라도...
-「단장」중에서

  1930년대 후반의 시점에서 위 시의 1연과 같은 시적 진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사정은 우선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시행의 길이가 앞서의 단편서사시 계열의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은 것과 밀접히 연관되어 이다. 단펴너사시 계열의 시들은 타자들의 서사를 통해서 자신의 이데알리즘을 선전.선동하려고 한 만큼 많은 디테일과 서사를 담을 수 있는 긴 시행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더 이상 선전.선동할 역사적 전망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짧아진 시행의 길이는 곧 그의 내면에의 침잠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드러내는 지표이며 동시에 그 작업이 얼마나 절실한 것이었는가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눈보라가 친다/앞길 먼 산/한울에/ 아무것도/ 안보이는 밤//아 몹시 춥다//개 한 마리 안짖고/등불도 꺼지고/가슴 속/숲이/호을노/호득이는 소리/도깨비라도 만나고 싶다//죽는게 살기보다도/ 쉬웁다면/누구가/벗도 없는/기피은 밤을...// 참말 그대들은 얼마나 갔는가//발자욱을/눈이 덮는다/소리를 하면서/말소를 듣재도/자꾸만/바람이 분다//오밤길을 걷는 마음...
-「밤길」전문

  이 시도 깊은 절망감과 고립감 속에서 계속 자기 노선을 지키려 분투하는 임화의 모습이 절절하게 나타나 있다. "발자욱을/눈이 덮는다/소리를 하면서/말소리를 듣재도/자꾸만/바람이 분다//오 밤길을 걷는 마음..."과 같은 시적 진술에서 알 수 있듯 화자는 자신이 그 동안 지나온 길도 더듬어 보기에 너무나 어둡고,함게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바람 소리만 들리는 와중에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거의 절망적이다.

  돌아올 날을 /기약코/길을 떠난/사람이/ 하나도 없는/차간은/한숨도 곤하여//누군가/싸우듯/북방의 희망을/언쟁하던/시끄런 음성은/엊저녁 꿈이다.// 밤 차가/달리는 /먼길 위에/발자국마다/꿈은 조약돌처럼/부르러져//고향의/ 제일 높다는 산도/인젠/병풍 쪽처럼/뒤를/넘어가조.//밤은/타관에/한 창 깊어갔다.
-「차중-추풍령」전문

  이 시는 얼핏 오장환의「북방의 길」이란 시를 연상케 한다. 고향에서 제일 높은 산을 뒤로했다면 이제 고향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화자의 고향은 추풍령 근처인 듯 싶다. 이를 "병풍 쪽처럼/뒤로/넘어가고"라고 묘사한 4연은 뛰어나다. 병풍을 편처놓았을 때 그 굴곡진 모양은 마치 산맥을 늘어놓은 것과 같다. 병풍의 끝에 가면 한쪽만이 젖혀져 있는데 낯익은 산자락의 끝을 지날 때의 모습을 여기에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병풍이 들러친 곳이라면 그나마 안락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을 지나자 밤이 더욱 깊어졌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시간이 그만큼 소요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낯설은 곳이라서 약간의 어둠만으로도 어느 곳인지 분간할 수 없기 때문에 어둠을 더욱 깊게 느꼈을 수도 있다. 한때는 서로가 "북방의 희망"을 다투듯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꿈처럼 허망하기만 하다. 깊은 산을 넘어가는 화자는 다시 돌아갈 날이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긴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이상에서 간단하게 초기부터 해방 이전까지 임화의 시 세계를 검토해 보았다.프로시를 대표하는 그의 시 세계는 시대의 중심에 있었던 한 좌파 지식인의 내면 보고서인 바 한국 현대시사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3. 결 론

  그는 비록 1947년 월북하여 1953년 북한에서 작고하였으나 어떠한 사상을 떠나서 1940년부터 발표한「조선신문학사」등의 문학사적 업적은 지금까지도 가장 뛰어난 문학사 중의 하나이다. 해방이후 '조선문학동맹'의 핵심 멤버로서 그가 보여 준 운동가로서의 면모 또한 해방 이후의 시기를 논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외에도 영화인으로도 활동을 한 이채로운 경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시,비평,문학사,운동,영화 등 다방면에 걸친 그의 삶은 자신의 개인적 삶이 곧 자기 시대를 대변하는 문제적인 인물의 것인 바 식민지 조선의 지성사 정신사에서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로 이점에서 임화는 오늘날에도 다시 읽고 생각해 볼만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4. 주요 저서 시집

  <현해탄> 동광당서점 1938
  <찬가> 백양당 1947
  <회상시집> 건설출판사 1947
  <현해탄> 풀빛 1988
  <다시 네거리에서> 고려원 1989

 

출처 : [기타] 도서:새로쓰는 한국시인론(백년글사랑,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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