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과 수석코치님 오셔서 귀한 말씀 전해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결론
요한계시록 22:12-20
요한계시록을 통해 수많은 이단이 나왔고, 속여왔습니다. 이단 교주들을 절대화 시키는 교리를 활용하여 "계시록은 내 이야기이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이*희, 문*명 등)
뿐만 아니라 이단이 아니고도 전통적인 교회 내에서도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했던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 말씀을 임의로 해석, 분해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 시켰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말씀은 우리에게 종말의 날짜를 알려주거나, 혹은 종말의 시간표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등의 말씀이 핵심내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은 각 사람들에게 '믿음'대로 갚아주리라가 아닌,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다시 오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누가 재림의 날짜를 예측했나'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재림의 날짜를 예측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에 대해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된다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제자들이 "주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어떻게 성령을 모셔서 주 예수님 증인으로서의 삶을, 능력있는 권능이 있는 증인으로 살 것인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다시 오실 주님께서 살피실 것이 "너희가 어떻게 나를 믿는 믿음을 행위로 옮겼나"를 살펴보겠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중요하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반드시 합당한 순종의 행위를 가져오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 말씀을 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하고 계신 겁니다.
계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사람은 바로 예수 보혈의 공로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두루마기를 빤다는 것은 내 죄를 깨닫고, 그 죄를 날마다 회개하는 사람이 내가 다시 올 때 복있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학교에서 날마다 '예수 피로 나의 죄를 살펴보고 돌아보고 회개하라 예수피를 입에 달고 살아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목사님이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육체의 인간은 기도하는 것도,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인간이 좋아하는 것은 내 멋대로 사는 것일 뿐입니다.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고,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른다고 말씀합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같은 사람이 바로 성령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성령이 사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육체의 소욕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령을 충만히 모셔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복이고, 내가 넘어졌을 때에는 겸손하고 정직하게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가 되는 것,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되는 것이 바로 복된 사람입니다.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생명수를 받으라] 생명수는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의 선물입니다.
요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말씀을 반복하고 계십니다.
모든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살지만 하나님의 형상(외형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거룩하심의 일부)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성령과 만나지 못한 인간은 건조하고 목마르며, 이유를 모르는 갈급함과 내적인 갈증을 가지게 됩니다.
모든 인간이 범한 죄가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셔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참된 만족과 행복을 얻도록 창조하셨는데,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 인간의 첫번째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망하면서도 하나님이 없어서 그렇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혹은 가르쳐줘도 그것을 믿지 않고 부인하기 때문에 육체의 쾌락, 돈, 성취, 높은 지위나 학문적인 공부, 타인의 인정, 자아성취 등을 통해 목마른 것을 채워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여전히 목마름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것을 가진 솔로몬이 죽기 전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우리 영혼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은 무상입니다. 채울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죽을 때까지 파다가 물을 얻지 못하고 죽는 것이 인생의 슬픈 현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영성학교로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성령 내주 기도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계시록 22:17 하나님 성령님의 초청에 대한 응답입니다. 영성학교에 온 것은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성령의 초청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길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고, 이 자리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를 할 때에 '이 말씀을 주장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 내게 생명수를 받으라고 나를 초청해 주시고 불러주신 하나님 하나님이 내게 생명수 성령을 주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생수를 내가 받기를 원합니다. 내게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주겠다고 하셨으니 저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령을 받기 원하는 이유는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믿음의 순종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나의 잘난 맛으로 살려고 성령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수의 강물 되신 성령님을 모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을 할 수 있게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할 때에도 굉장히 부분적인 회개를 합니다. 성령님이 없으면 회개라는 것이 나의 양심의 가책을 무마하는 정도로 하게 됩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들만 내 죄로 보이고, 속에 있는 본질적인 죄들이 사실 잘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령님이 오시면 나의 두루마기에 더러운 것들이 낱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진정 죄인이구나, 하나님 앞에 정말 죄인이구나'하는 것이 내 가슴으로부터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절절한 회개가 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이대로 오늘 죽으면 나는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사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살려주시옵소서'하는 회개가 마음 속에서 일어납니다.
계시록22장의 말씀을 나로 하여금 순종하는 행위의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되게 하시고, 목마름을 나의 영혼 깊은 데 있는 이 갈증과 목마름을 하나님의 성령의 생명수로 온전히 해소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시길 원하시는 것이 계시록 22장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성경공부의 최종 결론은 성령 내주 기도 훈련을 목숨걸고 하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