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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명장들중 복신장군,계백장군이 대표적인 사비랑 출신의 장군들이었고, 백제의 마지막 장군인 흑치상지 장군이 멸망한 백제국을 다시 일으키려고 백제유민들과 함께 정립한 백제무술이 지금의 백제신검이다.
백제무술 백제신검(百濟神劍)은 일찍이 백제 중엽에 성행했고 백제말 명장 흑치상지 장군에 의해 체계화 되어 백제 유민들에게 전수되었지만, 신라의 삼국통일, 후삼국과 고려조를 거치면서 백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과 함께 대중들에게 서서히 멀어졌고 일부 계승자들에 의해 면면히 맥을 이어 왔다.
무술의 진정한 의미는 공격이 아닌 방어에 있음을 전수 받은 계승자들은 은이자중 하며 대를 이어오다 보니 우리민족의 전통 중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게 되었다. 그러나 뜻 있는 몇몇 분의 노력으로 근래까지 백제무술 백제신검(百濟神劍)을 계승하여 왔는데 조선말기 태백산에서 은둔 수련하던 청뢰도인(靑雷道人)이 길천도인(吉天道人)에게, 길천도인(吉天道人)은 후계자 삼랑도인(三郞道人)에게 백제무술(百濟武術)을 전수 하였고 삼랑도인(三郞道人)은 다시 4명의 제자를 두어 오늘에 이르렀다. 강영오 무사도 1963년 태백산으로 입산하여 스승인 삼랑도인(三郞道人)에게 백제무술(百濟武術)을 배우기 시작한 4명의 제자 중 한명이다.
1971년 스승 삼랑도인(三郞道人)이 노환으로 별세하자 4명의 제자는 하산 하였고 그 중 2명은 타계하여 세상을 떠나셨으며, 제일 오래 수련하고, 제주도에 살던 양필명 님마저 사망하신 후 현재는 막내 제자였던 강영오가 유일한 전승자로 창시자로부터 제47대 계승자로서 백제무술(百濟武術)의 발전 및 전통문화 계승에 노력하고 있다. |
백제무술 백제신검의 유래
옛 삼국시대 백제국의 제13대 근초고왕 시대에 지금의 사관학교와 같은 제도가 있었는데, 1학년 격인 태랑(太郞), 2학년 격인 월랑(月郞), 3학년인 사비랑(泗沘郞)이 그것이다. 사비랑이 되면 국가에서 차사(借士) 란 명칭을 주어 군인으로 뽑아간 제도로서 신라가 이를 도입한 것이 바로 화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