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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무술

百濟劍術의 流來와 歷史 백제검술의 유래와 역사

작성자ojaesung|작성시간08.07.16|조회수927 목록 댓글 0

百濟劍術의 流來와 歷史

 

백제류 백제검술의 역사는 백제국 제13대 근초고왕때부터 가장 성행했다고 전해지며 이때 지금의 사관학교처럼 명칭이 사비랑(泗沘郞)제도가 있었고 백제검술은 그 당시 삼국의 전쟁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백제국이 영토도 많이 넓혀졌다는 것이 역사의 사실이다. 그리고 백제국의 왕들의 성씨는(夫餘)씨고 백제시조 은조왕의 이름이 부여온이고 마지막왕 의자왕이 이름은 부여책 이라한다. 부여씨라 증거는 충남 부여군이 그 증거이고 또 사비랑제의 근원도 남기기 위하여 부여 부소산성을 (泗沘城)이라한다.백제국은 기원전 18년에 십제라고 나라이름을 명명했다가 지금의 인천지역(미추올)근거하다. 온조와 비류형제가 만나서(百濟國이라청하게된다.)

 

지금의 하남 송파지역(위례성)493년을 수도로하다.

고구려 장수왕때 세력이 밀려서 수도를 지금의 공주(公山城)에 옮겨서 약150년 다시 부여로 옮겨서 약 80년만에 서기 660년에 백제는 멸망한다.멸망한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한 많은 인물이 있었는데 그중에 계백장군(황산벌 전투의 영웅)을 비롯 홍수,복신 장군등이 계셨고 그중 가장 젊으셨던 혹치상지장군이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고 지금의 강원도영월,태백산,지역에 수천명에게 무술(백제검술)을 체계화 하여 수련시킨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의 백제검술의 맥이되고 그분이 백제검술의 창시자가 되시는데 밀고자에 의해 신라군 약 2만과 싸우시다 전사히신 것으로 우리 전수계승자들에 의해 전해오고 있다. 그분이 쓰시던 전설의 검은 무형검인데 형테가 덜만들어진 칼을 사용했던 것이 (중국식 주방칼)같은 모양의 검이다.

 

그리고 그분은 칠사지창이라는 창을 잘 쓰시는 것으로 알려졌으며(치사지창)의 모양은 칠지검이라는 일본왕에게 선물한 칼모양이다.

 

혹치상지장군은 역사(정사)에는 중국으로 귀화했다고(야사)에는

오리여 중국 당나라시절에 묘나라라는 당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던 속국 묘나라에서 백제국으로 귀화한 혹치상지장군의 아버지가(흑치문이란 분이)백제국으로 귀화해서 백제여인과 결혼하여 나신분이 흑치상지장군의 유래이다.

 

※백제말 명장들은 모두 사비랑 출신이다(太郞, 月郞, 泗沘郞, 借士, 力士, 武士)

 

사단법인 백제무술협회 백제검술 제47대 계승자 강영오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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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무술 백제신검의 유래

옛 삼국시대 백제국의 제13대 근초고왕 시대에 지금의 사관학교와 같은 제도가 있었는데, 1학년 격인 태랑(太郞), 2학년 격인 월랑(月郞), 3학년인 사비랑(泗沘郞)이 그것이다. 사비랑이 되면 국가에서 차사(借士) 란 명칭을 주어 군인으로 뽑아간 제도로서 신라가 이를 도입한 것이 바로 화랑이었다.

 

백제의 명장들중 복신장군,계백장군이 대표적인 사비랑 출신의 장군들이었고, 백제의 마지막 장군인 흑치상지 장군이 멸망한 백제국을 다시 일으키려고 백제유민들과 함께 정립한 백제무술이 지금의 백제신검이다.

  

백제무술 백제신검(百濟神劍)은 일찍이 백제 중엽에 성행했고 백제말 명장 흑치상지 장군에 의해 체계화 되어 백제 유민들에게 전수되었지만, 신라의 삼국통일, 후삼국과 고려조를 거치면서 백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과 함께 대중들에게 서서히 멀어졌고 일부 계승자들에 의해 면면히 맥을 이어 왔다.

 

무술의 진정한 의미는 공격이 아닌 방어에 있음을 전수 받은 계승자들은 은이자중 하며 대를 이어오다 보니 우리민족의 전통 중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게 되었다. 그러나 뜻 있는 몇몇 분의 노력으로 근래까지 백제무술 백제신검(百濟神劍)을 계승하여 왔는데 조선말기 태백산에서 은둔 수련하던 청뢰도인(靑雷道人)이 길천도인(吉天道人)에게, 길천도인(吉天道人)은 후계자 삼랑도인(三郞道人)에게 백제무술(百濟武術)을 전수 하였고 삼랑도인(三郞道人)은 다시 4명의 제자를 두어 오늘에 이르렀다. 강영오 무사도 1963년 태백산으로 입산하여 스승인 삼랑도인(三郞道人)에게 백제무술(百濟武術)을 배우기 시작한 4명의 제자 중 한명이다.

 

1971년 스승 삼랑도인(三郞道人)이 노환으로 별세하자 4명의 제자는 하산 하였고 그 중 2명은 타계하여 세상을 떠나셨으며, 제일 오래 수련하고, 제주도에 살던 양필명 님마저 사망하신 후 현재는 막내 제자였던 강영오가 유일한 전승자로 창시자로부터 제47대 계승자로서 백제무술(百濟武術)의 발전 및 전통문화 계승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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