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림도 없지만, 애들이 어렸을 적에는 내가 집에 돌아오는 기척이 들리기만 하면 다들 달려 나와서 춤을 추곤 했다.
딸아이들은 집 앞에 차를 세우는 소리를 들으면 “아빠 왔다!”라고 소리 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러곤 마당에 서서 막 몸을 흔들어 댄다.
얼굴은 초콜릿 투성이에 기저귀를 찬 채로 마당을 휘젓고 다닌다.
당연히 온 동네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불쾌해할 아빠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은 궁금하실지도 모른다.
‘애들이 내 임재를 즐거워할까?’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에겐 모래 위에서 춤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바로 우리 안에 계시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웃사는 이걸 놓친 것 같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이 궤짝 하나에 담길 만큼 조그만, 그래서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어야 할 분으로 보였다.
그는 주님을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거룩한 분의 임재 앞에 서기 전에 스스로 정결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회개니 순종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생략하고 수레 뒤에 언약궤를 싣고 신나게 출발했다.
하나님을 향한 외경심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죽음에 이른다.
창조주는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신다.
여호와는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경건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에 주린 영혼을 찾으신다.
그런 이들을 찾으시면 즉시 찾아오신다.
- ‘믿음 연습’ / 맥스 루케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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