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로뎀나무 아래의 은혜
본문 : 열왕기상 19장 1-8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홍수환’이란 권투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가 1977년에 멀리 파나마에서 ‘카라스키야’와 WBA 슈퍼밴텀급 타이틀매치 경기를 하였습니다. 상대방은 ‘지옥의 사자’라 불리울 정도로 주먹이 무지막지하게 쎘습니다. 그날, 2회가 끝나기도 전에 홍수환 선수가 무수한 소나기 펀치를 맞고 4번이나 다운되었습니다. 당시 저도 TV로 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이제 끝났다.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홍수환 선수가 기적과 같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카라스키야를 몰아붙여 케이오로 세계참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4전 5기’였습니다. ‘4번 쓰러져도, 5번 일어나서 이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카라스키야의 돌주먹을 맞고 쓰러졌을 때, 일어나기 쉬웠을까요? 한두 번이야 기를 쓰고 일어날 수 있겠지만, 세 번 네 번이 지나면,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일어날 수 있었던 뒤 이야기가 있습니다. 홍수환이 포기를 하려는 순간, 들려오는 한마디 외침이 있었답니다. 그의 어머니가 “수환아. 일어나야지”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비몽사몽 가운데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홍수환이 기를 쓰고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홍수환 선수는 자기 힘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수환아, 일어나야지” 음성이 그로 하여금 일어나게 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죽은 아이를 살리고,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싸울 때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였고, 또 기도하여 삼 년 육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를 내리게 하는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내가 내일 이맘때에 네 생명을 찾으리라” 말 한마디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정신없이 유다의 남쪽 끝에 있는 브엘세바 광야까지 도망을 갔고,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서 “여호와여.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체념하는 엘리야였습니다. 이와 같이 ‘절망의 자리, 포기하고 싶은 순간, 소망이 없는 환경’이 바로 ‘로뎀나무 아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는 엘리야를 일으켜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다는 것이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자. 여러분! 로뎀나무 아래가 어디라고요? ‘절망의 자리, 포기하고 싶은 순간, 소망이 없는 환경’입니다. 앞에서 말한 홍수환이 카라스키야의 돌주먹을 맞아 네 번이나 다운되어 쓰러진 자리가 ‘로뎀나무 아래’입니다. 오늘 엘리야가 더 이상 도망도 가지 못하고 죽기를 자초하는 자리가 ‘로뎀나무 아래’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로뎀나무 아래’란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질병이라는 로뎀나무, 실패라는 로뎀나무, 가난이라는 로뎀나무 등으로 삶을 포기하고 싶을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말씀의 핵심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로뎀나무 아래에서도 은혜가 임하게 되면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엘리야에게 임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자. 오늘 설교 제목이 뭐에요? ‘로뎀나무 아래의 은혜’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어떤 로뎀나무 아래에 있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로뎀나무 아래에 임할 은혜가 무엇일까요?
1. ‘지친 우리를 쉬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왜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이 없어서’일까요? ‘게을러서’일까요? 아님 ‘죄를 지어서’일까요?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기 때문’입니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목숨을 건 영적 전쟁을 치렀습니다. 또 기도하여 3년 6개월 동안 내리지 않던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2절에 보면, 이세벨이 사람을 보내어 “내가 내일 이맘때에 반드시 네 생명을 찾으리라”는 협박이었습니다. 그 서슬 퍼런 말 한마디에 지금껏 열정적으로 살았던 엘리야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3절에 보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도망하였다고 했습니다. 어디까지 도망갑니까? ‘유다의 남쪽 끝, 브엘세바’까지 내려갑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서울에서 저 남해까지 도망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4절에 “하루 길쯤 들어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하는 것을 봅니다. 여기서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는 말이 뭘까요?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습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무너지는 이유가 꼭 실패해서만이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너무 열심히 살아도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책임을 지고 살아서 지칠 때도 있습니다. 너무 충성하다가 탈진할 때도 있습니다. 엘리야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로뎀나무 아래’를 ‘더 이상 갈 힘이 없는 자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자리,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야가 바로 그런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찾아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야, 이 못난 놈아! 네 믿음이 그것밖에 안 되느냐?”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나약하냐?” 꾸짖지도 않으셨습니다. 주의 일을 하다가 지쳐 쓰러진 엘리야가 너무 안쓰러워서, 어루만져주시면서 깊은 잠과 쉼을 주신 것입니다. “수고했다, 내 아들아. 이제는 좀 쉬어라”며, 영육의 안식을 먼저 주신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홍수환 선수를 보십시오. 그가 왜 링 바닥에 네 번이나 쓰러졌습니까? 놀다가 쓰러진 게 아닙니다. 나라의 명예를 걸고, 자기의 모든 힘과 능력을 다 쏟아 피 터지게 싸우다가 쓰러진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진액을 쏟고 쓰러진 자식을 향해 어머니가 외친 “수환아, 일어나야지” 목소리는 매질이 아니라, 수고한 자식을 품에 안아주는 따뜻한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엘리야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세상에서 참으로 열심히 살다가 오셨을 것입니다. 내 가정을 살려보겠다고, 내 자식들 잘 먹여보겠다고, 평생을 뼈가 부서져라 일하다가 지쳐서 오셨을 것입니다. 또 이 작은 교회에서 동분서주하면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느냐고, 몸과 마음이 지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수고한 것도 아시고, 여러분이 지쳐 탈진한 것도 알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썼지만, 속절없이 무너지는 여러분의 연약한 믿음도 아십니다. 감사하게도 그런 여러분에게 “너 왜 믿음이 그 모양이냐? 더 열심히 해라” 야단치지 않으시고, 이 예배를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참된 쉼’을 주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여 오늘 이 아침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쉼의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의 아픔과 하소연도 다 받아주시는 은혜’입니다.
4절에 보면, 엘리야가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말하는 것을 봅니다. 이는 “하나님, 나를 지금 당장 죽여 주세요” 하고 떼를 쓰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진짜 죽고 싶어서 이 말을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정말 죽고 싶었다면, 이세벨을 피해 도망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기 싫었기 때문에 그 먼 곳 브엘세바까지 정신없이 도망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 앞에서는 ‘지금 당장 죽여달라’고 말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진짜 죽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나 지금 너무 아프고 힘이 듭니다. 내 힘든 것을 알아주세요, 나 좀 살려주세요” 하는 하소연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평생 자식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어머니가 철없는 자식의 태도에 상처받아 “내가 확 죽어버려야 저것들이 정신을 차리지” 하고 하소연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죽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진짜 자식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너무 서럽고 속상하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7절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여기서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말 속에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입에서 나온 거친 말의 껍데기를 보지 않으시고, 그 속에 가득 찬 아픔과 눈물을 보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엘리야의 투정부리는 것을 탓하지 아니하시고, 토닥거리며 그 하소연을 다 받아주셨다’는 말입니다. 세상 같으면 ‘이제 정신차려야지, 언제까지 드러누워 하소연만 할 거냐?’ 책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 ‘또 다시’ 찾아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그 지친 몸을 또 다시 어루만지시며, 따뜻한 떡과 물을 입에 넣어주십니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쳐 투정을 부리는 자식의 등을 토닥거리며, 다 받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이 말씀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제가 목사인데, 그렇다면, 주의 종답게 능력있게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매번 문제 앞에 쓰러질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내 힘으로는 안되요. 할 수 없어요.”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그저 울기만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 때가 있습니다. 마땅히 “그러고도 네가 목사냐?” 책망하셨어야 하는데도, 하나님은 상한 저의 마음을 만져주셨습니다. 또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매번 떡과 물을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엘리야처럼, 하나님 앞에 쏟아 놓은 아픔과 하소연이 있으십니까? 혹시 자식이 속썩인다고, 또는 사업이 안된다고,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습니까? 차라리 날 데려가세요” 하며, 하나님 가슴에 대못을 박으신 적이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선 우리의 넋두리와 하소연을 다 받아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히려 우리를 꼭 안아주시며 “내 딸아, 내 아들아.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으면, 나에게 죽겠다는 소리를 하겠느냐? 너무 힘들어서 지르는 비명인 줄 내가 다 안다.” 말씀하시는 줄 믿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억지로 행복한 척, 아무 문제 없는 척, 괜찮은 척 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하나님께 다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아픈 것을 하소연을 토해내야, 비로소 숨통이 트이고, 하나님과 진짜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또 다시’ 오셔서 어루만지며,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의 술자리가 로뎀나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화투판이, 오락실이 로뎀나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이 성전이 로뎀나무가 되어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위로함을 받고, 다시 회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연약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사용하시는 은혜’입니다.
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로뎀나무 아래 쓰러진 엘리야에게 잠을 주시고, 그의 하소연을 '또 다시' 받아주신 진짜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저 로뎀나무 아래서 먹고 마시며, 평생 편하게 살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가 7절 후반부에 나옵니다.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무슨 말일까요? ‘엘리야가 가야 할 길이 있는데, 아직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감당해야 할 위대한 사명들, 즉 아람왕과 이스라엘의 왕을 새롭게 세우는 일과, 후계자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는 일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연약하여 그 길을 가지 못하고 누워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8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자. 분명 엘리야는 지쳐서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런 엘리야의 상태로 호렙산에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그곳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 물론 정확한 거리가 나오지 않지만, 사십 주 사십 야를 걸어가야 할 먼 길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다고 했어요?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교훈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하는 연약한 엘리야를 일으켜 사용하시는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분명 엘리야는 일어날 힘이 단 1%도 없었던 자입니다. 사명이고 무엇이고,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 자가 어떻게 사십 주 사십 야를 걸어서 그 먼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사람이라면 쉬기도 하고, 잠도 자야 합니다. 그런데 사십 주 사십 야, 다시 말해서 40일 동안 밤낮으로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그가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숯불에 구워주신 떡과 물을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늘의 은혜’를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내 힘으로는 단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던 연약한 우리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은혜의 힘을 얻는다면, 능히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게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어느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또 사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길거리로 나 앉게 되었습니다. 물질만 잃은 게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으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찾아왔습니다. 방 안에서 불을 끄고 누워 “하나님, 그냥 이대로 잠들어서 깨지 않게 해주세요. 인생 끝내고 싶습니다” 매일 밤 눈물로 하소연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정말 죽지 못해 성전 맨 뒤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그날 선포되는 말씀이 자기 지친 가슴을 어루만지는 천사의 손길처럼 느껴지더랍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마음 속에 “네 인생 여기서 안 끝난다. 내가 너를 다시 일으켜 사용할 것이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드리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일어날 힘이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새벽시장 노가다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육체노동 일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늘 얼굴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집사님, 어떻게 그런 상황에 기쁠 수 있습니까?” 그때, 집사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 힘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 아니면 내가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를 1년이 지났을 때쯤, 옛날 거래처의 도움으로 다시 회사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처럼 실패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에 앞장 서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자. 여러분! 이 집사님이 눈에 보이는 환경만 본다면, 도저히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일어날 수 있었으며, 주의 일에 사용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삶의 무게로 인해 쓰러지신 분이 계십니까? 질병이라는 로뎀나무, 자녀문제라는 로뎀나무, 경제적인 어려움이라는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계신 분이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찾아오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찾아오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은혜를 주실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내 힘으로는 한 걸음도 걸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 은혜의 힘을 얻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연약한 엘리야를 일으켜 사용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도 다시 일으켜 귀하게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크게 사용하실 줄로 기대합니다. 따라서 이 시간, 하늘의 은혜를 힘입어 로뎀나무 아래를 박차고 일어나,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있던 엘리야를 보았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있다는 것은 ‘더 이상 갈 힘이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자리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기를 구하였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쉬게 하시는 은혜’와 ‘아픔과 하소연을 다 받아주시는 은혜’, 그리고 ‘다시 일어나게 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은혜 덕분에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를 벗어나서 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엘리야에게 임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도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계신 분이 있습니까? 질병이란 로뎀나무, 가난이란 로뎀나무, 실패라는 로뎀나무 때문에 힘든 분이 있습니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낙심 중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이것만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로뎀나무 아래에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리라.”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 마신다면, 능히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길을 가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일어나 너 걸어라” 찬양하겠습니다. “ ♬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으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으라. 내 너를 도우리. ♬ ” 그렇습니다, 우리가 매일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시고, 새 힘을 주시며, 도우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로뎀나무 아래를 벗어나, 약속하신 길을 능히 걸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