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들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여러 민족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수가 많아서도 아니고 다른 이유도 아닌 바로 하느님의 유난하신 사랑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내시어 광야에서 그들을 이끌어 주신 사실을 아울러 일러주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신들 중에 하느님만이 ‘참 하느님이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이심’ (신명 7,9)을 기억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계명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 (신명 7,11)
요한서간 저자는 ‘하느님께서 사랑이심’(1요한 4,16)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면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분의 외아들을 통하여 알았고 그는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요약하며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4,9.15)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직접 하느님께 고백하는 말씀하시는 것으로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루카는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루카 10,21ㄱ)라고 시작합니다.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일치하시는 마음으로 성령의 인도로 말씀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철부지들과 심오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대비시키며 아버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5-26)
여기서 철부지는 당신 제자들, 또는 당신을 어린아이처럼 따르는 사람들을 일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며 사람들 앞에 세우시고 ‘하느님 나라가 바로 이런 어린아이에게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구원을 펼치기 보다는 그들을 법 의무로 구속하기 바빴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11,27)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제까지 하셨던 말씀과는 다르게 새로운 말씀을 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11,28-29)
여기에서 멍에라는 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내어주는 과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율법학자들은 제자들에게 여러종류의 법조항을 어렵게 가르쳤을 뿐 아니라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과제도 무거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워지는 멍에는 가볍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제자들의 과제는 거의 없었고 단지 스승과 함께 생활하며 복음선포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유대인이면서도 그들과는 다르게 스승의 말씀을 어린 아이처럼 받아들이고 믿었던 것입니다.
요한 서간의 저자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주 단순하면서도 쉬운 일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요한 4,16)
하느님과 아들 사이를 본다면 서로 사랑의 관계라는 사실을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비로소 인간과 인간 관계도 깨닫게 되는 것입 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와 온전히 일치하시는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예수님께서는 삶의 무게에 시달리는 인간을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처럼 일관성 있게 성실하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말씀하실 때에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유는 부드러 우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고통 받는 이들의 탄원을 들어 주시는 마음으로 남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 성심 성월에 우리 마음에도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채워주시도록 청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당신 생명까지도 나누어 주신 주님처럼 우리도 내 이웃의 아픔에 귀 기우릴 줄 알고 기다릴 줄 도 알고 내어 줄줄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겸손이 무엇일까요? 겸손 (謙遜) 겸양(謙巽)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통적인 말은 바로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상대를 사랑하니까 겸손하고 온유하다고 할까요?
주 강조점은 내가 중심이 아니고 바로 ‘남’ 또는 ‘이웃’이라 하겠지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요? ‘내가 좋아서 무엇을 해 주지 마라.’ 또는 ‘내 좋을 대로 남을 도와 주지 마라.’라는 말도 있고요.
때로 남을 도와 주었다고 생각하면서 반성을 해 보면 ‘나’라는 것을 중심으로 한 경우가 있어서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은 말대로 쉽지는 않지요. 거기에 진정한 사랑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지요. 요한 1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사랑의 근원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1요한 4,7)
아울러 그는 “하느님의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십니다.”(1요한 4,16)라고 전합니다.
사람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는 세심한 사랑이 배어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이 삶이 되는 사람은 작은 행동에서도 부드러움과 남을 위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신명기 저자도 이스라엘이 수도 작은 백성이지만 선택한 것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아울러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신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마음으로 대하십니다. 예수님을 닮은 교회의 사제들이 되도록 우리 교우들은 물론 사제 자신도 반성과 함께 기도하는 날입니다.
사제들이 참으로 주님을 닮은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야 겠지요.
오늘은 또한 사제성화의 날입니다.
사제들이 세상에 살면서도 예수님의 성심을 닮아 교회와 이웃을 사랑하며 복음선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사제들이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오로지 주님의 부르심에 성실하게 대답 할 수 있도록 전 세계적으로 사제성화의 날을 정해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사제들에 대해 메모했던 글입니다.
사제는 주님을 오로지 사랑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한 사람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제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연약할 때도 있고 실망할 때도 있는
교우들의 한 형제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용서가 필요한
죄인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이 교회의 봉사자로
사제들을 불러 거룩하게 세우시고
축복과 함께 이끌어 주십니다.
교회는 오늘 사제성화의 날로 정하며
사제들이 주님의 성심과 일치하도록
교우들이 함께 기도하는 날입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에서 사제들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모든 사제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사제 서품 때에 땅에 엎드립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순명하셨듯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주님의 길을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 1970년 5월 17일에, 당신의 사제 서품 50주년을 기념하여 278명에게 사제품을 집전하시고 강론하시면서 이런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오늘 주님 성심 대축일이며 사제 성화의 날이기에 이 기도를 교황님께서 바치시던 그 마음으로 함께 바치고 싶습니다.
◈ 사제들을 위해 성령께 바치는 기도
♬♪ 넓은 마음 ♬♩♪
오소서 성령이시여,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사제들에게 넓은 마음을 주소서,
침묵 가운데 힘차게 타이르시는 주님의 말씀을 귀 담아들으며,
온갖 불미한 야심과 덧없는 인간 경쟁을 전혀 모르는 마음,
거룩한 교회만을 걱정하며, 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보려는
넓은 마음을 주소서,
온 교회와 전 세계를 포용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희생할 줄 아는
넓고 강한 마음을 주소서.
온갖 유혹과 시련, 온갖 싫증과 피로, 온갖 환멸과 모욕을
견디어 내는 넓고 강한 마음을 주소서.
어떠한 희생이 요구되더라도 끝까지 항구하며,
그리스도의 심장과 고동을 같이하고,
겸손과 충실과 용기로 천주의 뜻을 실천하며,
거기서 유일한 행복을 찾는 넓고 강한 마음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