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엘리야는 엘리사와 함께 길갈을 떠나 베텔로 내려갔다가 예리코에 도착합니다.
엘리야는 그곳에서 엘리사를 머물라고 했으나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와 함께 있기를 청해서
함께 갑니다.
두 사람이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과 함께 불마차에 실려 하늘로 올라갑니다.
엘리사는 그런 스승의 모습을 바라보며 외칩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2열왕2,12)
엘리사는 더 이상 스승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자기의 옷을 두 조각으로 찢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을 집어 들고 요르간 강에 서서 강물을 칩니다.
강물이 둘러 갈라지고 엘리사는 그 사이로 걸어갑니다. 그가 스승에게 스승의 능력을
내려주기를 요청했던대로(2열왕 2,9) 스승의 능력이 자신에게 전수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르단 강가에서 스승인 엘리야가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사건을 전하는 성경의
이야기는 후대를 거치며 하나의 신앙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엘리야 예언자는 종말에는 불마차를 타고 올라 하늘에 올라갔듯이 다시
그 불마차를 타고 세상으로 내려오리라는 메시아사상이 만연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과 달리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말씀하셨듯이 종말에는 엘리야가 아니라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왕이며 심판관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실 것을 지상의 교회는
희망을 갖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은 자연적인 것이라고 하지요.
새로운 신종 단어 중에 ‘셀피(selfie)’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흔히 ‘셀카’라는 단어가 더
친숙한데, 자기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것을 말합니다.
‘셀피’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컴뮤니티 사이트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에
올리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지요.
누구나 자신을 남에게 알리고 싶어 자신의 일상생활을 사진에 담아 공유하는 모습은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됩니다.
어디 이뿐이겠어요? 성형을 비롯해서 외모에 신경을 쓰는 시대에 살다보니 몸을 가꾸는
‘다이어트’라는 말도 이제는 흔한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자신을 아름답게, 좋게 가꾸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좋게 보이는 것은 사실 좋은데 자기의 모습을
휠씬 벗어나서 과대하게 그리고 남들에게 보이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긍정적일 수만은 아니지요.
그렇게 되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 과장해서 포장해야 되기 때문에
허위가 되고 자칫하면 위선으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 비난의 대상이었던 바리사이들은 자기의 모습을 위선으로까지 하며 돋보이려고 한 것이
그들의 잘못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자선, 기도, 그리고 단식을 할 때에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또한
조심하라고 이르십니다.
그래서 자선을 할 때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말고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3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기도 할 때에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위선자처럼 하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골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라.’(6절)고 하십니다.
끝으로 단식할 때에도 침울한 표정을 짓지 말고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발라서 남들이 단식하는지를 모르게 하라.’(17절)고 하십니다.
참다운 신앙인은 사람들의 눈이 아니라 하느님 보시기에 좋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드러나려 하지 말고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 있는대로
보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갈등으로 다가오는 것은 내 의지는 그렇지 않은데, 내 안에 있는 인간적 본성이
고개를 슬며시 드러내는 것을 서슴치 말고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씨 비유에서 잘 자란 좋은 곡식 사이에 가라지를 들어 말씀하시듯 내 안에 악의
뿌리인 잡초가 순간순간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의 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 보다 매 순간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내적인 성장으로 평화와 기쁨의 열매를 맺는 것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은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참된 신앙인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희생과 선행을 베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일을 하더라도 마지 억지로가 아니라 스스로 기쁘게 하는 삶의 태도가 충요한
것이고 여기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는 한 마디를 일러줍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1코린 9,7)
기쁘게 자신을 낮추고 '기꺼이' 행동하는 것이 바로 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누구의 눈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며 '기꺼이 그리고 묵묵히 하는 삶‘이야 말로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신앙인의 모습이며 삶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