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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완성)

사무엘상 강해(12) - 우리에게 왕을...

작성자박춘경|작성시간18.10.24|조회수332 목록 댓글 0

사무엘상 강해(12) 2018. 10. 24

우리에게 왕을...

삼상 8:1-22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사무엘은 가장 먼저 회개운동을 펼쳤습니다. “우상 숭배를 멈추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며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에 모이게 하였습니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을 길어 여로와 앞에 붓고”, “종일 금식하고,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하며 그 동안 하나님을 멀리하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긴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공포에 질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어린 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번제로 바치고 하나님께 부르짖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큰 우레’를 발하시자 블레셋 진영에 큰 혼란이 생겼고, 이스라엘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그들을 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무엘과 백성들은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의미로,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지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평화로웠고, 사무엘은 여러 곳을 순회하며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의 타락>

 

이제 시간이 흘러 사무엘도 늙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후계자로 아들들을 사사로 세웠습니다.

1-3절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었습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위치한 곳(‘단에서 브엘세바까지’ - 온 이스라엘을 뜻하는 관용어)으로 예전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다툰 후 상호 불침범 언약을 맺은 곳입니다(‘맹세의 우물’이라는 뜻, 창 21:28-31).

 

이 브엘세바는 사무엘이 있는 라마로부터 무려 80㎞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너무 늙었기에 이곳까지 왕래하면서 다스릴 수 없게 됨으로 이들이 브엘세바의 사사로 세워졌던 것입니다. 즉 그의 아들들을 보조 사사로 삼은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의 아들들이 사무엘과 같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마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연상케 합니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했습니다. 아버지를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은 아버지의 신앙과 속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은 닮지 않고, 그가 누리던 지위만을 이어 받았던 것입니다.

 

M·Henry라는 사람은 이런 말은 했습니다. “죄인은 죄인을 낳지만 성자는 성자를 낳지 못한다.” 부모가 믿음이 좋다고 해서 자식의 믿음이 저절로 좋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철저한 교육과 연단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순회하며 다니며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가정교육에는 소홀했던 듯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결국 단독자로 서야 함을 배웁니다(하나님과의 일대일, 인격적인 만남이 필요).

 

그런데 사무엘의 아들들의 타락의 원인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 ‘뇌물’입니다.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했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며(딤전 6:10), 탐심이 바로 하나님을 져버리는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사사가 갖추어야 할 자세 가운데 하나는 진실하며 불의한 것을 미워하는 것(출18:21)임을 알아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의 부정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설치할 목적으로 정부와 관련된 주요한 재판에 개입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정권과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거래하고, 판결을 굽게 한 것입니다. 이는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진장을 철저히 밝히고 엄벌에 처해야 할 것입니다.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

 

사무엘의 아들들의 타락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5절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사무엘이 늙고 그의 아들들이 타락한 것을 본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장로는 각 성읍의 원로(元老)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사무엘에게 나아가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하고 요구했습니다.

지도자의 타락이 백성들의 타락을 촉진시켰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지도자의 실책은 작은 것이라도 신앙공동체에 심대한 타격을 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과 베드로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딛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5:2-3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나라와 같이’라는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의 고유한 특징을 포기하겠다는 뜻입니다. 주변의 다른 나라들처럼 사람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왕정제도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왕인 하나님은 너무나 조용히, 천천히, 늦게 나타나시며, 더욱이 눈에 보이는 군대의 위세 등, 실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실물이 아니기 때문에 싫증이 나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왕과 더불어 치세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이방국가의 왕정정치에 현혹되어 있었는데, 사무엘의 아들들의 타락이 이를 표면화시킨 것입니다.

 

<사무엘의 기도>

 

이러한 그들의 요구를 사무엘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6-7절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사무엘은 그들의 요구를 하나님과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반응을 보십시오. 화를 내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항상 기도가 앞서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기도 없이 말하거나 기도 없이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어떤 요구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특히 사람을 만나거나 중대한 일을 처리하기 전에는 반드시 기도가 앞서가야 합니다. 기도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허락>

 

사무엘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의 반응은 의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도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십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그러나 뜻밖에도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장로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셨을까요? 예지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감추어진 욕망을 이미 꿰뚫고 계셨습니다. 역사가 계속되는 한 그들의 왕에 대한 요구는 끊이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실제로 150년 전인 기드온 사사 때부터 스스로 왕을 세우려하였습니다(기드온이 미디안을 몰아내자 왕이 되어 다스려 달라고 요구 – 삿8:22-23,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형제 70명을 죽이고 스스로 세겜의 왕이 된 적도 있음 – 9:6).

 

적당한 시점에 와서는 왕정제도를 허락할 계획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 판단하셨던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오래전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부터 이스라엘 나라가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할례를 베풀며 맺은 언약 – 창17;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사라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주신 말씀 –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야곱에 벧엘에 제단을 쌓을 때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말씀 – 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예, 하나님도 ‘왕정제도’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필요한 과정임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왕정제도가 가져올 폐단>

 

다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분명한 경고를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왕정제도가 가져올 폐단에 대한 경고입니다.

8-18절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10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왕정제도가 들어서면 생길 폐단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상시적인 징집입니다. 

왕이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호위하며 자신의 병거와 말을 돌보게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장차 왕으로 인해 백성들이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가 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노동력의 착취입니다. 

왕이 군사적인 목적 이외에도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노동력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밭이나 밭의 수확물들도 왕이 취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금하신 것입니다(민 36:7). 그러나 전제 군주적 왕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지 않고 백성들의 재물을 불의하게 탈취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의 노동력까지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왕이 왕궁의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많은 여성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셋째는 과도한 세금(십일조)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소산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규정되어 있는 십일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행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입니다(신 14:22-29). 그러나 여기에서의 십일조는 그것과는 별도로 왕이 거두어들이던 오늘날의 세금을 가리킵니다. 왕은 자신의 왕정 생활을 위하여 또 신하들에게 봉록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세금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왕이 세워지느냐에 따라 그 폐단의 정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되는 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해서도 미리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신17:14-20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타민족을 왕으로 세우지 말라,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은금을 많이 쌓지 말라, 말씀을 가까이 두고 읽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왕정제도 속에서도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였던 것입니다. 제도는 바뀌더라도 내용은 바뀌면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왕위에 오른 자들은 이 하나님의 경고를 잊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기를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상 많은 폭군들이 나타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왕상 21:1-9, 렘 36:20-26).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의 통치하에 있는 때가 사무엘의 통치 시대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왕상 12:4). 그러나 그 고통은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세상 나라 어디에도 없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선한 목자를 버린 것이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버린 결과입니다.

 

<경고를 무시하는 이스라엘 장로들>

 

왕정제도의 환상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귀에 이러한 경고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왕을 세워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19-22절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21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왕정제도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하여 왕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의 욕구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막은 것입니다. 이처럼 헛된 욕망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나타날 결과를 그처럼 자세하게 설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달라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탐욕은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닫게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기 전 마지막 호소 중에 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악한 생각과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은 성령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는 것이 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말씀을 마치시면서 종종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9)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의 귀가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순종도 하고 열매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왕정제도라는 정치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정치제도는 시대를 따라서 계속 변해왔습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해갈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모두 그런 마음을 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날마다 확장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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