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14) 2018. 11. 14
감당할 수 없는 은혜
삼상 9:18-27
<지난 시간 요약>
우리는 지난 시간 사울과 사무엘의 첫 만남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외모는 준수했고, 키도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꿈꾸던 왕의 용모를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내면도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사울에게 사환 한 사람과 동행하여 암나귀를 찾아오라고 명합니다. 사울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산지사방을 돌아다니며 암나귀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록 암나귀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그는 아버지가 자신들에 대하여 걱정할 것을 염려하여 집으로 돌아갈 결단을 내립니다. 이는 사울의 분별력과 극진한 효성을 증거해 줍니다. 그의 내적 됨됨이 역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 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와 함께하던 사환이 마지막으로 ‘에브라임 산지의 라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은전도 기꺼이 내어 놓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울은 사무엘이 있는 성읍으로 찾아가는데, 이때부터는 미리 짜 놓으신 듯한 정확한 타이밍이 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마침 물 길으러 오는 소녀들을 만나서 사무엘의 위치를 묻자, 오늘 마침 선견자가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앞서 성읍에 막 왔으니 빨리 가라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성읍에 들어서니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는 중에 사무엘과 우연히(?) 마주칩니다.
또 하나님께서 전날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을 자’를 만나게 될 것을 예고하고 주십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마주친 이 청년이 바로 지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야 할 사람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무엘의 만찬 초대>
오늘 말씀은 사무엘이 사울을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먼저 18-19절을 읽겠습니다.
18-19절 “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선견자이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사울과 사환은 사무엘을 만나고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를 문습니다.
반면에 사울을 알아본 사무엘은 자신이 선견자임을 밝힌 후 그를 식사 자리에 초대합니다.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는 말은 시간적 의미가 아니라 순서적 의미입니다. 즉 사울을 먼저 보내고 사무엘 자신은 나중에 올라가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함께 올라가면서 사울을 자신의 앞에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사무엘이 사울을 자기보다 앞서 보내는 것은 사울이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저녁 만찬에 초대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극진한 예우입니다.
사울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알았기에 최선의 예우를 잦추고 선대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내일 아침에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은, 사흘 동안 암나귀들을 찾아다니며 노숙을 하느라고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룻밤 편히 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중요한 소명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사무엘의 예언의 말씀 –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더 자세하고 깊은 이야기는 내일 아침 하겠지만, 우선 사무엘은 사울의 걱정을 덜기 위하여 세 가지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첫째, 사울의 최대 관심사, 곧 암나귀들의 행방을 알려줍니다.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19)고 합니다. ‘네 마음에 있는 것’이란 사울의 관심사, 즉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들의 행방입니다. 사무엘은 암나귀들을 이미 찾았다고 알려줍니다(20절a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사실 이 중요한 순간에 암나귀들의 행방을 먼저 말하는 것이 격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 어떤 순간입니까? 그에게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선포하는 순간입니다.
그런 중요한 순간에 사무엘은 먼저 암나귀들의 행방을 먼저 알려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중요한 내용이 있더라도 상대방의 입장(관심사)을 먼저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지도자의 조건입니다. 사무엘의 훌륭한 점은 바로 사울이 처한 상황을 무시하지 않고 그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 줌으로써 그의 마음을 평안케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지도자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채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만 함으로써 많은 예기치 못한 문제를 양산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일체의 배려 없이 자신의 시각에서 모든 일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인해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일의 진행에 차질을 빚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좋은 지도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설사 해결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문제에 신경을 써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고마움을 느끼는 법입니다. 자신도 상대방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약한 자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롬 15:1-2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저와 여러분이 우리가 속한 사회와 교회에서, 사무엘과 같이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지혜롭고 성숙한 지도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20절b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사무엘은 사울을 향해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기대하는 ‘왕’이 될 자라는 뜻입니다.
사울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깜짝 놀란 사울이 이렇게 응답합니다.
21절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자신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만한 자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1) 자신은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막내 지파입니다.
민수기의 첫 번째 인구 조사 때에 보면, 베냐민 지파는 35,400명으로 32,200명인 므낫세 지파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숫자였습니다(민1:36). 그러나 두 번째 인구 조사 때는 오히려 45,600명으로 증가하여 열두 지파 중에 7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민26:28). 이는 43,730명으로 조사된 장자 지파인 르우벤 지파보다 많은 숫자였습니다(민26:7). 불과 40년 만에 자손이 많이 불어나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랬던 베냐민 지파가 한순간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사사기 19장에서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고 살해한 기브아 불량배들이 바로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그 불량배들을 내어 놓으라는 다른 지파의 명령을 듣지 않고, 기브아 사람들은 그들을(범죄자들) 끝까지 감쌌습니다. 이는 베냐민 지파가 이미 타락해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다른 형님지파들과 전쟁을 치렀습니다. 참 건방지죠? 결국 이 일로 베냐민 지파는 몰살을 당했습니다. 겨우 바위에 숨어있던 군사 600명만 살아남았는데, 훗날 길르앗 야베스 여인들을 납치하여 결혼하고, 이제 그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 역시 그러한 와중에서 살아남아 가문을 보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지파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는 경향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가늠할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의지하여 순종할 수 있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장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반드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가르침을 들으십시오.
고전 1:26-3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 앞에서 공연한 자랑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폄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 자신의 아버지의 가족이 베냐민 지파의 모든 가족 중에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앞서 아버지 기스를 ‘유력한 사람’(1절)이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기스의 집안이 베냐민 지파 중에서 가장 보잘 것이 없는 집안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표현은 사울의 겸손함에서 나온 표현인 것 같습니다.
초창기의 사울은 대단히 겸손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왕위에 오늘 후 변질되지만 않았다면,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섬기면서 지도자의 역할만 잘 수행했다면 아마 그의 왕국은 오래 갔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초심을 잃지 않을 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늘 새롭게 기억해야 합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출애굽 하여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너고, 40년을 광야를 지내는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40년 동안 얼마나 놀라운 기적과 체험들을 매일매일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초심을 잃어버렸습니다. 교만해졌습니다.
우리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힘들 때, 어려울 때, 병들었을 때에는 하나님을 열심히 찾다가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는 않습니까? 평안할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찾고, 말씀 앞에 내 자신을 비춰 보아야 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로 내 자신을 몰아가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찾아 나가야 합니다. 처음 마음, 첫 사랑을 끝까지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경고를 잊지 마십시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셋째, 사울을 상석에 앉게 하고, 정중히 식사 대접을 합니다.
22-24절 “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상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23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24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고 이 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 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
사무엘은 청한 자 중 상석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요리인에게 미리 준비한 음식을 내오게 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을 만날 것을 알고 증인될 사람(유력한 사람들) 30명을 초대하고, 음식을 준비시켜 놨던 것입니다.
그 때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24)을 가져옵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몫입니다(레7:32 오른쪽 넓적다리). 사무엘이 사울에게 준 것이 이런 오른쪽 넓적다리인지 아니면 왼쪽 넓적다리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무엘이 사울을 상석에 앉히고 또한 특별히 준비해 두었던 음식을 들게 한 것이 사울을 장차 왕이 될 자로 예우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사무엘의 태도입니다.
사무엘의 입장에서 사울의 등장은 곧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말해서 정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정적의 등장을 기뻐하지는 않습니다.
왕이 된 후의 사울을 보십시오. 다윗이 전혀 왕권에 대한 욕심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고 있는데도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인기를 얻는 듯하자 힘을 다해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사무엘에게서 받은 대접을 생각하였더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헤롯 같은 이는 새로운 정적의 등장을 막기 위해 전혀 죄 없는 아기들을 몰살하는 만행마저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마2:16).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자신의 몫인 넓적다리 고기를 기꺼이 사울에게 내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자신의 이익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앞세우고, 이루기를 소원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빌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사무엘과 사울의 지붕 담화와 배웅>
식사 후 사무엘은 사울을 지붕으로 불러 담화를 나누었습니다.
25-27절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읍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저녁 만찬이 끝난 후 사무엘과 사울은 지붕(옥상)에 올라가서 담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사무엘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할 말이 많겠습니까?
‘이스라엘 왕’이 의미하는 바를 가르쳐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왕을 삼고 자신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했을 것입니다(9:16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다음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26-27절 “그들이 일찍이 일어날새 동틀 때쯤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이르되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27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에게 우리를 앞서게 하라 하니라 사환이 앞서가므로 또 이르되 너는 이제 잠깐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주리라 하더라.”
사무엘은 다음 날 아침에 그를 깨워 동행하면서 사환을 앞서 보냈습니다. 이는 비밀리에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또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들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 시간에(삼상 10:1-8)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사무엘이 이 일을 비밀리에 행하고자 한 이유는 백성들이 왕을 선출하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기도 전에 (10:17-24) 사울이 왕으로 택정된 사실이 알려질 경우, 백성들이 반발할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맺는 말씀 – 감당할 수 없는 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간 사울이 받은 환대를 살펴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자신에게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라니... 스스로 생각할 때 그럴만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과분한 대접은 사울에게만 일어난 일입니까? 아니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사울에게 베푸신 것 이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셨습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그 어떤 다른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조건은 믿음으로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요한은 이렇게 썼습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바라기는 사울에게 주어진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천국 시민’으로서의 축복된 삶을 마음껏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