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17) 2018. 12. 5
어디에나 불량배는 있다
삼상 10:17-27
<사울에게 은밀히 기름 부은 사무엘>
앞서 사무엘은 사울만 남기고, 그에게 은밀히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확신하지 못하는 그에게 세 가지 징조가 임할 것을 예고하셨고, 그 예고는 다 성취되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징조가 성취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몸을 돌이키는 순간 하나님은 그에게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징조를 경험한 후에 그가 변화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변화의 주체는 하나님). 이러한 내적 변화와 더불어 하나님은 외적 은사도 체험해 해 주셨습니다. 세 번째 징조, 곧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 그들 중에 함께 섞여 예언을 한 것입니다.
사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언하는 것을 보고 사울을 알던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하였습니다. 그들은 사울은 본시 선지자 무리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지금 사울이 선지자와 같이 예언하자 신기함을 감추지 못한 것입니다. 이후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보고는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속담). 이것은 사울이 선지자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런 속담이 생긴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 변화와 외적 은사를 통해 사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미스바로 모으다 – 공식적인 절차>
이제는 공식적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것은 은밀한 중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읍니다.
17절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미스바’는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한 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한 뜻깊은 장소입니다.
삼상 7장에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해 4000명이 죽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까지 가져왔지만 다시 패하고, 무려 삼만 명의 사망자를 내었습니다(언약궤는 우상이 아님).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다시 빼앗기고 대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도...
이후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첫 번째로 취한 조치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섬기던 우상을 제하고 회개의 제단을 쌓게 합니다. 블레셋이 이 소식을 듣고 쳐들어 왔으나 하나님은 블레셋 군대 위에 우뢰를 치셔서 블레셋을 혼란에 빠뜨리고 자멸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기 위해 미스바에 에벤에셀(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렇습니다. ‘미스바’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을 세우려는 사무엘은 다시 그들을 ‘미스바’로 모은 것입니다.
<미스바에 모인 목적>
사무엘은 모인 목적을 설명합니다.
18-19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19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그런데 사무엘의 말 속에는 뼈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서운한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일한 왕이시기를 원하셨습니다(“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하여 조르기에 할 수 없이 허락하였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부터 왕정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신17:14-15). 그러나 하나님이 그러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또 그것을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허락하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곧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왕정을 계획하신 것이나 그것을 허락하신 것 모두는 하나님이 인간의 연약함을 알고 그리하신 것뿐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굴복시키기 보다는 내 뜻에 하나님의 뜻을 굴복시켜 관철시키려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 경우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거절하시지만 때로는 그것을 허락하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니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은 일을 하나님이 허락하셨을 때 그 결과는 항상 멸망과 몰락과 실패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에 대한 실례가 많이 나타납니다.
예컨대 모압 왕 발락의 물질 공세에 미혹되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가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물질에 눈이 멀어 가고 싶어 안달이 난 발람의 경우를 보십시오. 결국 하나님은 ‘일어나 함께 가라’(민22:20)고 허락하셨지만 이내 칼을 빼어들고 선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보내긴 보내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달아나는 요나의 경우를 보십시오.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욘1:3)고 했지만 사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스올과 같은 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 바울을 태우고 가던 배의 경우를 보십시오. 항해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극구 말렸지만 선장과 선주의 말만 듣고 출항하였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순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행27:13) 항해하였다가 결국에 광풍 유라굴라를 만나서 파선하고야 말았습니다.
이처럼 외형상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길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하는 일인지를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무엘은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에 절차를 밟고 있는 것입니다.
<제비를 뽑다>
그 공식적인 선출 절차는 이렇습니다. 먼저 지파 별로 균등하게 나오게 하였습니다.
19b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지파대로 천 명을 먼저 선출하여 출마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기회의 균등한 부여를 위한 조치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할 때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외치며 했던 유명한 구호가 있습니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그렇게만 된다면 참 좋은 세상...
사무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부여한 것입니다. 사실 사무엘로서는 함부로 사람들이 도전할 수 없는 자기의 권위를 내세워 자기가 이미 기름 부은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자고 제안할 수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지시하신 사항이라고 하면 백성들은 불만이야 있겠지만 감히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그렇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제비를 뽑겠다는 것입니다. 제비뽑기는 그 시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운 결정을 내리는 수단이었습니다.
실제 성경 가운데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을 선택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사사 시대 기브아를 공략할 사람들을 선정할 때니(삿20:9), 제사장들의 직분을 배치할 할 때(대상24:5),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을 때에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행1:26).
사무엘이 그렇게 한 것은 이스라엘의 분열과 질투, 그리고 소외를 막기 위한 아주 지혜로운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비뽑기의 결과>
그러면 제비뽑기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0-22절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21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22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 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제비를 뽑을 때 배후에서 친히 역사하시어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바로 그 사람 사울이 뽑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때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그 베냐민 지파를 그들 가족별로 가까이 나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비가 뽑힌 사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경품 추첨을 하면 뽑힌 사람은 환호합니다. 먼저 소리를 지르고, 신나서 뛰어 나갑니다. 주변 사람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박수를 쳐 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으로 뽑혔는데 조용한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뽑히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뽑힌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용한 것입니다.
그럼 사울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습니까? 예, 짐 보따리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미스바는 예루살렘 근처 해발 780m 고지입니다. 이곳은 이스라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가나안 전역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이기에 용이한 지역이었습니다. 사무엘의 호출에 의하여 그곳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최소 12,000명이 넘었을 것이므로(19절), 모여진 짐 꾸러미는 엄청난 규모였을 것입니다. 그 속에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울은 자기가 바로 왕으로 뽑힐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숨어 있었을까요?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그의 겸손함 때문입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왕이 되겠다는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 가지 징조와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확증을 받았지만 여전히 자신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만한 그릇이 못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태도입니다. 이 마음이 변치 않았다고 좋았을 것을...
둘째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어떤 두려움일까요?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자신의 출신이 환영 받을만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다른 두려움은 하나님께 대한 것입니다. 그는 이미 사무엘의 말을 듣고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죄를 범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가운데서 승낙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의 입장에서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셨다는 벅찬 감동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견딜 수 없는 부담감이 몰려오기에 짐 꾸러미 사이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환영하는 이스라엘 백성>
사울이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23-24절 “그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24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뽑힌 것에 대하여 불안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외모를 보는 순간 그들은 감탄하였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출중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자신만만하게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이처럼 외면적 위엄과 풍채가 뛰어난 자를 왕으로 원했습니다. 그들이 요구는 영적인데 있지 않고, 육적인데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에 합당한 왕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도 소개하기에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사무엘도 다윗을 기름 부어 세워야 했을 때, 처음에는 용모와 신장을 보고서 이새의 장남이 엘리압이 왕이 될 자인 줄로 착각하기도 했습니다(삼상 16:1-6).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 중심에 있었습니다(삼상 16:7).
사울의 외모에 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의 만세’를 외쳤습니다. ‘왕이여 오래 사시어 우리를 다스리소서’라는 뜻의 충성 맹세입니다.
<왕정 제도의 기틀을 만들다>
이후 사무엘은 왕정제도에 대한 기틀을 마련합니다.
25절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사실 사무엘은 왕정제도의 부정적인 모습을 부각시킨 바가 있습니다(8::11-18). 절대 권력이 가져 올 폐해를 언급한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열방의 세속 권력과는 다른 이스라엘만의 고유한 왕정 제도에 대해 언급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시고, 이스라엘의 왕은 그 뜻을 이루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왕정 제도’를 이미 모세를 통해 주신 바가 있습니다.
신17:14-20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본주의적 왕정 정치가 아니라 왕정 정치를 통해 궁극적인 신정 정치의 실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통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시고, 각각 왕과 백성들이 감당해야 할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 가르친 후, 그 내용을 책에 기록하고 하나님 앞에 두었습니다. ‘여호와 앞에 두었다’는 말은 항상 여호와의 눈을 의식하고 마치 그 분 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당시 실로의 성소는 블레셋에 의해 파괴되었고, 언약궤는 이곳 미스바에 있지 않고 기럇여아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코람데오의 신앙).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이 함께 하다>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이 사울과 함께 하였습니다.
26절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느니라.”
비록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출되었지만 아직 공식적인 즉위식 절차가 남아 있었으며(삼상 11:14-15), 또한 사울이 기거할 왕궁도 그 밑에서 국정을 수행할 관료들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기 성읍을 중심으로 지방 자치제적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울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즉위식을 갖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사울은 우선 집으로 돌아가 대책을 수립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사울만 간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느니라.”
사울은 자신이 베냐민 지파 출신이기에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인정해 줄까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을 기우였습니다. 하나님이 감동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들 중에는 유력한 에브라임 지파나 유다 지파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제비뽑기를 통해 선출된 사울이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명을 맡기시면 돕는 이도 붙여주십니다.
<어디에나 불량배는 있다>
그러나 어디에나 불량배는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반대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27절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불량배’는 ‘하나님께 감동 받은 자들’과 대조되는 단어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사울이 왕이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사울을 멸시한 자들입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는 말은 가장 작은 지파 출신인 사울이 무슨 힘이 있어서 무리를 다스리고 외적과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 하는 뜻입니다. 이는 불량배들의 사고방식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경륜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칼과 같습니다. 내적 상처를 입힙니다.
약3:5-6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성도는 덕이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벧전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그러나 사울은 그들의 말을 듣고도 ‘잠잠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지혜롭게 행동하였습니다. 마치 귀머거리처럼 행동했습니다.
이는 아직 사울이 공식적인 즉위식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불량배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겸허했던 그의 초기 신앙을 볼 때, 자신을 왕으로 선출한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량배들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참은 것으로 보입니다.
훗날 사울이 암몬 사람들에게서 기르앗 야베스 백성들을 구원하여 그가 명실 공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각되었을 때, 백성들은 이 때 사울을 멸시한 불량배들을 죽이려 하였지만 사울이 말려서 간신히 살아났습니다(11:12-13).
<맺는 말씀 – 두 종류의 사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해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주의 일에 협력하려는 ‘하나님께 감동 받은 자들’ 있고, 어떻게든 훼방하려는 ‘불량배’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리더로 일을 하려고 해도, 여러분 앞에 두 종류의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돕는 자들을 귀히 여기고, 훼방하는 자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리더가 아닌 팔로우의 위치에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에게 어떤 자세를 취할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주의 일이라면, ‘불량배’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감동 받은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귀히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