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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완성)

사무엘상 강해(18) - 깨어 대비하는 신앙

작성자박춘경|작성시간18.12.19|조회수359 목록 댓글 0

사무엘상 강해(18) 2018. 12. 12

깨어 대비하는 신앙

삼상 11:1-5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제비 뽑혔으나 아직 공식적으로는 왕으로 취임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왕궁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외적(하드웨어), 내적(소프트웨어)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사울의 외모에 반해 ‘왕의 만세’를 외친 백성들도 있었지만,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며 베냐민 출신 사울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으로 뽑혔음에도 사울은 일단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사울의 권위를 세울만한 사건이 터집니다.

 

<암몬의 길르앗 야베스 침공>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한 것입니다.

1절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암몬 족속’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그의 막내딸이 근친상간으로 낳은 ‘벤암미’(창19:38)의 후손입니다.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조상 – 창19:30-38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5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과는 깊은 혈연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몬은 영토 문제를 빌미로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내내 이스라엘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처음 부딪친 것은 출애굽 당시 암몬 왕 발락이 자신들의 땅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발람에게 뇌물을 주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한 사건입니다(신 23장).

 

가나안 정착 과정에서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강 동쪽을 차지합니다(민 32:39-42, 수 17:6). 그 사람들이 바로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입니다. 그런데 그 이웃에는 암몬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길르앗 야베스’와 암몬 족속은 잦은 영토 분쟁을 빚을 수밖에 없었습니다(삿 3:13, 11:13-18, 12:1-3). 한 때(사사시대) 암몬이 18년 동안 길르앗 야베스를 지배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길르앗 야베스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가서 암몬을 물리쳐주면 군대장관으로, 지도자로 삼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삿 11장). 이 때 입다가 앞장서서 암몬을 물리친 바가 있습니다. 이렇듯 암몬과 길르앗 야베스는 오랜 동안 피차간에 원한관계에 있었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암몬은 입다에게 당한 패배에 여전히 적개심을 품고 있는 암몬 족속이 길르앗을 도로 빼앗을 기회를 엿보았을 것입니다. 조용히 힘을 기르던 암몬족속은 ‘나하스’라는 왕이 다스릴 때에 다시금 이곳을 빼앗고, 과거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쳐들어 온 것입니다. 나하스는 사울과 다윗 시대에 걸쳐 암몬을 다스리던 왕입니다. 

 

<우리와 언약하자>

 

그런데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의 반응이 의외입니다.

1절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싸워보지도 않고 스스로 숙이고 들어갑니다. “우리와 언약하자”고 합니다. 이 말은 스스로 종속의 관계로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즉 ‘항복하겠으니 침략 행위를 중단해 달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전의를 상실한 나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는 확신입니다.

 

둘째, 스스로를 지킬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전에 입다를 모셔올 때도 그랬습니다. 자신들이 감당할 능력이 못되자 자신들이 내쫓은 입다를 모셔 와서 대신 싸워달라고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그 때 입다는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그 과정에서 잘못된 맹세를 해 딸이 죽음). 그런데 그 이후에도 암몬은 힘을 길러 가는데, ‘길르앗 야베스’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르앗 야베스’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에게 꼭 필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신무장, 곧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고 하는 확신입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이 확신은 강화될 것입니다. 의인 10명만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또 하나는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길러야 합니다. “깨어 대비 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사탄의 세력)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과거 스스로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에 숫한 수난과 모욕을 당했습니다.

 

과거 일본은 1903년 제5회 오사카 '내국권업박람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때 '학술 인류관'이란 전시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타이완인, 아이누인, 류큐인 등과 함께 두 명의 조선 여인을 전시했습니다. 거창하게 인류학의 학문적인 가치가 있는 전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구경거리였습니다.

이런 모욕적인 일은 또 한 번 있었습니다. 1907년, 3월 일본에서 열린 '도쿄권업박람회'에서 박람회 흥행을 위한 목적으로 또 다시 조선인 남녀를 전시한 것입니다. 난간을 사이에 두고 일본 관람객들이 안에 있던 조선인을 구경하는, 그야말로 '인간 동물원'의 모습이었습니다. 대구 출신 여인 정씨와 남성 박씨는 일본박람회에 가서 심부름만하면 돈벌이를 할 수 있다는 꾐에 속아 도쿄로 간 것입니다. 자신들보다 열등한 사람을 전시함으로서 시각적 호기심으로 시선을 끌고자한 것입니다. 20세기 초,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일본인들의 자긍심과 제국주의 우월함을 과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대한매일신보 기자는 이렇게 당시의 모욕을 표현하였습니다.

“오호 통재라 우리 동포여 예전에 우리가 아프리카 토인종을 불쌍히 여겼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어찌 그들이 우리를 더욱 불쌍히 여기게 될 줄 알았으리오.”  - 대한매일신보 6월 21일자 -

 

그 이후 나라마저 빼앗기는 비극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스스로 힘을 기르지 못한 민족의 비극입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 사탄의 공격에 항상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벧전5:8-9a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언약을 요구하자 나하스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2절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오른쪽’은 주로 권능과 복을 상징합니다. ‘오른 눈을 빼 버리겠다’는 것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도록 다 불구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나하스는 단순한 영토 확장뿐만 아니라 과거 입다로부터 당한 조상들의 수치를 앙갚음하겠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답변을 들은 야베스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하였을까요? 아마 그들은 당장은 억울하고 분하지만 그래도 살 길은 암몬 사람들에게 굴복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언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들이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면 나하스도 기뻐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오른 눈을 뽑아야 조약을 체결하겠다는 것은 조약을 맺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끝내 점령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아무리 살아보겠다고 비굴함을 참고 세상에 굴복하고 마귀에게 굴복해봐야 살기는커녕 오히려 죽을 일, 망신스러운 일만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시146:3-5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잠시 위기를 모면하겠다고 신앙을 버리고 마귀에게 가 봐야 절대로 평안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막혔던 일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의지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말씀하셨습니다. 힘들어도 이겨놓고 싸운다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말고 더욱 강하게 전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도움을 청하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

 

이에 기르앗 야베스 장로들이 다시 요청합니다.

3절 “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길르앗 야베스의 장로들은 ‘이레 동안’ 말미를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스라엘 전역에 구원을 요청해서 응답이 없으면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갈테니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나하스는 이처럼 7일을 기다려 줍니다. 전 세계 전쟁사를 통해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도움을 구할 시간을 준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구원군이 온다면 점령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텐데... 무슨 이유에서 나하스는 7일 동안이나 기다렸을까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연합군을 조직하지 못할 것이라는 나하스의 판단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비록 왕을 선출하기는 하였지만 아직 중앙 집권적인 정치 형태를 잦추지 못했고 여전히 지파 동맹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군사를 소집하여 길르앗 야베스를 구원하러 달려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나하스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즉 그는 이스라엘 전체를 상대로 싸워도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것입니다. 이는 2절에서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는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을 과신한 것입니다. 야베스와의 국부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보복의 여지를 남기는 것보다 이스라엘 전체와의 싸움을 통해 완전한 승리를 거둔 후 이스라엘을 영구적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과연 나하스의 의도대로 되었습니까? 온 이스라엘이 나하스에게 모욕을 당했습니까?

아닙니다.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절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모욕을 당한 것은 나하스와 암몬 사람들입니다. 암몬 사람들은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에 이끌려 크게 패하여 모든 군사들이 다 흩어져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즉 나하스의 교만으로 인하여 암몬 사람들은 온 이스라엘을 모욕하기는커녕 길르앗 야베스조차 점령하지 못하고 처절하게 패하여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것입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축구가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위기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예선전 첫 게임에서 바레인을 6-0으로 대파했습니다. 이에 김학범 감독이 두 번째 말레이시아 전에서 상대를 얕보고 대거 후보 선수들을 출전시켰습니다. 그래도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말레이시아에게 1-2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조 2위로 16강에 올라 상대조 1위와 대결해야 하는 등 내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결국 결승에서 일본을 2-1로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만 한 순간 교만과 방심은 큰 위기를 초래하였습니다.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 선수들도 한국과의 마지막 조별 경기를 앞두고 방심하다가 한 방 크게 당했습니다(2-0). 조 예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조 3위로(1승 2패) 탈락했지만 독일을 이긴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교만의 결국입니다. 교만은 언제나 파멸을 불러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을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잠11: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사5: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도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자신감이 넘치고 모든 일이 잘 풀려도 더욱 낮아지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경고하셨습니다.

 

<사자가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길르앗 야베스 장로들이 보낸 사자는 사울의 고향 기브아에도 갔습니다.

4-5절 “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기브아는 길르앗 야베스로부터 약 70여 km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자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출된 ‘사울’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기브아로 온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랬다면 아마 제일 먼저 사울을 수소문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냥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위기를 전했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아직 이스라엘의 왕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반증합니다.

기부아 주민들조차도 사울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하지 않고, 그저 소리를 높여 울고만 있습니다. 이들은 동족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위기 가운데 처했음과 자신들에겐 그들을 도울만한 힘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슬피 울었을 것입니다.

 

그 때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백성들이 우는 것을 보고 ‘무슨 일로 우느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뽑혔음에도 사울은 여전히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왕적 소명을 받고서도 사울이 우유부단하여 자신의 통치권을 행사하지 아니하였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아직 공식적인 즉위식을 갖지 않은 상황에서 사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린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서 사울이 자신의 일상생활에 충실하고 있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마침’이란 단어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때 맞춰’ 사울이 그 사실을 인지한 것입니다. 사울이 농사 일을 더 길게 했다든지, 더 일찍 내려왔다든지 하면 그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순간을 하나님이 섭리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찌되었든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는데, 그에게 왕의 권한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암몬 족속이 ‘길르앗 야베스’를 쳐들어 온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지 하는 생각입니다.

 

<맺는 말씀 – 깨어 대비하는 신앙>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길르앗 야베스’ 주님들의 불신앙과 나약함, 그리고 준비되지 못한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영적 전쟁 중에 있습니다.

사탄의 세력은 늘 우리를 공격해 올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기습을 당합니다.

 

바울의 권면과 같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늘 깨어 기도하며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엡6:11-13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바라기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 주님과 동행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으로 ‘성령의 검’을 준비하여,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넉넉히 이기는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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