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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완성)

사무엘상 강해(22) - 사울의 망령된 제사

작성자박춘경|작성시간19.01.10|조회수272 목록 댓글 0

사무엘상 강해(22) 2019. 1. 9

사울의 망령된 제사

삼상 13:1-15a

 

<상비군을 조직하다>

 

사울이 왕위에 오른지 2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사울은 군사력 강화를 시도했습니다.

1-2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2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이는 사울의 최우선의 과제가 블레셋의 압제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비군을 조직했습니다. 우선 삼천 명을 택하였습니다. 이천 명은 자신의 수하에 두었습니다(‘믹마스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 예루살렘 북동쪽 약 12km 지점에 위치. ‘벧엘은 믹마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5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사무엘 순회 통치하던 성읍. 둘 곳 다 험한 산지로 군사적 요충지).

그리고 천 명은 사울의 장남인 요나단의 수하에 두어 베냐민 기브아 성읍에 있게 하였습니다.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으로 사울 통치의 중심지였습니다사울은 이방 침략으로부터 효과적으로 이스라엘을 지키며블레셋의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군사 행동의 일환으로 이와 같은 군사를 주요 요충지에 배치시켰을 것입니다 .

 

<요나단의 블레셋 수비대 공격>

 

이 때 요나단이 게바라는 곳에 있는 블레셋 군대를 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3-4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4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지금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곳곳에 수비대를 두고 압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땅에 있는 블레셋 군대를 몰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게바는 요나단이 있는 기브아에서 북동쪽으로 5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본래 베냐민 지파의 기업이나 레위인의 성읍으로 구별된 곳입니다( 18:24, 21:17). ‘수비대는 블레셋이 이스라엘 통치를 위해 주둔시킨 군사 기지이거나 초소일 것입니다(삼상 10:5).

문제는 전쟁이 확대되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블레셋의 수비대를 쳤다는 소식이 블레셋에 전해졌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대규모의 병력을 모아 반격을 해올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이에 사울은 온 땅에 나팔을 불어 비상을 걸고, 군사를 소집하였습니다. 여기서 히브리 사람은 들으라 라고 말하였는데, ‘히브리란 말은 이스라엘인’, ‘유대인과 더불어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지만이는 대개 다른 민족이 이스라엘을 멸시하여 부를 때 주로 쓰였고 스스로는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삼상 4:6, 14:11).

사울의 전쟁 준비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길갈로 속속 모여들었습니다(앞서 사울을 왕으로 세웠던 장소).

 

<도망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런데 블레셋 군대를 보는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버렸습니다.

5-7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 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블레셋 군대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병거(두 필의 말이 끄는 전투용 수레)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이 모였습니다(병거보다 마병의 숫자가 많은 것이 일반적입니다본절에서 마병에 비해 병거의 수가 지나치게 많기에 학자들은 이를 필사의 오기로 보기도 합니다. 그 수를  1,000 또는 3,000으로 봅니다.)

모래 같이 많다는 말은(‘하늘의 별같이라는 말과 함께) 셀 수 없이 많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13:16, 15:5, 32:13, 28:62). ‘벧아웬 ‘우상의 집’ 또는 악의 집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블레셋 군대의 위용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급함절박함을 느꼈습니다. 한 마디로 겁을 먹은 것입니다.

그들은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었습니다. 숨을 수 있는 곳은 전부 찾아가서 숨은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요단 강을 건너 갓과 갓과 길르앗 땅’, 곧 갓르우벤므낫세 반 지파가 차지한 요단 동편 땅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사울의 범죄>

 

그 때 사울은 아직 길갈에 남아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기 위해서입니다.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은 과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무엘이 어떤 기적을 일으켰는지를 경험하였습니다.

삼상7:7-12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그래서 이번에도 사무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사무엘은 정한 시간’(이레) 안에 사울에게 나아가겠다고 응답하였을 것입니다.

앞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예언처럼 하신 말이 생각납니다.

삼상 10: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궁금한 것 한 가지. 사무엘은 즉시 달려가지 않고 왜 정한 시간을 둔 것일까요? 그것도 이레씩이나...

지금 사울은 매우 다급합니다. 블레셋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고, 이스라엘 군사들은 블레셋을 두려워하여 하나 둘씩 이탈하여 도망을 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명의 군사라도 더 있을 때 제사를 지내고 출전을 해야 하는데 하루도 아니고 이레를 기다리라고 했으니 사울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사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레의 정한 시간이란 불필요하고 원망스러운 시간이요, 쓸데없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는 도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기한을 만들어서 자기를 곤경에 빠뜨리나하는 원망의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는 인간적인 생각에서는 충분히 그럴만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에게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상황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떤 조건에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수행하는지를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서 그의 믿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 순종하기 쉬운 것을 가지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이삭을 통해 시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긴 시간의 기한을 정하고, 그것도 마지막 순간에 인내하며 기다린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병든 것을 아시고도 의도적으로 지체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사무엘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우선 조급한 마음이 든 사울은 스스로 제사를 드리고 맙니다.

9-12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두 가지 면에서 사울은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하나는 정한 시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 잘못입니다.

아직 정한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조급한 마음에 사울은 번제와 화목제물을 가져오게 합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충성을 상징하는 제사며화목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교제를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번제가 끝나자 사무엘이 온 것입니다(아직 화목제는 드리지 못함). 한 시간만 더 기다렸더라면...


우리도 신앙생활 잘 하다가 주님 오시기 한 시간 전에 배반할수도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정한 시간'을 잘 참고 인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사울이 직접 제사(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제사는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사 왕이라 하더라도 드릴 수 없습니다(신약시대 만인 제사장). 제사는 반드시 제사장이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즉 사무엘이 친히 집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스스로 제자장의 역할을 수행한 것입니다. 이는 명백한 월권 행위입니다.

 

사울이 먼저 번제를 드린 것을 안 사무엘은 사울의 불순종에 불같은 책망을 합니다(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11). 이에 대해 사울은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11-12)하고 변명을 합니다.

 

세 가지의 변명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이 당시는 민족 간의 전쟁이 바로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모든 전쟁은 성전(聖戰, Holy War)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출전 전에 자신이 믿는 신에게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한 채로 전쟁에 나서게 될까 하는 두려움에서,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문장이 바로 부득이하여..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실상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위급한 상황에 돌리려고 하는 책임회피성 발언입니다.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서 사울의 심정에 동정이 갑니다. 이런 경우에 세상에서는 정상 참작을 하여 무죄방면하거나 형벌을 감량해 줍니다.(주취감형 술에 취해서 한 행동에 대해 감형을 해 줌).

그러므로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도 웬만하면 사울의 잘못을 덮어 줄만도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대답은 엄격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무엘의 책망>

 

사무엘의 구체적인 책망의 내용은 13-15a에 나옵니다.

13-15a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의 잘못에 추상같은 책망을 합니다. 그의 행동이 망령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리석게 굴다’, ‘교만하게 행동하다는 뜻입니다.


상황 윤리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상황 윤리1966조셉 플레처라는 사람이 쓴 책의 제목으로 인하여 대중화된 표현으로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정상 참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개인이나 교회, 그리고 어떤 공동체가 윤리적 선택을 할 때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사무엘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13). 이 말씀은 사울이 상황에 쫓겨 한 행동이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합리화되거나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결론은 같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의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사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 차제가 망령된 행동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전제되지 않는 제사를 드린 것으로는 결코 승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승리는커녕 그에게는 엄청난 저주가 임합니다.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14)는 것입니다. 그가 왕 위에 오른 뒤 불과 2년 만에 이런 치명적인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 원인이 분명히 사울에게 있음을 밝힙니다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시제가 과거형입니다. 이는 예언적 완료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비록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과거에 일어난 일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분명히 일어날 일이기에 과거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사무엘은 화가 나서 사울 왕과 함께 하지 않고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 버렸습니다(15).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비록 왕을 세우셨으나, 지금 왕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왕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도전을 줍니다.


우리도 칠일을 기다리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조급한 마음에 하나님보다는 상황에 따라 적당히 타협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합리화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고 뭐고 일단 살고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할 때가 있습니다부득이하여... 했다는 말만 반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망령된 행동입니다. 하나님보다 상황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기는 망령된 행동입니다. 스스로 올무에 걸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변명할 수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사울의 변명을 반복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상황을 극복하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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