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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완성)

사무엘상 강해(30) - 여호와의 영이 떠나면

작성자박춘경|작성시간19.03.14|조회수1,443 목록 댓글 0

사무엘상 강해(30) 2019. 3. 13

여호와의 영이 떠나면

삼상 16:14-23

 

<다윗에게 기름 부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새 왕을 찾아 가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장소까지 알려주셨습니다.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집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의 아들들 중에서 한 왕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보복을 두려워한 사무엘이 주저하자, 하나님은 지혜로운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제사에 청하라는 것입니다.

 

이에 사무엘은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화목제를 드리면서 그 자리에 이새와 그의 아들들도 초대합니다. 제사 후에 사무엘은 이새의 장남 엘리압을 보는데 그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6)하며 감탄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본 것은 용모 ‘였습니다. 전에 사울을 처음 보았을 때와 같습니다. 사울도 준수한 용모에 큰 키를 갖추고 있었던 사람입니다(삼상 9:2).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보지 말라고 하십니다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이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사람의 판단 기준과 하나님의 판단 기준 간의 차이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즉 인간의 육신의 눈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하는 것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영적 눈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찾기 위해 다른 아들들도 지나가게 합니다. 둘째 아비나답이 지나가고, 셋째 삼마가 지나가도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일곱 명의 아들들이 다 지나가도 하나님은 아무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당황한 사무엘은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이새는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하고 대답합니다. 사무엘은 막내아들을 데려오라고 하며, 그가 오기 전에는 식사 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새는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데려왔습니다. 그의 첫 인상을 성경은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1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빛이 붉다는 말은 다윗의 볼이 붉은 것을 가리킵니다. 아직 어린 아이의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눈이 빼어나다는 말은 눈에 총기가 있어서 초롱초롱 반짝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굴이 아름답다는 말은 단지 다윗의 외양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내면적 인품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에 합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13:22)이었던 것입니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주저 없이 기름 뿔을 취하여 다윗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울을 대신 할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선택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울 왕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14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은 구약 시대에도 활동했던 ‘성령입니다( 3:10). 사울이 하나님을 저버리자그 동안 사울을 사로잡아 권능으로 역사하셨던 성령 (삼상 11:6)께서 더 이상 그와 함께 하지 않고 떠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13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어가시기 위해 사울에게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성령님은 한 사람에게만 들어가셔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성령님 쟁탈전이 벌어져야 할 것입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령님은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역사하십니다.

 

사무엘서에서도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삼상10:1-7을 읽겠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그에게 확신을 주는 장면입니다. 집에서 도망친 암나귀들을 찾으러 나왔다가 얼떨결에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은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사무엘은 세 가지 징조를 만날 것임을 예고하여 주십니다세 가지 징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다는 분명한 내적 확신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징조는 베냐민 경계에서 있는 라헬의 묘실 근처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인데, 그 두 사람이 네가 찾던 암나귀들은 이미 찾았기 때문에 걱정 하지 말고오히려 아버지 기스가 당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하고 있다라는 말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징조는 다볼에 있는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벧엘로 제사 드리러 가는 세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습니다염소포도주 모두 하나님께 드려질 제물입니다(15:5-6). 동시에 이 세 가지 물건은 왕에게 드리는 물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떡 세 덩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떡 두 덩이를 사울에게 줄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세 번째 징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산, 곧 사무엘 선지자가 세운 선지학교가 있는 곳에 이르러 예언하며 내려오는 선지자의 무리를 만난 것인데, 그 때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 임하여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여러 사람에게 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참고 삼상 19:18~24)

 

신약에서 오순절 성령의 강림도 (불의 혀같이 갈리지는 모양으로)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2:1-4).

 

그러므로 다윗에게 임하기 위해 사울에게서 떠났다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윗에게 들어가시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니라 사울이 하나님을 거부하기에 떠나신 것입니다. 성령이 떠난 책임은 오롯이 사울 자신에게 있습니다. 오로지 그 자신의 불순종 때문에 성령님이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약시대(오순절 성령의 강림 이후)를 사는 사람들은 특별한 복을 받았습니다.

구약 시대의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임재 하셨습니다. 즉 구약시대의 임재는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 선지자들, 그리고 소수의 왕들에게만 임하셨습니다. 말하자면 구약 시대의 성령의 임재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습니다. 때문에 만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그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거두어 가시기도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삼손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고 머리카락까지 잘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성령을 거두어가셨습니다. 그 이후 삼손을 전혀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머리카락이 잘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떠났기 때문).

 

이러한 사실을 알았기에 다윗은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51:11)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 선령의 임재는 구약시대 성령의 임재와는 전혀 다릅니다. 구약시대 성령의 임재 목적이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되어 있다면 신약 시대의 성령은 성도의 구원의 보증으로 임재하십니다.

 

1:1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한 사람들 가운데 임재하셔서, 구원의 도장()을 찍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의 보증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고의적으로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지 않은 한) 성령님은 구원의 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성령님이 떠나갈까를 두려워하지 말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하게 될까를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잘못될 때, 우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근심하십니다.

더 나아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친히 간구하십니다.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바울은 살전5:19에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님의 사역과 연관하여 해석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소멸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성령님의 사역이 약화 되어갈 수 있음을 경고(警告)한 것입니다. 즉 성령님을 근심하게 할 때, 그 은사와 능력도 함께 약화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그야말로 꺼진 불처럼’(소멸) 만들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매일 성령 충만 받기를 힘씀으로써 우리 속에 있는 성령의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항상 기억하고, 그 분이 내 안에서 근심하거나, 탄식하지 않으시도록 항상 말씀 가운데, 그리고 기도 생활 가운데 성령 충만한 생활을 유지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그러면 성령이 떠난 사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14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여기서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란 문장은 잘못해석 하면 마치 하나님께 악의 근원인 것처럼 해석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악령을 사용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도 내에서만 역사할 수 있는 사단의 영을 가리킵니다( 1:12).

성령님이 떠나면 빈 마음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령(사탄)이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다고 해서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과 영혼을 내가 지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부하여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떠나가시는 순간 악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물론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더러운 귀신이 나간 자리에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옴), 사람의 마음이 빈 마음으로 있지 않다는 가르침만은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이 틈타지 못하게 할 최선의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 날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치 빛이 있으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신하들의 권면>

 

사울이 고통 받는 것을 본 신하들이 사울에게 제안을 합니다.

15-18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이는 음악이 고대 세계에서 정신 질환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사용되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이는 현대의학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좋은 음악이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오고 우리 몸과 영혼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이에 소년 한 사람이 다윗을 소개합니다. 용기무용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고 소개합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다윗은 양떼를 지키는 과정에서 사자와 곰과 싸워 이길 수 있는(삼상 17:34-36) 용기와 능력(무용 무기도 잘 다룸. 지팡이와 물맷돌)까지 겸비하고 있습니다많은 시들을 지을 수 있는 풍부한 감수성과 악기를 다루는 재능도 지니고 있었습니다거기에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더욱 영적으로 충만해졌을 것입니다이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라는 말을 들을 만큼 신체적으로영적으로 성숙을 이루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다윗을 초대하는 사울>

 

이에 사울 왕은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초청합니다.

19-22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20 이새가 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22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사울의 명령을 들은 이새는 다윗 편에 왕에게 보내는 예물, 포도주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어 보냅니다. 아무리 자신의 아들 다윗이 솔로몬에게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해도 현재의 왕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춘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보는 순간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를 크게 사랑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 대단한 신뢰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자신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무기를 맡기는 것은 생명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특별한 신임을 받는 자가 아니고서는 맡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리고는 아예 아버지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자신의 곁에 두겠다고 통보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다윗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그야말로 가슴이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그는 자기가 사울의 뒤를 이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사무엘 선지자조차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2)라고 두려워했을 정도였으니, 다윗은 그 당사자로서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어디 다른 곳에 숨어 지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울 왕이 자신을 부른다고 하니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요? 그리고 항상 사울 곁에 있게 되었으니... 만약 자신이 사무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사실이 사울의 귀에 들어가면 당장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하에 이루어진 일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스라엘을 위한 큰 인물로 들어 쓰시기 위하여 그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를 교육시키고 연단시켜서 준비하셨던 것입니다다윗으로 하여금 사울을 수행하는 중에 왕실 법도며 궁중 일을 익히면서 새 왕으로서의 자질을 다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을 준비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의 궁에서 자라게 하신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다윗이 사울 곁에 있게 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23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다윗이기 때문에그가 수금을 연주하자 사단의 영은 그만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다윗은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을 것이므로 더욱 사단의 영은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찬양은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는 회개를 동반하지 않는 치료는 일시적인 효과만 거둘 수 있을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사울이 고통을 받는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았습니다그러기에 일시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후에도 여전히 사울이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에게 고통을 당하였습니다(삼상 18:10).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장 두려운 병은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지 않는 병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질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지 않고서는 결단코 치유될 수 없습니다. 잠시 육체의 질병이 치료되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보다 근원적인 병, 죽음에 이르는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치료약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입니다오직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의 복음이 죄의 병을 치료할 유일한 약입니다. 우리를 사망에 이르는 병에서 치료하여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약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생명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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