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3) 2018. 7. 25
한나의 감사 찬양
삼상 2:1-11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낳아 서원대로 하나님께 드린 한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의 배경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임신한 직후나 아들을 낳은 직후에 드린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젖을 뗀 후 자신의 서원대로 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한 감사 기도와 찬양입니다.
이때의 한나의 마음은 어떠하였겠습니까?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해 보면, 매우 아쉬운 감정 상태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고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합니다. 자신의 서원을 후회할 수도, 남편을 시켜 자신의 서원을 무효화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레위인의 법을 내세워(30세부터 50세까지) 시간을 끌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서원한 대로 ‘간신히 젖뗀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감사 찬송을 올리고 있습니다. 억지로 드리는 감사 찬양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찬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한나의 찬양은 훗날,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후 찬양을 드린 마리아의 기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내용과 구조에 있어서 매우 흡사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시간이 지나도, 내게 손해가 되더라도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찬양>
먼저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1절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먼저, 한나는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한다”고 고백합니다.
지금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지만 그 아이를 주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비유적으로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다”라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뿔’은 종종 ‘권위나 능력, 힘’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한나의 뿔을 높이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녀의 수치를 제거해주시고 잉태케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녀가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나타내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지 못했을 때는 브닌나에게 무시 받고 천대받아도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뿔을 들 수 있게 해주셔서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녀에는 ‘구원’입니다.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나는 자신이 경험한 구원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구원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 내가 경험한 여러 은혜를 간증하며, 하나님을 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
그리하여 한나는 ‘자신이 만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2절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한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중요한 세 가지 특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한나는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기에서 ‘거룩하심’이란 말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속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부패한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구별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피조물과는 달리 점도 없고, 흠도 없으십니다. 한마디로 죄가 전혀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에는 악이 전혀 없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와 악, 거짓을 미워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레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그러나 인간의 육신을 입은 우리 인간들은 완벽하게 하나님 앞에 거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 죄를 대신 속죄하시려고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한 존재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이신칭의). 물론 그렇다고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은혜를 더하려고 죄에 거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성화의 삶).
살전 4:7-8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둘째,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다”고 고백하며 찬양합니다.
왜 성경은 하나님을 유일하신 분이라고 할까요?
그 근거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저는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3:13-14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 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모세에게 임재하신 하나님은 당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피조되지 않고 스스로 있는 자는 모든 것의 근원이십니다. 유일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계명의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신도 인정하거나, 어떤 모양이든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조하여 가르친 것이 있습니다.
신4:32-36절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33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34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약 다른 신을 섬긴다면 반드시 망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였습니다.
신 8:19-20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또한,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렇게 전합니다.
사44:6~8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7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신약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요17장에서 기도하시는 중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 8:5-6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딤전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 삼라만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도,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하실 이도 단 한 분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그분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고 했습니다.
‘반석과 같다’는 말씀은 변함없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신실한 분이십니다(신 7:9).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계1:8, 21:6),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사48:12), 시작과 마침이 되시신 분이십니다(계22:13).
또한, 그분의 사랑이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신실한 분이십니다.
약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추하고 더러운 우리들이지만 지금 이 시간까지도 변함없이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은 이 세상 끝날까지 영원토록 변함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신 약속은 절대로 변개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참으로 믿고 신뢰할 분은 신실하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만 믿고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교만하지 말 것>
이러한 거룩하시고, 유일하시며,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체험적으로) 만난 사람은 철저히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나는 인간들에게 교만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3절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여기서 "행동"이란 인간의 교만하고 오만한 행동을 뜻합니다. 마치 저울을 속일 수 없듯이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악한 자들의 모든 행적을 정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어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할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6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생사를 주관하십니다.
자기 의지대로 사는 사람이 없고, 자기 의지대로 죽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태어났고, 어느 순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지 아는 이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가르침 - 한 부자가 소출이 풍성하여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쌓아놓고서 자기 영혼에게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20) 하셨습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세상 것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생사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고 날마다 자유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죽고 사는 것은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오직 내가 신경 쓸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맡은 사명에 충성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둘째, 높고 낮아짐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5절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7-8절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부하게 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할 때 애굽 백성들에게 물품을 받아서 나왔습니다. 이를 출 12:36절에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입게 하셔서 물품을 취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셨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막을 짓는 예물을 낼 수 있었습니다. 출35:25절에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 했습니다. 모세가 더 이상 가져오지 못하도록 많은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높아지고 낮아지고, 흥하고 망하는 등 우리 인간의 흥망성쇠는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 항상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안에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승패, 곧 이기고 지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4절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9-10절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제아무리 훌륭한 육체와 탁월한 효능의 병기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제아무리 헤어나기 힘든 역경에 처한 자라고 할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며 능력으로 함께 하심으로 승리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르비딤에서 싸울 때에,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올라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 순간에만 여호수아가 이겼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자 돌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할 때 완전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출17장).
그렇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우리 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승패의 모든 권한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간 한나>
하나님 앞에 나와 감사와 찬양을 드린 한나는 사무엘을 엘리 집에 떼어 놓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1절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맺는 말씀>
우리는 한나의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반석처럼 신뢰할 수 있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고백은 그냥 지식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체험적인 신앙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한나와 같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지극히 겸손해 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도, 높고 낮아짐도, 이기고 지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믿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붙잡힐 때만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쓰실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