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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완성)

사무엘상 강해(48) - 다윗을 모욕하는 나발

작성자박춘경|작성시간19.07.31|조회수995 목록 댓글 0

사무엘상 강해(48) 2019. 7. 31

다윗을 모욕하는 나발

삼상 25:1-13

 

<사무엘의 죽음>

 

광야를 헤매며 도망 다니던 다윗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자 최초의 선지자였던 사무엘이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백성이 모여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라마에 있는 그의 집에서 장사하였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사무엘의 장례에 참석하고 싶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의 죽음은 다윗에게는 큰 악재였습니다. 그나마 사울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사라진 것입니다. 사울 왕의 입장에서는 이제 눈치 보지 않고 다윗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사울을 두려워한 다윗은 바란 광야로 내려갔습니다. 지금까지 다윗이 피신하여 도망한 곳 중에서 가장 남쪽지역입니다자신의 신변에 위험을 느껴 가장 먼 곳인 바란 광야까지 내려갑니다.

 

<나발에게 양식을 구하러 보낸 다윗>

 

바란으로 내려갔던 다윗은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란 광야는 오랜 시간 사람이 거하기에는 적합한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시 유다 지역인 마온으로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든지 다윗을 늘 괴롭히는 것은 먹는 문제였습니다.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사울과 달리, 다윗은 공식적으로 보급품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은밀한 방법으로 후원을 받아 연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급이 어려워지자 다윗은 나발이라는 부자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2-8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4 다윗이 나발이 자기 양 털을 깎는다 함을 광야에서 들은지라/ 5 다윗이 이에 소년 열 명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6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7 네게 양 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8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이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나발은 마온이라는 동네에 사는 사람인데 그곳에서 약 1.5km 쯤 떨어진 갈멜에 그의 농장이 있었습니다나발은 양이 3,000마리염소는 1,000마리나 되는 아주 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완고하고(인색하고), 행실이 악한 자였습니다.

 

다윗은 소년 열 명을 보내 양식을 공급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다윗 입장에서는 그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는 같은 유다 지파의 갈렙 족속이었습니다(3).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복하는데 앞장섰던 갈렙의 후손으로서 신앙의 뿌리가 깊은 가문의 후손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비록 그가 완고하고 악한 사람이라도 같은 유다지파인 자신의 입장을 헤아려 주리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둘째, 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의 보호막이 되어 주었습니다(7-8).

나발의 목자들이 갈멜에서 양을 칠 때에 단 한 마리의 양도 약탈한 적이 없었습니다.

 

보통 보급품이 끊긴 군대(게릴라)는 마을 주민들의 곡식이나 짐승을 약탈하기 일쑤입니다.

요즘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북한의 인민군들이 주변 마을의 양식을 훔쳐간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양떼가 들짐승들이나 강도들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도록 지켜주었습니다.

그 증거 구절이 21절입니다.

21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다윗이 약탈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하나님의 대리자)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 단 한 순간도 그것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기에, 자신이 잘못 행동하면 곧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 진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또 약탈을 당한 자가 훗날 자신이 돌보이야 할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위치에 걸맞게 행동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의식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1:20)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은 나발에게 이 같은 사실을 전하게 함으로서, 그로 하여금 억지로가 아닌 기쁨으로 자신에게 양식을 보내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셋째, 마침 그 때가 양털 깎는 잔치의 날이었습니다(2).

양털 깎는 날은 목자들에게는 마치 추수하는 날 같은 큰 잔치의 날이어서이 날에는 지나는 객이나 어떤 사람에게도 먹을 것을 나누어줍니다(8b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잔치가 있는 날이면 거지가 와도 한상 차려주었습니다.

 

이러한 몇 가지 이유에서 다윗은 나발에게 소년들을 보내어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또한 도움을 청하는 다윗의 자세를 보십시오.

8c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대신 매우 겸손한 자세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나발의 아들과 같은 자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겸손한 자세로 양식을 구했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할 수 없는 최대의 예우였습니다.

 

<다윗을 모욕하는 나발>


그런데 다윗의 기대는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9-11 “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나발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거절합니다.

더구나 나발의 반응은 사람을 참 기분 나쁘게 합니다.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며 아예 무시합니다.

어떤 이들은 정말로 나발이 다윗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 다윗의 명성은 블레셋까지 퍼져 나갈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블레셋 사람들로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노래를 알고 있을 정도로 다윗은 명성은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다윗의 아버지(이새)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은 의도적인 무시가 분명합니다.

 

나아가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고 말합니다.

지금 사울의 핍박을 피해 도망 다니는 다윗을 도망친 종에 빗대 의도적으로 모욕한 것입니다.

완곡한 표현을 써도 모자랄 판에 모욕적인 언사를 합니다.

 

지난 726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이탈리아 프로축구 유벤투스 초청 경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프로 연합팀(‘K리그’)과의 친선경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경기가 많은 축구 팬들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유벤투스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포르투갈)45분 이상 출전한다는 계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축구 팬들이 최대 40만 원짜리 프리미엄 존 티켓을 샀습니다. 순식간에 입장권 6만 여장이 매진되었습니다. 어떤 가족은 아들이 꼭 호날두를 보고 싶다고 졸라 온 가족이 수 백 만원을 들여 티켓을 사고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45분을 뛴다고 약속했던 호날두는 근육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90분간 몸도 풀지 않은 채 벤치에만 앉아 있었습니다. 팬들이 호날두를 외쳤지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6만여 명의 팬들은 호날두의 등만 쳐다보다가 돌아와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팬미팅, 싸인회, 기자회견까지 대략 10시간 한국에 머무는 동안 예정되었던 행사를 아무 것도 안했답니다.

화가 난 팬들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부르며, 호날두를 ‘날강두(호날두+날강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팬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호날두가 자신의 sns에 런싱 머신을 하는 장면과 함께 집에 와서 참 좋다라고 썼습니다.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자신이 한국에서 거짓말 한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한국 국민 전체를 모독하는 말이 시리 감독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경기 후 호날두가 왜 출전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농담 삼아 호날두를 보길 원한다면 이탈리아에 와서 보라. 비행기 표 값을 내 줄께라고 했답니다. 물론 통역사이 그 말을 통역하지는 않았지만 참 모욕적인 표현입니다. 사과를 해야 할 입장에서 보고 싶으면 이탈리아에 와서 보라는 것입니다. 참 네 가지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옛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말 한 마디의 중요성을 늘 강조합니다.

14: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3:5-6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예를 들어 정 주기 어려우면, 사울 왕의 신하가 주변에 있어 지금 당장은 양식을 주기 어려우니 나중에 기회 봐서 주겠다고 완곡히 거절해도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을 배반하고 도망한 종놈 취급 하면서어디서 왔는지 그 근본도 모르는 놈한테 자기 양식을 어찌 줄 수 있느냐며 경멸한 것은 그가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인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또 오늘 나발의 말을 잘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재산이 자기의 것임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하나가 자신에게 지금 있는 생명(시간)과 건강과 재산과 재능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자기의 것입니까? 야고보 사도가 이렇게 경고한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13-16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물질이 자기의 것입니까?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12:19-21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회가 있는 대로 섬기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내 것으로 섬긴다고 하지 말고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섬기고 베푼다고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격분한 다윗>

 

다윗이 보낸 소년들이 오던 길로 돌아서서 다윗에게 돌아와 이 모든 말을 전하였습니다.

12-13 “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 이 모든 말을 그에게 전하매/ 13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다윗은 심한 모욕을 느꼈습니다.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에 화가 난 것입니다.

또 자신이 선을 베풀었음에도 악으로 갚으려는 나발에게 분노하였습니다(삼상25:21).

 

다윗은 격분하여 부하 400명에게 칼을 차라고 명령하고는 나발의 집을 향해 떠납니다. 아예 나발의 집을 전멸시키려는 생각이었습니다.

21-22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22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중 한 남자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다윗에게 큰 위기입니다.

만일 그 계획대로 됐다면, 놉의 제사장(아히멜렉)과 놉 사람들을 진멸한 사울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실 무장한 400명의 사람들이 무장도 하지 않은 나발의 가족들을 죽인다면 다윗왕가는 치명적인 오욕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잘못했다할지라도 무력에 힘입어서 무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일반 사람들을 몰살시킨다면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통해 다윗의 죄를 막았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잘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노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분노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잘 참았다가 어느 순간 참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지쳐있을 때 조심하십시오. 지치면 절제의 힘이 떨어집니다. 나중에 감당하지 못할 행동을 하게 됩니다.

모든 범죄의 행위도 절제하지 못한 분노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의로운 분노라도 법과 양심의 테두리 안에서 절제되어야 합니다(성령의 9가지 열매 중 마지막).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절제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침착하게 끝까지 완수해 가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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