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6) 2018. 8. 29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나님
삼상 3:1-21
<엘리 가문에 내린 저주>
하나님은 당신의 사자(하나님의 사람)를 보내셔서 부패한 엘리의 가정에 저주가 임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첫째, 엘리 가문에게 내렸던 대제사장의 직분을 거두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30).
둘째, 가문에 속한 자들은 다 단명할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31-33).
셋째, 엘리의 두 아들은 범죄한 장본인들이기에 한날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34).
넷째, 물질적으로도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저주하였습니다(36).
그리고 그들을 대실한 다른 충실한 제사장을 세울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2: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이 말씀은 바로 사무엘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예언이 있었음에도 제사장 엘리의 제사장직은 당분간은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그런데 그가 제사장으로 있을 동안에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1절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던 시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이 침묵하시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 리더십의 부재(不在)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유일한 지도자였던 엘리 제사장의 영적인 상태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2절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나이가 들어가면 눈이 침침해지고 잘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엘리 제사장의 나이나 육신적인 상태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영적인 상태를 암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엘리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만한 영적 민감성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왜 침묵하셨을까요? 말씀을 해보아야 귀담아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요? 바로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엘리나 그의 두 아들이 모두 그 모양 그 꼴이니, 하나님이 차라리 침묵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게 되었던 겁니다.
둘째는 그 시대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매우 타락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 리더의 부재는 전체 백성의 타락을 부추깁니다.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계시의 희귀는 하나님의 심판의 한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암8:11-1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이것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하기가 싫어집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타락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들은 이미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또 다시 말씀해 봐야 듣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입니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친히 구출해 주셨습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면서 계약도 맺었습니다.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법궤가 그것입니다(십계명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
성막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법궤와 성막을 위해 일할 사람도 따로 두셨습니다. 바로 레위사람이요 아론의 자손입니다.
절기를 정하여 하나님의 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다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제사(예배) 따로, 생활 따로’ 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열정이 사라지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도 함께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등불>
바로 이것이 지금 엘리 제사장 시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3절은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3절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소 안을 밝히는 등불을 저녁부터 아침까지 켜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출27:20-21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레24:1-4)
그리고 이 일은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두 아들이 이 일을 잘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사명이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대신 맡은 이가 바로 사무엘이었습니다. 등불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깊은 잠을 자면 안 됩니다. 언제나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작은 일 같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이 중요한 일을 어린 사무엘이 맡아 잘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등불을 꺼뜨리지 않았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성소의 등불을 밝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무엘에게서 희망을 보셨습니다.
어느 날 밤 하나님은 오랜 침묵을 깨고, 소년 사무엘을 친히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례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자기의 양 떼를 칠 때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출3:1).
사울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잃은 암나귀를 두루 찾아다니다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9:3).
다윗도 아비의 양 떼를 지키다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16:11).
엘리사는 열두 겨리 소로 밭을 갈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왕상19:19).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던지다가,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마4:18-22).
뿐입니까? 비록 백성들에게는 매국노로 취급당하였지만, 마태 역시 세관에서 자기의 일을 알 때 부름을 받았습니다.
비록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지만, 열심 있는 사울(바울)을 하나님은 부르셨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께서 찾아 쓰시는 인물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하신 이 말씀은, 그래도 하나님은 아직 그들을 버리지 않고 계심을 보여주시는 단면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이라는 새 희망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어가시고자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등불은 오는 날로 표현하면 ‘기도의 등불’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훗날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12:23)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기도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의 등불이 살아있는 한 하나님의 역사는 늘 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나님>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대변한 새로운 제사장을 일으키십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충실한 제사장이 될 ‘사무엘’을 부르시고 그에게 분명한 소명을 주시는 장면입니다.
4-9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셨지만, 사무엘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인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늙은 엘리는 일상생활에서 사무엘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겁니다. 몸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달라거나, 마실 물 좀 달라거나, 성소에서 정리하지 못한 일을 단속하게 했을 겁니다. 사무엘은 평소 하던 대로 엘리에게 달려갔습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가서 자라.”
그런데 이런 똑같은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엘리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실 때 사무엘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잘 알려주었습니다.
9절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사실 엘리는 마음이 착잡했을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제사장인 자기에게 말씀을 주셔야만 했습니다. 자기가 너무 늙은 게 문제라면 그의 아들들을 통해서라도 말씀하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을 주시려고 하는 겁니다.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미 앞서 ‘하나님의 사람’이 예언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엘리 가문을 통해서는 더 이상 소통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
사무엘은 엘리의 말대로 다시 가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또 들려왔습니다.
10절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안타깝게도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입니다.
11-14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엘리 가문에 선포한 심판을 다 이루시고야 말 것을 다시 확인하신 것입니다(삼상 2:31-36).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린다’는 말은 엘리 가문에 행하신 하나님의 심판의 소식을 접하는 자마다 두려움과 공포의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이 말씀을 다시 하시는 것입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사무엘에게 직접적인 소명을 넣어주시기 위함입니다.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하신 말씀은 사무엘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무엘에게 직접 말씀하심으로 엘리 가문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제사장이 세워질 것을 직접 알려주신 것입니다. 즉 이제 엘리의 뒤를 이를 제사장은 자신밖에 없음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사무엘을 경고하시기 위함입니다.
엘리 가문의 몰락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분명히 알게 함으로써 앞으로 그의 뒤를 이어 제사장의 역할을 하게 될 사무엘에게 분명한 경각심을 심어주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우리 속담에 ‘욕하면서 배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그릇된 행동을 보면 분개하고 나는 다음에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그 위치에 도달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엘리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분명히 인식하게 함으로써, 엘리 가문의 잘못과 그 결과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경계하도록 하시기 위해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을 친히 예언하여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거룩한 성경에 왜 인간의 범죄의 모습들이 그리 많이, 자세히 기록되었겠습니까? 성도들로 하여금 그러한 죄와 결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동일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엘리의 반응>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엘리에게 간밤에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15-18절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17 이르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8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사무엘이 하나님께 받은 이상이 엘리 집의 심판에 관한 내용이었으므로 엘리에게 알리기를 주저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어떤 계시의 말씀을 주셨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시를 숨기지 말고 모두 말할 것을 요구합니다. 엘리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이미 심판의 예언을 들었었고(2:27-36),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계시하시고 자신에게 말씀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세히 듣기를 원했습니다.
사무엘은 숨기지 않고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엘리에게는 비극적인 것이었습니다. 엘리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18절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사무엘이 하는 모든 말을 잘 듣고 난 엘리는 ‘선하신 대로’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비록 죄를 범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이처럼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은 옳은 태도입니다. 엘리는 자기 집안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향하신 선하신 뜻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타락한 자신의 가문이 폐하여지는 것이 이스라엘을 위해 좋을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래도 엘리는 그의 아들들과는 달리 성숙한 신앙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내게 손해가 되고, 불리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성숙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즉 우리가 먼저 생각하고, 우선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의 영광입니다.
<선지자로 인정받는 사무엘>
이 일 후에 사무엘은 하나님과 더욱 동행하면서 훌륭한 선지자로 자라났습니다.
19-21절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하나님은 사무엘과 늘 함께 계셨습니다. 그 증거는 이것입니다.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말에 권능이 있고, 분명한 응답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마치 화살이 시위를 떠나 빗나감이 없이 과녁에 꽂히듯이, 사무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선포한 말씀은 그대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선포한 말씀의 성취 여부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표준입니다(신 18:22).
그러자 온 이스라엘(‘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 ‘단’은 이스라엘의 북쪽 변경에 위치하고,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남쪽 변경에 위치함)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마무리하면서 두 가지 분명한 교훈을 잊지 마시시오.
첫째, 성소를 밝히는 하나님의 등불, 곧 ‘기도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늘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엘리 가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하나님은 새로운 지도자를 계획하셨습니다. 한번 쓰임 받았다고 계속 쓰임 받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엘리와 그 아들들을 대신하여 사무엘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대신하여 다윗을 세우셨습니다.
내게 주신 소명(은사와 재능)을 감당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맙니다.
내게 주신 소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빼앗기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