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8) 2018. 9. 19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삼상 5:1-12
엘리 시대, 블레셋과의 전쟁에 패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머리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패배의 원인을 잘못 분석하였습니다.
삼상4:3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그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가면, 무조건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그들 스스로 만든 ‘부적 신앙’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참된 회개와 내면의 변화입니다(욜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없이 언약궤만 앞세우고 나간다고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언약궤를 앞세우고 블레셋과 싸웠지만 결과는 비참한 패배였습니다. 무려 3만 명의 군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고, 급기야 하나님의 언약궤도 빼앗겼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도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비느하스의 아내도 조산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비참한 말을 남기고 죽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예언한대로 엘리 가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다곤의 신전에서 일어난 일>
그러면 블레셋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어떻게 하였을까요?
그들은 그것을 다곤의 신전으로 가져갔습니다.
1-2절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신들의 섬기는 ‘다곤의 신전’으로 가져갔습니다.
‘다곤’은 상체는 사람 모양이고 하체는 물고기 모양의 우상이었습니다. 다곤은 풍요의 상징신이었습니다. 하체가 물고기 모양이었던 것은 블레셋이 원래 해양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부 가나안의 우가릿 문서(Ugaritic Texts)에는 다곤이 가나안의 농경신 바알의 아버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곤 우상 곁에 두었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다곤의 신상 옆에 둠으로써 그들은 다곤 신의 우월성을 자랑하며, 동시에 그들이 다곤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이겼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과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는 민족 간의 전쟁이 곧 그 민족이 믿는 신들의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다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전쟁에 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철병거의 힘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심판으로 그들로 하여금 이기도록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승리의 영광을 자신들이 신봉하는 신 다곤에게 돌렸으며 자기 자신들에게 돌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힘이 없어 그들에게 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약궤가 다곤 신전의 전리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3-4절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이튿날 아침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의 신전에 가 보니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곤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고꾸라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곤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 다곤이 다시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고꾸라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걸쳐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곤의 몸뚱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신상의 머리가 끊어졌다는 것은 다곤은 생명이 없는 헛된 우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고, 손목이 끊어졌다는 것은 다곤이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무능한 우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우상의 실상’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일갈한 바가 있습니다.
사 46:6-7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도금장이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며/ 7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참고 – 이사야 44:9-20)
시편 기자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 135:15-17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16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17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18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사도 바울이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는 문제를 말씀 하던 중 우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전 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그렇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인간 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무지한 인간들은 온갖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바위나 나무, 태양이나, 온갖 짐승들 그리고 상상속의 수많은 신들을 주물로 제작하고 조각하여 세워놓고 복을 달라고 빌고 또 비는 것입니다(우상은 한낱 공예품에 불과함).
어찌 보면 이것은 인간의 나약함, 무지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예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계명’(십계명 중 제2계명)을 주셨습니다.
출20:4-6(십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은 우상의 이름을 듣는 것조차도 싫어하십니다.
출23:13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지니라.”
그런데 안타까운 현실은 많은 사람이 우상숭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신문에서는 대한민국이 “미신 공화국”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목사, 전도사를 합치면 약 10만 명인데, 역술인과 무속인은 그 4.5배인 약 45만 명에 달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점치는 것을 단순히 재미로 여기고, 신문광고와 인터넷 광고를 보면 운세와 점술광고가 가득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우상과 주술에 매이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눈에 보이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고 우상숭배의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리 안에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물질’입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6:24절)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현대인들은 ‘쾌락’을 우상으로 섬깁니다. 성경은 정당하고 건강한 즐거움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가족이 함께 하는 즐거움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쾌락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었을 때 이런 쾌락은 이미 우상입니다. 바울은 먹는 쾌락에 빠진 사람들을 가리켜 “배로 신을 삼은 사람들”(빌3:19)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유형의 중독은 쾌락의 신에게 복종하는 행입니다. 술이나 도박, 마약, 인터넷 개임, 음란한 행위에 빠져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것 자체가 곧 그들의 우상입니다.
또 현대인들에게는 ‘인기와 명예’가 우상입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다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도 자기 이름을 내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흩어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 가운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는 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왕의 왕이요, 우리가 섬겨야 할 유일한 분이심을 믿으시고,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독한 종기의 재앙>
그리고 다곤 신전의 우상만 부서진 것이 아닙니다.
6-7절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가 생긴 것입니다.
이 재앙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5절의 의미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5절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거기 보면 아스돗 사람들은 다곤 우상의 머리와 두 손이 끊어져 신전 문지방에 뒹구는 것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다곤 신만을 두려워하여 다시는 문지방을 밟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우리나라에도 옛날부터 문지방을 밟으면 복이 달아난다는 미신적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우상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아 파괴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한갓 인간이 만든 우상만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신의 위력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7절을 보면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여호와만이 가장 강한 신임을 그들이 인정하는 고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겼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위력을 알았으나 끝까지 우상숭배를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잘못이 드러났으면 빨리 돌이키면 좋은데 이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우상숭배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압제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재앙을 주시는 분, 곧 주체를 설명하면서 “여호와의 손”(6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손은 ‘다곤의 부러진 손’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회개하고 돌아서기 보다는 거부하기에 이릅니다.
하나님께 대한 배척과 거부는 어리석은 불신앙인들의 특징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잘 묘사하였습니다.
롬1:18-23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만왕의 왕으로 인정하고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복을 주십니다.
믿음으로 언약궤를 잘 모셨던 오벧에돔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삼하6:12).
바라기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재앙이 아닌 복이 되도록, 항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언약궤를 가드로 옮기다>
아스돗 사람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른 곳으로(가드) 옮겼습니다.
8-9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9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그랬더니 이번에는 가드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가드 사람 모두(작은 자와 큰 자)에게 ‘독한 종기’가 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에그론으로 옮기려 하였습니다.
10절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그랬더니 에그론 사람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고 반발하였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1-12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결국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자”고 결론을 내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고발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결의한 내용은 고작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되돌려 보내기로 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자신들의 우상 숭배가 얼마나 허망하고 잘못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개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손의 엄중한 심판”(11절)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손의 엄중한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미워하여 멸망시키려고 이렇게 독한 질병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사람은 미워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런 고통을 통해서라도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겔18:23,32. 33:11).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니느웨는 블레셋 같이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이었고, 오히려 블레셋 보다 더 악독한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어 요나를 보내어 그들을 회개시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사르밧의 과부는 이세벨의 고향인 시돈 사람 즉 이방여인이었지만 엘리야의 말을 믿고 순종하므로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도 가뭄이 있었고 수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 한 과부도 이런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였고, 오직 이방여인인 이 사르밧 과부만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의 원수인 아람나라 사람이었지만 그가 나병에 걸려 죽어갈 때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스라엘로 와서 선지자 엘리사의 말을 믿고 순종하여 나병에서 놓여나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언급하시면서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도 많은 나병환자들이 있었지만 한 사람도 깨끗함을 받지 못하였고 오직 이방인인 나아만 한 사람만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민족이나 인종을 차별하시는 하나님이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의 우상 다곤을 심판하신 사건이나 블레셋 여러 도시에 언약궤가 옮겨갈 때 마다 재앙을 내리신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고 천지간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심이었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한 가지만 꼭 기억하십시다.
“여호와의 손”이 다곤의 신상을 산산이 조각낸 것처럼, 장차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머리를 여지없이 깨뜨리실 것입니다(창 3:15). 다곤의 신상을 파하시며 그 머리와 손목을 끊으신 것처럼, 철장으로 마귀를 깨뜨리시고 질그릇 같이 부수실 것입니다(시 2:9).
모든 우상숭배에서 속히 돌이키시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셔서, 마지막 심판의 날(‘최후 승리의 날’)에 하나님께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