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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완성)

사무엘하 강해(4) - 사울의 집, 다윗의 집

작성자박춘경|작성시간19.12.12|조회수679 목록 댓글 0

사무엘하 강해(4) 2019. 12. 11

사울의 집, 다윗의 집

삼하 2:8-11

 

<권력을 잡은 아브넬>

 

사울의 죽음 이후,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파들은 아직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8 “사울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그 때 사울의 군대 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이 사울의 남아 있는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가서 유다지파를 제외한 다른 지파의 왕으로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주동자는 아브넬입니다(주어가 아브넬). 아브넬이 누구입니까? 그는 사울의 군사령관이었는데, 넬의 아들입니다. 사울과는 사촌관계였습니다. 삼상14장에 보면 사울의 가족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삼상14:49-51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이스위와 말기수아요 그의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50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 그의 군사령관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51 사울의 아버지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버지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


삼상9:114:50-51을 보면 넬과 기스는 형제지간입니다. 그들의 아버지는 아비엘입니다. 그러므로 이 넬은 사울의 삼촌입니다. 이 넬의 아들은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입니다. 그러므로 사울과 아브넬은 사촌지간입니다

그런데 대상8:339:39를 보면 넬은 사울의 할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실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아들이나 손자 등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르는 것은 이스라엘이나 미국 등에서 매우 흔한 일입니다. 즉 사울의 할아버지 이름은 아비엘이기도 하고 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울의 할아버지도 넬(혹은 아비엘)이고 삼촌도 넬입니다.


그의 용맹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을 때한 밤중에 다윗이 사울의 진중으로 들어가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죽일 수 없다며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온 적이 있습니다날이 밝자 다윗은 왕을 지키는 군대장관으로써 책임을 다하지 못한 아브넬을 꾸짖었습니다.

삼상 26:14-16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이르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아브넬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하더라/ 15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가운데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16  네가 행한 이 일이 옳지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이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하니.”

사실 한 나라의 왕을 지키지 못한 자는 마땅히 책임을 지고 그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자기의 자리를 유지합니다. 그의 무책임하고, 교만하고, 뻔뻔한 성품이 드러납니다. 훗날 사울의 첩(리스바)을 범한 일도 그렇고, 자신이 세운 왕 이스보셋을 배반일 일도 그렇고... 용맹한 장수임을 틀림없지만 인격적인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왕이 됨>

 

그러면 아브넬에 의해 왕으로 세워진 이스보셋은 누구입니까?

이스보셋은 사울왕의 넷째 아들로서 본래의 이름은 에스바알(바알의 사람)이었습니다.

대상8:33(베냐민 지파의 족보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9:39). (참고 삼상14:49이스위아비나답과 동일한 인물임.)

훗날 사람들이 에스바알이라는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의 왕의 이름으로서은 마땅치 않기에, 그의 무기력하고 소신 없는 행동을 비난하는 뜻으로 이스보셋(부끄러운 사람)이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아브넬에게 배반당하고, 레갑과 바아나의 형제에게 살해당해 죽고 말았습니다(삼하 4:1).

 

<마하나임>

 

그럼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곳이 어디입니까? 마하나임입니다.

요단 동편 5km 지점으로 갓과 므낫세(요단 강 동쪽의 반 지파)의 경계에 있었는데, 레위 사람의 성읍이었습니다(13:24-33). 요단 동편에 있는 여러 도피성 중 하나였습니다(21:38). 아마도 사울의 패배로 인해 본래 사울의 왕궁이 있던 기브온(예루살렘 북서쪽 10km)을 비롯해 요단 서쪽의 상당 부분이 블레셋의 통치 아래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단강 동편의 길르앗 산악지대에 있는 마하나임으로 피해 온 것 같습니다(요단 동편 길르앗 지역은 해발 400-700m에 이르는 산악지형).

 

그런데 마하나임이라는 땅이름에는 특별한 유래가 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을 떠나 자기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던 중 천사를 만났을 때 그 땅에 붙인 이름입니다.  32:1-2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마하나임은 ‘하나님의 군대 뜻입니다객지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야곱에게는 굉장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20   에서를 등쳐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여 형의 몫인 장자의 축복을 가로  전력 때문이었습니다어쩌면 형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불안감에 사로잡혀 떨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주셨습니다내가 하늘의 군대로 너를 지키고 보호하리라 확신을 심어 주시기 위해 그런 대단한 영적 체험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마하나임은 다윗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훗날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다윗이 피신한 것이 바로 마하나임이었습니다(삼하 17:24, 27-29, 19:32). 이곳에서 바르실래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스보셋 편에 선 사람들>

 

9절은 사울 왕의 영향력이 아직 여전했음을 보여줍니다.

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더라.”

 

길르앗은 과거 르우벤과 갓 지파에게 분배되었던 요단 동편지역이고, ‘아술은 북쪽의 갈릴리지역, ‘이스르엘은 갈릴리 연안에서 길보아 산을 지나 요단강에 이르는 긴 구릉지대(평원)입니다(북부에서 중부까지). 에브라임과 베냐민은 팔레스틴 중부지역에 위치한 지파입니다. 즉 이 지역들의 범위는 사실상 팔레스틴 남부의 유다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전 지역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사울 왕이 비록 하나님께 불순종한 왕으로 평가를 받았음에도 그의 영향력이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실 왕조가 바뀐다는 것은 대단한 혁명입니다. 당연히 전임 왕조에 충성을 다해온 사람도 있고, 그 왕조 밑에서 기득권 누리던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입니다.

 

고려 말 우왕 때, 우왕과 군사령관 최영은 요동 정벌을 위해 이성계를 파견합니다. 이성계는 압록강의 위화도까지 진격을 했다가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회군을 합니다. 그리고 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들과 힘을 합쳐 우왕을 폐위(강화도로 귀양, 최영은 고양동으로 귀양) 공양왕을 허수아비로 세우고는 실권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온건개혁파의 우두머리요 당시 덕망 있는 대학자였던 정몽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합니다.

한번은 이성계가 사냥을 하다 말에서 떨어져 다쳤는데 정몽주가 문병을 왔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있었는데, 문병 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고려조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로 진전되어갔습니다. 이방원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정몽주를 떠보기 위해 시조 한수를 유려하게 뽑아내려갔습니다. 후세에 널리 회자 되었던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였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다 썩어 가는 고려를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력과 힘을 합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동참해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정몽주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시를 읊어 답을 했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죽어서도 고려 임금을 섬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이 시를 단심가’[丹心歌]라고 부릅니다. 정몽주 역시 고려를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다만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방원은 정몽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부하 조영규를 불러 그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조영규는 그날 밤 쇠뭉치를 들고 선죽교에 숨어 있다가 그가 나타나자 쇠뭉치로 쳐서 죽입니다. 선죽교는 본래 선지교였는데, 정몽주의 피가 떨어진 곳에서 대나무가 자랐다고 해서 대나무 죽()자를 써서 선죽교로 바꾸어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듯 새로운 왕조를 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윗을 유다지파의 헤브론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피하고, 충분한 시간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다윗의 왕국을 세우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 운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도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밑으로부터의 변화가 천천히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3:13)고 권면하였습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오늘 본문에 보면 길르앗 사람들도 이스보셋의 편에 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길르앗 야베스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들이 사울의 장례를 치러준 것에 대하여 너그럽게 여기고 오히려 칭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보셋의 편에 선 것은 서운할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인내했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낙심하지 않고 선을 행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울의 집, 다윗의 집>

 

이후 두 왕국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10-11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 세이며 두 해 동안 왕위에 있으니라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르니/ 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더라.”

 

주목해 볼 내용이 있습니다. 이스보셋이 왕위에 오른 나이는 40세이고, 그가 왕위에 있었던 기간은 불과 2년 동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지낸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무려 5년의 시간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까 사울의 군장이었던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처음부터 왕으로 세운 것이 아니고, 자신이 오 년 동안 무신집권을 하다가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이스보셋을 형식적으로 왕으로 세웠음을 알게 됩니다

 

당시 여론이 어떠하였는지 삼하3:17절에 살짝 언급되어 있습니다.

삼하 3:17 “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러 번 다윗을 너희의 임금으로 세우기를 구하였으니.”

 

,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다윗을 임금으로 모시자고 아브넬에게 여러 차례 요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넬은 다윗을 왕으로 세울 경우 자신의 입지가 작아질 것을 염려해 들어주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을 대항하여 정통성을 얻기 위하여 마지못해 이스보셋을 형식적으로나마 왕으로 옹립했던 것입니다.

이스보셋은 그저 허수아비 왕에 불과했고 아브넬이 일종의 섭정처럼 여전히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행동을 잘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당시 여론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76개월 내내 헤브론에서 유다만 통치하고 있었습니다그는 분명 열두 지파 전체의 왕권을 약속받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렇게 초라한 자리에 머물러 두신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북쪽의 장로들이 자기를 지지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도 그 어떤 성급한 행동이나 무력적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무력을 사용하면 반드시 동족의 피를 보아야 합니다. 다윗이 먼저 칼을 뽑아든다면 이긴다고 하더라도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인식되어 온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어려웠을 것입니다반드시 원한을 품고 복수를 꿈꾸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는 다윗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만일 김일성이 6.25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통일이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무력통일에 대한 섣부른 욕심이 우리 민족을 이렇게 오랫동안 고통 속에 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연히 망해가던 일본에게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빌미를 준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넬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기에 어쩔 수 없이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이루어가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으셨으니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76개월 동안, 그저 조용히 인내하면서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다윗의 이런 마음은 그의 시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37:5-7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모세도 출애굽 당시, 홍해 앞에서 얼마나 큰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뒤에서 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며 원망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담대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13-14)하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홍해를 지팡이로 치게 하셔서 둘로 갈라지게 역사하셨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다윗이 인내하는 동안 다윗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삼하3: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더딘 것 같아도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당장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거나 불평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섣불리 나서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다리는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합한 자를 위해 일하십니다.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를 배워, 이 땅에 느리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데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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