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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진행)

사도행전 강해(9) - 다윗의 부활 예언

작성자박춘경|작성시간24.07.21|조회수253 목록 댓글 0

사도행전 강해(9) 2024. 7. 21

다윗의 부활 예언

2:25-36

 

<베드로의 설교>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놀라는 사람들 앞에 서서 지금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합니다. 먼저 베드로는 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래전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신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것임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 베드로는 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담대하게 증언합니다.

사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고 그분이 이루신 구원을 선포하는 것이 성령님의 사역 목적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증언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를 통해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보이셔서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임을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22).

둘째, 그럼에도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다고 말씀하십니다(23).

셋째, 하지만 하나님은 더욱 크신 능력으로 사망의 밧줄을 푸시고 예수님을 다시 살려내셨다는 것입니다(24).

 

베드로의 설교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이신 예수를 너희가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내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부활 예언>

 

이 ‘예수님의 부활’이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구약에 이미 예언된 사건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25~28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베드로가 인용한 시편16:8-11입니다. 이 시는 분명히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16:8-11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런데 시편 16편을 읽어보면 사도행전 본문의 말씀과 약간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시편은 원래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경을 번역한 것이고, 사도행전 본문에 나오는 인용은 원래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 구약성경을 헬라어(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 역에서 인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어가 약간 다릅니다. 하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그럼 왜 베드로는 다윗의 이 시편을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내용으로 인용하였을까요?

왜냐하면, 다윗이 쓴 시이지만, 다윗의 인생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해석할 때만 해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는 구절이 27절입니다.

27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이 말씀은 다윗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29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죽었습니다. 그곳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다 다윗의 무덤이 예루살렘에 있는 것을 압니다. 다윗은 죽어 무덤에 묻혔고 누구든지 그 무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다윗 자신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장차 이 땅에 오실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앞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30~31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베드로는 ‘다윗을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아는 자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후손 중에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메시아로 세우실 것을 알았습니다.

삼하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집을 세우실 것이며 그의 아들을 통해 그의 나라와 그 나라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실 것이라는 약속은 단순히 솔로몬에 대한 약속이 아니나 메시아에 대한 약속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미리 보았다는 것입니다(미리 본 고로). 그래서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는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보았기에 25절에서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25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 시편에서 다윗이 그를 가리켜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그가 내 우편에 계신다고도 말합니다. 여기에서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른편이라는 말은 권능과 능력의 자리를 말합니다. 능력으로 항상 나와 함께 하시며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앞에 계시고 내 우편에 계시기 때문에 다윗은 ‘요동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활 신앙의 결과>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알았기에 누리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26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첫째, 다윗은 내 마음이 기뻐했다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이 내 앞에, 그리고 내 우편에 계시기 때문에 내 마음이 기쁘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이 시편의 본래 부분을 보면 다윗은 지금 기뻐할 상황이 아닙니다. 사방에 우겨 싸임을 당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기 위하여 피해온 상태이기 때문입니다(시16:1). 그런데도 마음이 기쁘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기쁜 일만 있겠습니까? 눈물 흘릴 날도 있고, 고통스러운 일도 있고, 오해를 받는 일도 있고, 여러 가지 실수할 때도 있고, 영광스러운 날도 있지만, 굉장히 수치스러운 날도 있지 않겠습니까? 건강할 때도 있지만 병들어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28절을 읽겠습니다.

28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생명의 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곧 부활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만이 모든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라는 다윗이 고백처럼,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이 잘 풀리고 있든지 잘못되고 있든지, 아주 좋든지 나쁘든지 상관없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 혀도 즐거워했다고 고백합니다.

마음에 쌓인 것이 혀를 통해 밖으로 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혀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욕을 합니다. 마음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혀는 영적 온도계인 동시에 영적 온도조절기입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보면 내 영적인 온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영적 상태가 어떤지를 내가 말하는 것을 통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영적 온도계가 됩니다.

그런데 동시에 혀는 내 영적 온도조절기도 된다는 겁니다. 너무 더우면 시원하게, 너무 추우면 덥게 할 수 있는 게 온도조절기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내 영적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혀가 중요합니다. 혀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를 매일매일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의도적으로라도 즐거운 말, 행복한 말, 감사의 말을 해야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혀도 기쁨으로 찬양하게 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다윗은 육체도 희망에 거한다고 합니다.

사실 육체는 썩는 것입니다. 생명이 떠나는 순간 썩습니다. 그런데 그런 육체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몸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육체에 희망이 있습니다.

다윗은 부활 신앙을 확실히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부활 신앙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들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부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BC 2000년경에 살던 사람인데, 자기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잡아서 죽여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이 떨어졌을 때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주어진 이후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결과로 주신 아들이 바로 이삭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이 아들이 지금 죽으면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이고 그래서 그를 통해 수많은 후손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확실한 부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약 1000년 후인 BC 1000년경에 살았던 다윗도 부활 신앙을 갖고 있었고, 특히 그의 시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장차 오실 메시아의 부활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승천 역시 예언의 성취>

 

베드로는 또다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여 주님의 승천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합니다.

33~35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예수님의 승천 역시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인용한 말씀은 시편 110편 1절입니다.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이 시편은 다윗이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윗은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앞의 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뒤의 내 주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다윗의 주’입니다. 다윗의 주님에게 하나님께서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명처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분은 누구일까요? 그분이 바로 죽음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지혜가 어떻게 베드로에게 있겠습니까?

저도 시편을 읽었지만, 시편 16편과 110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 것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베드로의 설교를 듣기 전까지는 그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베드로는 시편에 이런 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이렇게 적절하게 인용하면서, 막힘없이 풀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할 수 있었을까요?

베드로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베드로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베드로는 글을 깨우쳤는지조차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베드로의 설교는 방언을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전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사실 성령의 설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베드로 설교의 결론>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결론은 32절과 3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2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이로다.”

36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하니라.”

 

베드로의 설교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버린 돌을 하나님께서 ‘모퉁이 돌’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Lord)는 예수님의 신격(구세주)을 드러내는 호칭이요, 그리스도’(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선포하는 호칭입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임을 증언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던 ‘이스라엘 온 집’, 곧 ‘유대인’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두 번 놀랐을 것입니다.

한 번은 베드로의 담대함에 놀랐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사실 무척이나 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이 아직은 시퍼렇게 살아 있거든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이해 불가입니다.

 

다른 한 번은 베드로의 설교 내용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면, 정말 예수님이 메시아요 주님이시라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에 직접 참여하거나 적어도 동조한 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엄청나게 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

그들의 반응은 다음 시간에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맺는 말씀 – 우리도 다윗처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는 우리가 바로 이 일어난 일의 증인이라’(32)고 고백입니다.

우리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아니 행동으로 우리가 부활의 증인인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예언한 다윗의 삶이 오늘 우리 부활의 증인된 우리들의 삶의 태도여야 할 것입니다.

26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다윗이 내 마음이 기뻐했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이 내 앞에, 그리고 내 우편에 계시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늘 기쁘기를 바랍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곧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만이 모든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다윗이 혀도 즐거워했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의 혀로 저주가 아닌 축복하는 말을 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육체도 희망에 거한다고 고백한 것처럼, 장차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도 부활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입으로, 그리고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분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땅끝까지 증언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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