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강해(25) 2025. 1. 1
마음이 돌아서다
열왕기상 11:1-8
지금까지 보아 온 솔로몬은 ‘성공 가도’를 달리는 ‘성공한 왕’이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유언대로 성전을 완공하였고, 왕권 강화를 위한 왕궁과 여러 성읍을 건축하였습니다.
당대 최강국 애굽으로부터 최신 무기(병거와 말)를 들여와 국방을 튼튼히 했습니다.
또 무역에서도 성공하였습니다.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건조하여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건너서 오빌과 무역함으로써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겠다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줄이어 찾아왔습니다. 심지어 2,400km나 떨어져 있는 스바의 여왕까지 귀한 예물을 잔뜩 챙겨서 찾아올 정도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솔로몬은 그 당시 고대 근동에서 가장 성공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1장부터는 그가 점점 더 하나님과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방의 여인들을 사랑한 솔로몬>
그 첫 번째 원인은 이방의 여인들 때문입니다.
1절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우리는 앞서,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직후 애굽과 동맹을 맺고, 그 표시로서 바로의 딸과 결혼하였음을 본 바 있습니다(3:1).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위해 특별히 별궁을 건축하기도 했습니다(9:24). 이것은 솔로몬이 장차 이러한 혼인 동맹 때문에 무너질 것을 예고하는 문장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이러한 혼인 동맹은 애굽 한 곳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주변에 있던 모든 나라들의 공주를 데려옵니다. 여기에는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이 등장합니다. 열거된 나라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과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에 있던 나라 외에 적대 관계에 있던 나라도 포함됩니다(신 23:3 이하).
솔로몬이 이렇게 주변의 모든 나라와 통혼(通婚)하게 된 데에는 대략 세 가지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1) 외교적 목적이 분명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2)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중동 문화권에서는 국가간 혼인 건수가 자신의 권력(힘)을 과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3) 그런데 본문을 보면, 단지 외교 차원에서 혼인 관계를 맺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1),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2)고 말씀한 것으로 보아 그는 많은 여성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단순히 정략적으로 취한 것만이 아니고 '안목의 정욕'으로 적극 탐하였음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의 경고>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본문은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2절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마침내 요단강 동편에 이르러 가나안 점령을 목전에 두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일러 주신 말씀을 언급한 내용입니다.
신 7:3~4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출 34:11-16)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通婚) 금지를 명한 것은, ‘결혼’은 양자의 문화, 풍습 및 종교의 절충과 혼합을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고유의 여호와 신앙은 변질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들과의 잡혼(雜婚)을 엄격히 금지했던 것입니다.
통혼의 결과는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고, 그들은 결국 약속의 땅에서 살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전장(10장)에서 솔로몬이 말(馬)을 많이 둔 사실(10:26)과 은금 보화를 많이 쌓은 사실(10:16~17)을 이미 보았습니다. 그런데 본 절에서 우리는 솔로몬이 또한 처첩을 많이 둔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 될 자에게 권면하고 경고하신 세 가지를 모두 어긴 것이 됩니다.
신17:16~17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혼인 동맹의 결과 - 마음이 돌아서다>
혼인 동맹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3절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바로의 딸은 정식 '왕비'의 지위를 누렸고, 이웃 나라의 공주는 ‘후궁’으로 대우받았을 것입니다(700명).
그리고 기타 다른 여인들은 ‘첩’ 대우를 받았을 것입니다(300명).
| 한편, 아가서 6:8에 의하면 왕후가 60인이요 첩이 80인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아 6:8, 9). 아마도 열왕기서의 기록은 솔로몬의 전 통치 기간을 통해 취해진 모든 처첩들의 수효를 가리키는 것 같고, 아가서에 언급된 수효는 솔로몬이 젊은 시절에 거느렸던 아내들의 총 수효였다고 짐작됩니다. |
솔로몬이 데려온 공주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신들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만일 솔로몬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처음부터 강하게 요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솔로몬의 여인들이 한결같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디에서 돌아섰다는 것일까요? 물론 하나님에게서입니다.
<우상 숭배자, 솔로몬>
마음이 돌아선 결과, 마침내 솔로몬은 말년에 우상 숭배자가 되고 맙니다.
4~5절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이때 솔로몬의 나이는 60세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솔로몬이 젊었을 때는 아내들이 우상 숭배를 그에게 적극적으로 권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완전히 역전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솔로몬을 강하게 설득하여 그들이 섬기던 신들을 따르게 했습니다.
비록 노년이 종종 축복과 존경의 대상이 되지만, 고결함과 경건한 생애의 뒷받침없이 저절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욥 5:26; 시 71:9; 잠 20:29 등). 갱신의 노력이 없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독선적이 되기 쉽습니다.
결국, 나이 든 솔로몬은 시돈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의 신 ‘밀곰’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 ‘아스다롯’은 가나안 인들이 섬기던 풍요의 여신으로, 성적(性的) 사랑과 다산(多産)을 위해 숭배되던 우상이었다. 따라서 이 여신을 위한 제사에는 보통 음란한 행위가 의식의 순서로 따랐다고 합니다. ‘밀곰’은 암몬 민족의 신으로, 제사 의식에는 인신 제물이 바쳐졌습니다('몰록' 혹은 '몰렉'과 동일시됨, 7절, 아마도 '밀곰'은 히브리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파생된 명칭으로 여겨짐, 레18:21, 20:2). |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들을 따르다니요? 결국, 망하는 길로 접어들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될까 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경고하셨던 것입니다(신 7:3, 4; 17:17).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모압 여인들과 놀아나다가 우상 숭배에 빠졌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았던 뼈아픈 경험이 있었습니다(민 25:1-5).
그러나 솔로몬이 이러한 생생한 역사적 교훈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그 그물에 걸리는 비극적 결말을 가져왔습니다.
열왕기 저자(신명기 역사가)는 솔로몬이 말년에 이렇게 된 원인을 이렇게 진술합니다.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4).
그는 아버지 다윗과 달리 하나님께 끝까지 신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도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했고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죽였지 않습니까? 이러한 다윗과 솔로몬이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똑같이 악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온전한 자로 여깁니다. 그것은 다윗의 마음 때문입니다. 어떤 마음인가 하면 자신의 악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시 51:17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은 어떤 의식이나 형태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상한 심령’이라는 것입니다.
이 회개하는 ‘상한 심령’이 없었기에, 솔로몬은 끝내 돌이키지 못한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하면, 솔로몬의 주변에는 다윗에게 경고를 주던 ‘나단’ 같은 선지자가 없었던 것도 한몫합니다.
<퍼져 나가는 산당>
솔로몬의 잘못은 이러한 우상숭배의 문화를 이스라엘 전역에 퍼지게 한 것입니다.
6~8절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한 번 무너진 뚝은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솔로몬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이스라엘 전역에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기 위한 산당이 세워집니다.
솔로몬은 이방 왕비 중 어느 누구에게만 특정적으로 혜택을 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이방 처첩들의 모든 신들의 제사를 허용하였고, 또한 그 신들을 모실 산당까지 짓게 하였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주변의 산들은 거의 우상을 위한 산당들로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심지어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습니다. 예루살렘 동편의 '감람산'을 말합니다.
이 산에다가 모압 민족의 수호신인 ‘그모스’를 위한 산당을 지었습니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의 맞수라도 되는 듯이 그모스 신을 높이 세운 것입니다. ‘그모스’는 태양의 신이자 전쟁의 신입니다('그모스'란 명칭은 '정복자'라는 뜻). 그런데 이 그모스는 암몬의 신 몰록과 쌍둥이 형제라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우상을 섬기는 제사 의식은 매우 잔인하며 음란했습니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그모스'는 그 양 옆에는 횃불이 불타고 있으며 손에는 창과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열왕기 저자(신명기 역사가)는 이것을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의 행위는 그를 왕위에 세워주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그의 행위를 다윗과 비교하는데, 다윗 역시 한때 중한 죄를 범하긴 하였으나(삼하 11:2-27), 솔로몬처럼 우상 숭배의 가증스러운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아내들로 각자의 신들을 섬기도록 허용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산당을 짓기까지 하였습니다.
또한, 솔로몬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하였던 반면에 그 아내들이 열심으로 그들의 신을 증거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칼합니다. 이렇듯 사단은 누구든 교만하고 방만한 틈을 발견하면 결코, 이를 놓치려 하지 않습니다.
한편 솔로몬의 말년부터 이스라엘 내에 자리 잡게 된 이방 우상의 산당들은 이후 분열 왕국 시대 동안에도 줄곧 심판의 대상이 되었고, 마침내 남북 왕국 멸망의 주된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훗날 느헤미야는 포로 귀환민들에게 이방인과의 통혼을 경고하면서, 솔로몬의 범죄를 예로 든 바 있습니다(느 13:26~27).
<신앙적인 교훈>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신앙적인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通婚)을 금지하는 신명기 말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처첩을 1,000여 명이나 두었습니다.
솔로몬이 어렸을 때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고백하고, ‘출입할 줄도 모르는 자’라고 겸손히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때는 겸손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힘이 생기고, 부자가 되고 나니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멀어졌습니다. 스스로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이 여겨졌습니다. 이는 큰 착각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나라입니다.
어쨌든 솔로몬의 잘못의 첫 번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긴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은 늘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우리는 넘어지게 하는 자는 대개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3절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을 넘어뜨린 사람은 외부의 적이 아닙니다. 바로 곁에 있는 이방의 여인들입니다.
물론 그 여인들은 곁에 둔 솔로몬의 잘못이 큽니다.
예수님의 고난 예고에 가장 먼저 반대한 사람은 바로 수제자 ‘베드로’입니다(마16:21~23).
마16:21~23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 베드로라도 과감하게 책망하시고 경계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의 환경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하나님을 등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신앙은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솔로몬에 대해 실망하는 것은 그가 초기에는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이러한 타락이 그의 통치 기간 중 어디쯤에서 심각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는지는 명확지 않습니다. 분명 성전 완공 후 감사와 헌신의 봉헌 기도(8:12-53)를 드렸을 당시(즉위 11년)에는 이러한 타락이나 변질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아마도 이후 왕궁 건축이 완료된(즉위 24년) 재임 중기 이후부터 서서히 나타나 재임 말기로 갈수록 심화하였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때 한 번 뜨거웠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을 다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빌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의 신앙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멈추면 넘어집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맺는 말씀>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이기는 자’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혹을 이겨내는 자가 바로 ‘이기는 자’입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이기는 자가 되기 쉽지 않습니다. 같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배우자가 믿음의 동역자가 된다면 가장 좋겠지요. 그리고 건강한 믿음의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바라기는 2025년 새해를 시작했는데, 올 한해 멈추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늘 전진하는 신앙생활 해나가셔서, 주님 언제 오시든지 ‘이기는 자’로 주님 앞에 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