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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진행)

열왕기하 강해(13) - 한 어머니 이야기

작성자박춘경|작성시간26.06.10|조회수39 목록 댓글 0

열왕기하 강해(13) 2026. 5. 10

한 어머니 이야기

왕하4:8~37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 은혜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실수로 한 명에게는 하나님의 성품을 너무 많이 넣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서 그 사람을 찾아서 데려오라고 합니다. 천사가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성품이 가장 많이 들어가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천사가 데려온 그 사람을 하나님이 보니, 그는 바로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수넴 여인 소개>

 

오늘 말씀에 보면 한 명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8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당시 엘리사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곳저곳을 순회하며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수넴이라는 작은 동네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이스르엘 성에서 북쪽으로 약 5km쯤 떨어진 성).

 

거기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귀한 여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귀부인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복부인 말고 귀부인). 신앙인품재력이 있는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귀히 여기고,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습니다. ‘간권하였다’는 것은, ‘집요하게 붙잡고 요청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목회자들이 심방할 때 경험하듯). 엘리사는 이후에는 수넴 땅을 지날 때마다 이 여인의 집에 들러서 식사를 하곤 하였습니다.

 

그것만 해도 참으로 대단한 일이지만, 이 수넴 여인의 섬김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9~10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이 여인은 남편에게 말해서 엘리사가 올 때마다 머물 수 있도록 아예 작은 방을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이 방은 옥상 위에 지은 옥탑방(다락방) 같은 것으로, 그 방으로 드나드는 길은 바깥벽에 붙은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그 집 본채에서 완전히 독립된 공간이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서 엘리사가 마음놓고 쓰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가 바로 이와 같은 손님 대접입니다(아브라함도 손님 대접하다가 이삭을 얻을 것이라는 예언을 받음).

13:1-2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손님 대접’은 살림이 넉넉하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수고를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수넴 여인은 참으로 ‘귀한 여인’이었습니다.

 

<아들 출산을 예고하는 엘리사>

 

엘리사가 너무나 고마워서 수넴 여인에게 보답을 하고자 합니다.

11~15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12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여인을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3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15 이르되 다시 부르라 하여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한 후, 그녀에게 당신이 원하면 내가 왕이나 사령관에게 말해서 응해줄테니, 원하는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인은 그 요구를 거절합니다.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라고 답합니다. 지금 형편에 만족하며 살고 있으니 왕이나 사령관의 특별한 도움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시종 게하시에게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하고 상의를 하니, 게하시가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불임이었고, 남편은 이미 늙어서 생식 능력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이 여인을 다시 부른 후, 놀라운 예언을 합니다.

16~17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당신이 내년 이맘때에는 아들을 안고 있을 것입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이 예언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불임이고 남편은 늙었는데,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리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이려는 말’, 곧 ‘놀리는 말’로 들었습니다(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음. 18).

 

하지만 정확히 1년 뒤에 이 여인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자, 수넴 여인은 이 아이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이었을까요?

 

성경에 보면 불임이었던 여인이 아들을 낳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합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100세의 아브라함과 90세의 사라가 이삭을 낳는 이야기입니다.

리브가도 본래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었는데, 이삭이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자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삼손의 어머니도 본래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삼손의 어머니에게 나타나셔서, 아들을 낳을 것을 예고해주셨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낳게 해주셨습니다.

 

​성경에 왜 이런 이야기가 자주 나올까요? 고대에 아들을 많이 낳는 것은 최고의 축복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늘 가르치십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내 자식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어야 함).

 

<죽은 아들을 두고 엘리사를 찾아가는 어머니>

 

이대로 이 이야기가 끝나면 해피엔딩일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18~20그 아이가 자라매 하루는 추수꾼들에게 나가서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렀더니/ 19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사환에게 말하여 그의 어머니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20 곧 어머니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은지라.”

 

하루는 이 아이가 아버지를 찾아 추수하는 현장까지 왔다가 갑자기 내 머리야 내 머리야하며 두통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뜨거운 태양열로 인한 일사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단순한 두통으로 생각하고, 사환을 시켜 그 아이를 어머니에게 데려가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 아이는 어머니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그 아이가 어떤 자식입니까? 뒤늦게 선물로 받은 귀한 자식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죽어버린 것입니다. 이 어머니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오늘 본문은 이 어머니의 행동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21~25a “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22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23 그 남편이 이르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거늘 그대가 오늘 어찌하여 그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냐 하는지라 여인이 이르되 평안을 비나이다 하니라/ 24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고 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위하여 달려가기를 멈추지 말라 하고/ 25 드디어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수넴 여인의 행동은 특이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당했을 때 통곡하며 우느라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데, 수넴 여인은 아들의 죽음 앞에 통곡하며 울지 않습니다. 아이의 죽음을 숨깁니다. 엘리사가 쓰던 침상 위에 눕히고 혹시라도 누군가 눈치챌까 문을 꼭 닫았습니다. 심지어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습니다.

그녀는 엘리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만이, 생명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믿었습니다. 불임인 자신에게 생명을 잉태하게 하신 분이라면, 죽은 아들의 생명도 돌려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청하건대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22)라고 말합니다. 남편은 지금 초하루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닌데,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도 아닌데, 왜 뜬금없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러 가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평안을 비나이다’(샬롬)이라고 말하고 떠납니다. 이 말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남편을 안심시키기 위한 지혜로운 처신이자, 또한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확신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환에게 몰고 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위하여 달려가기를 멈추지 말라”(24)고 명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있는 갈멜산으로 출발합니다(약 40km). 나귀를 타고 쉬지 않고, 40km를 달려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엘리사의 발을 붙잡는 어머니>

 

갈멜산에 있던 엘리사는 그녀가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25a~27“...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그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26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엘리사는 게하시를 보내 그녀를 마중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엘리사가 그녀를 대단히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찾아왔을 때에는 내다도 안 봤음)

 

그녀를 마중나간 게하시는 평안하냐?’ 묻습니다.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임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하시의 질문에 수넴 여인은 평안하다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게하시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자세한 설명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속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직접 만나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보자마자 엘리사의 발을 안았습니다.” 발을 안은 것은 도움을 요청하는 심정의 간절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전혀 귀한 여인 답지 않은 행동입니다. 아무리 예언자이지만, 다른 남자의 다리를 붙잡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입니다.

 

가나안 여자의 믿음 15:21~28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참고 7:24~30) 이방인인 가나안 여자가 유대인인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파격적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자신의 딸이 치유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눈총에도, 예수님의 모욕적인 말씀에도 굴하지 않고 딸의 치유만을 구했던 것입니다.

모욕적인 말씀에도 굴하지 않은 것도, ‘귀한 여인이 발을 안은 것도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이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8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표준새번역 : 28여인이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선생님, 제가 언제 아들을 달라고 하였습니까? 저는 오히려 저 같은 사람에게 농담을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는 단순한 원망의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아들을 구해달라는 절규입니다.

자식이 없을 때보다 하나 있는 아들 자식을 잃었을 때의 슬픔이 몇 십배로 큰 법입니다.

왜 자신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아들을 주어 더 큰 슬픔을 겪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은 아들이니 하나님의 축복으로 다시 살려달라는 요청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게하시를 통하여 지팡이만 보내면서, 자기 대신 속히 가서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에 놓으라고 명합니다(29). 지팡이는 여행용이 아니라 왕의 홀과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지자적인 은사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게하시에게 선지자의 임무를 대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당신이 직접 가지 않으면 다리를 놓지 않겠다고 합니다.

30아이의 어머니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따라가니라.”

 

제자 게하시가 대신 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만을 의지하고자 하는 간절한 심정과 사태의 긴박성를 나타낸 것입니다.

 

<죽은 아들을 살리시는 하나님>

 

수넴에 온 엘리사는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렸던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그 아이를 살립니다(왕상 17:21).

31~37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37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먼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입과 눈과 손을 맞대고 그 아이 위에 엎드립니다.

하나님은 엘리사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죽었던 아들의 살이 차차 따뜻해지더니,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기도 하시고,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아 ‘참된 부모의 자세’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는 수넴 여인의 신앙과 인품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우상숭배로 어두워진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도 그녀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참된 종을 분별하고, 그를 존중하였고, 정성껏 대접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10:40~42(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종만을 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행동임을 깨달아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환난 중에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수넴 여인에게 아들이 갑자기 죽는 충격적인 위기가 닥쳐왔지만, 그저 울고 있지만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의 발을 붙들고 강청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믿음으로 아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면 아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종종 고난이 닥쳐옵니다. 가만히 계시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치 말고 오직 기도하시기를 바랍시다.

 

셋재, 오늘 수넴 여인을 통해 참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한 수넴 여인의 간절한 기도뿐 아니라 ‘귀 부인’답지 않게 엘리사의 발을 안는 간절한 행동이 엘리사를 감동하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셔서 아이의 생명을 되살려 주신 것이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어머니(부모)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향한 사랑에는 있지만, 부모들이 자녀를 향한 사랑에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한계치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수학 공식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과학적 데이터로 분석하거나 측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사랑은 그 한계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부모님을 생각합니다. 수넴 여인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의 부모님의 모습이고, 부모이신 저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 여러분의 부모님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모이신 저와 여러분에게 한없는 위로와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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