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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진행)

열왕기하 강해(14) - 시대의 해독제가 되라

작성자박춘경|작성시간26.06.10|조회수32 목록 댓글 0

열왕기하 강해(14) 2026. 6. 10

시대의 해독제가 되라

왕하4:38~41

 

오늘 본문은 흉년 중에 제자 공동체에서 일어난 은혜의 사건입니다.

 

<길갈에 흉년이 들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후에 다시 길갈에 돌아왔습니다.

38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길갈은 엘리사가 거주하고 있던 선지학교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길갈에 흉년이 들게 되었습니다.

선지 동산이라 해서 흉년이 지나치지는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모든 고난이 피해 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고난을 만났을 때의 태도가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 태도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보다, 엘리사 앞에 앉았습니다.

이것은 배고픈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엘리사의 해법>

 

그 태도를 보고,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큰 감동을 주셨습니다.

엘리사는 사환에게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고 주문하였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큰 솥을 채울 음식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환은 순종하였습니다.

 

<알지 못하는 열매>

 

그 솥을 채울 채소(산나물)을 캐러 들로 산으로 나갔습니다.

39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 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땅은 흉년을 겪고 있었습니다. 땅은 소산을 내지 않았습니다. 무화과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았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달리지 않았습니다. 올리브 수확도 실패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열매가 없는 황무지였습니다. 그런 때에 한 사람이 들포도 덩굴을 발견하고 그 덩굴의 열매(들호박)를 따서 옷자락에 한가득 채워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들포도 덩굴이 정확히 어떤 식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식용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열매입니다. 그 열매를 본 사람들은 아무도 그 열매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국에 썰어 넣었습니다. 흉년이 들어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터에 이것저것 가릴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버섯과 산나물 중에는 독이 있는 것이 많음 구별하기 어려움).

 

<독이든 국>

 

제자들은 오랜만에 배불리 식사할 것으로 기대하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40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그들이 외쳐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이것저것 넣은 국이 끓자, 퍼서 제자들에게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난리가 났습니다. 배탈이 나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하고 외쳤습니다.

 

<해독하는 엘리사 - 가루를 가져오라>

 

상황을 깨달은 엘리사는 특이한 명령을 내립니다.

41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지니라.”

 

국에 있는 독을 없애기 위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독이 없어졌습니다.

 

이 가루는 무슨 가루였을까요? 무슨 특별한 효능이 있는 가루였을까요? 아뇨. 그저 평범한 밀가루였을 뿐입니다.

이미 단지 국을 진하게 할 목적으로 솥에 집어 넣은 가루였습니다. 같은 가루입니다.

 

이 밀가루의 효능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전에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쓴물단물로 바꾼 기적을 다시 상기해 보아야 합니다.

왕하2:19~22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소금의 가치는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알고 계십니다. ‘소금’은 음식물의 양념으로(욥 6:6), 소독제(겔 16:4)와 방부제 등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그렇지만 물을 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소금을 사용하면 오히려 물은 더 쓸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여리고의 사람들도 다 상식이 있는 사람들인데, 에이, 무슨 소금으로 물을 고치나하며 무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엘리사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아듣고 소금을 가져왔습니다.

엘리사는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면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하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물이 즉시 고쳐졌습니다. 사실 소금은 수단일 뿐 중요한 것은 순종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입니다.

 

엘리사가 가루를 가져오라 했을 때 제자들은 이미 가루가 국 안에 들어가 있는데 무슨 소리인가하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엘리사에게 (밀)가루를 가져다드렸습니다. 엘리사는 이 가루를 솥에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독이 사라지고, 먹을 수 있는 죽이 되었습니다.

국의 변화는 그 가루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수단이 아니라 순종의 도구) 하나님의 권능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입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토해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1) 이 땅에 사는 동안 성도는 세상의 고난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흉년은 계속되었습니다. 엘리사와 그의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자연 재앙의 형벌은 훌륭한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혹은 교회당이 서 있는 곳이라고 해서 특별히 예외적인 보호를 받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세상의 환경에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가르침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5:44~45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이 말씀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보는 사람이 똑같은 환경에 처해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라고 표현합니다. '일반 은총'이란 모든 인간에게 구별 없이 '공통으로' 주어지는 은총을 말합니다(자연 현상이 여기에 해당).

 

중요한 것은 고난을 당할 때의 태도입니다(믿음으로 이겨내는 힘).

사도 바울이 고난 중에 깨달은 교훈을 고후1:4~6에 고백하였습니다.

고후1:4~6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하나님은 성도의 고난을 통해, 고난 받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로하고자 하십니다(헨리 나우웬 상처받은 치유자).

 

또한, 기억할 것은, 예수님은 분명 선인과 악인에게는, 특히 종말론적 측면에서 확실한 차등(差等)이 주어질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25:3-46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알곡과 가리지).

그러므로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2) 고난의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가까이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보다, 엘리사 앞에 앉았습니다.

이것은 배고픈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의 배경(14) -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듦. 배고픈 것도 잊고 말씀에 집중. 결국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일으키심.

 

고난에 처할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뜻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말씀을 읽으면서 그 뜻을 찾아가야 합니다.

 

3) 우리는 엘리사의 큰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제자 공동체의 어려움을 본 엘리사는 자신의 사환에게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고 주문하였습니다. 큰 솥을 걸라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허세를 떨기 위한 허풍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에 부닥칠수록 사람은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입니다. 소심해집니다. 고난의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은 더욱 위축됩니다.

엘리자는 믿음이 위축되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역사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 시대 –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엘리사는 하나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흉년이 온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기 위해, 큰 솥을 걸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능히 하나님이 채우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믿음은, 오늘도 나와 함께 하셔서 큰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주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귀신 들린 자신의 아들을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아이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심한 경련과 함께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기 일쑤였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부터 이런 현상이 있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23). 그러자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외칩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 아이 속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이 아버지의 기도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믿음의 용사, 기도의 용사가 될 수 없습니다. 자라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그릇 크기가 점점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

 

4) 순종하는 믿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엘리사는 사환에게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고 주문하였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큰 솥을 채울 음식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환은 순종하였습니다.

 

또, 독초를 먹고 위기에 처했을 때 엘리사는 가루를 가져오라고 명할 때도 역시 순종하였습니다.

순종이 전제되지 않는 기적은 없습니다.

 

1) 앞서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쓴물단물로 바꿀 때, 소금을 가져오라는 말씀에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 엘리사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부인과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죽고 말았습니다. 과부된 부인은 살아보려 애썼지만 결국 빚을 지게 되었고, 결국 빚을 갚지 못해 그 아들들을 종으로 빼앗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녀 엘리사를 찾아와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였습니다. 그녀가 처한 상황을 들은 엘리사는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과부는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이웃에게 가서 빈 그릇을 빌려오되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려오라고 요청합니다. 과부는 그 명령에 순종하였고, 빌려온 그릇만큼 기름은 끊어지지 않고 채워졌습니다. 순종이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기에, 모든 것을 혼자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나아만 장군에게 순종을 요구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

 

5)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영적 교훈을 얻습니다. 성도는 사망의 독으로 신음하는 세상에 해독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에 있는 독을 없애기 위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독이 없어졌습니다.

이 가루는 솥에 이미 들어간 가루와 똑같은 가루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용 용도는 전혀 달랐습니다. 국에 들어간 독을 해독시키는 ‘가루’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향해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떤 역할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세상은 사망의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2:2~3(세상에 대한 바울의 평가)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예수 믿기 전, 곧 세상에 속한 자의 모습입니다.

 

요일2:15~16(요한의 평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맺는 말씀 – 시대의 해독제가 되라>

 

우리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는, 같은 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의인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제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 속으로 들어갈 때 독이 든 세상이 해독되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우리 삶의 현실은 의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고 격려하였습니다. 때때로 낙심과 좌절이 몰려오지만,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반드시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 때문에 세상이 치유함을 얻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의 ‘해독제’로 살아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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