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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칼럼

일찍 피는 꽃과 늦게 피는 꽃

작성자최광희|작성시간18.04.04|조회수558 목록 댓글 0

일찍 피는 꽃과 늦게 피는 꽃

최광희/ 목사

 

우리나라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 중에는 매화가 있고 개나리와 진달래도 있지만 가장 사람들의 눈에 화려하게 뜨이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꽃은 벚꽃입니다. 또 아울러 과수원에는 복숭아꽃, 사과꽃, 배꽃도 참 화려하게 피어오릅니다.

그런데 남들이 이렇게 화려하게 꽃을 피워 봄이 왔음을 온 세상에 알리는 동안 아직 겨울잠만 자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들도 있습니다. 감나무와 포도나무입니다. 지금쯤 감나무에게 가 보면 이 나무는 죽어버렸는가 싶도록 아무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것만 놓고 본다면 감나무는 참 게으른 나무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우리 집에는 마당과 울타리에 감나무가 세 그루 서 있었습니다. 감나무는 3월도 지나고 4월도 끝난 후, 5월에 꽃이 핍니다.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과 복숭아꽃 등이 모두 묵은 가지에 꽃이 피는 것과는 달리 감꽃은 5월에 새 순을 낸 후에 그 새 순에 꽃봉우리를 내고 꽃이 핍니다. 그리고 감꽃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 감이 달려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어릴 적에 우리는 간식거리가 부족해서 감꽃이 떨어지면 부지런히 주워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감이라면 단감도 좋아하고 홍시도 좋아하고 곶감은 정말 맛있습니다. 우리나라 동화에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 곶감입니다.

 

감꽃보다 늦게 피고 역시 새 순에 피는 꽃이 또 있는데 꽃 중의 꽃, 장미입니다. 장미는 5월도 아니고 6월에 핍니다. 그래도 장미는 그 특유의 아름다움과 향 때문에 모든 여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어떤 남자라도 사랑하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려고 한다면 아마 가장 먼저 떠올리는 꽃이 바로 이 장미일 것입니다. 장미 100송이를 받은 대부분의 여인은 그 꽃을 준 남자의 정성에 마음을 열게 될 것입니다.

 

봄을 먼저 알리는 벚꽃은 잠깐 피고는 장렬히 사라집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벚나무에서 달리는 열매, 버찌는 사람들에게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사랑은커녕 오히려 천대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벚꽃은 알아도 그 후에 무슨 열매가 달리는지 관심조차 없을 것입니다. 버찌가 까맣게 익었을 때 입에 넣어보면 쌉스럼한 맛을 내지만 잉크를 마신 것처럼 입에 물이 듭니다. 한 마디로 먹을 것이 못 됩니다. 버찌는 땅에 떨어져 짓밟히는데 좀 지저분합니다.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와는 달리 복숭아와 사과, 배는 맛있는 과일이 맺혀서 자라는데 이들은 새순이 나기도 전에 꽃을 피워 일찍부터 과일을 키웁니다. 그런데 한 달 이상 늦게 잠에서 깬 감도 뒤지지 않고 필요한 열매를 다 키워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역시 5월에 꽃피는 포도는 남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더 일찍 풍성한 열매를 맺어 여름부터 열매를 제공합니다. 포도는 과일로도 먹지만 풍성한 수분 때문에 많은 포도즙이 나오고 그 즙은 가만 두면 저절로 발효가 되어 흔히 말하는 신의 물방울로 변합니다. 유대인들은 포도즙과 포도주를 통털어 아인이라고 불렀는데 아인은 기쁨을 상징합니다. 영어의 와인은 아마 히브리어 아인에서 나온 말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남보다 일찍 꽃을 피우느냐 혹은 늦게 피우느냐, 혹은 화려하게 피우느냐 혹은 조용히 몰래 피우느냐 하는 것으로 어떤 나무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나무와 꽃은 고유한 성질과 특징과 장단점이 있고 용도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방식이 제각각 다릅니다.

 

사람 중에도 남보다 일찍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고 대단히 화려하게 나타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늦은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이 꽃피우고 꽃이 질 때 여전히 잠만 자는 것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가을이 되고 추위가 다가오면 그제야 꽃은 피우는 국화꽃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국화꽃 같은 사람이 꽃피도록 하기위해 한 여름 동안에 소쩍새는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모습니다.

 

그런데 빨리, 활짝 꽃피운 사람도 귀하고 가치가 있지만 늦게 피고 조용히 꽃피는 사람도 귀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무들이 모두 열매를 따고 겨울잠을 시작할 때 서리를 맞으면서 꽃을 피워 모든 꽃이 사라진 아쉬운 들판을 지키는 국화도 참 귀한 존재입니다. 벛꽃 같은 사람은 빨리 지는 것 때문에 허탈해할 필요가 없으며 감꽃같은 사람도 안달할 필요가 없고 국화꽃 같은 사람도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꽃들은 다들 자기 성격대로 당당하게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꽃보다 자존감이 약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찍 피는 꽃이나 늦게 피는 꽃이나 다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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