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함에서 오는 행복
최광희 목사
결핍함에서 오는 행복이라니, 무슨 배부른 소리냐 하는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경험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사람은 풍부할 때는 그것이 행복인 줄 모르다가 결핍을 경험해보고서야 비로소 행복하다는 것은 느끼는 뜻밖의 존재이다.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받고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와서 두 주 만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아내는 몇 번 아들과 통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사정이 있어서 함께하지 못했다. 두 주 만의 아들과의 전화 통화, 짧은 시간 동안 스피커폰을 켜 놓고 온 가족이 돌아가며 몇 마디씩 인사하는 동안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갈증을 해소해야 했다. 그리고는 잠깐이라도 목소리를 들어본 것 때문에 가족들은 행복함을 느낀다. 힘든 훈련소에서 군대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낸다니 다행이다. 훈련병 아들과의 통화라니, 옛날 첫째와 둘째 아들이 군에 갔을 때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 아닌가? 이렇게 전화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지 모른다.
결핍함의 행복을 생각하자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무엇보다 먼저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얼굴 보기 힘든 성도들이 생각난다. 모처럼 성도들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툭 튀어 나오는 말이 이게 누구시냐고, 우리 권사님이 맞으시냐고 해 버렸는데도 오해하지 않고 잘 받아주어서 다행이다.
옛날에는 교인이 교회 오는 것은 언제라도 올 수 있었고 교회 내 다양한 모임이 있는 것이 때로는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 주간에 오로지 한번 있는 예배 모임도 마음껏 나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교회마다 현장 예배에 올 수 있는 교구를 할당해 주고, 혹 다른 도시를 방문하거나 확진자가 발생한 장소에 다녀왔으면 현장 예배에 오지 마시라고 권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주일에 예배당에 올 수 있는 것은 특권이고 행복임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사막에 사는 분에게는 물이 가장 결핍하고 홈리스들에게는 한 끼, 한 끼 먹는 음식이 결핍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결핍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분명히 돈이라고 할 것이다. 돈이 부족해서 불편하고 심지어 불행한 사람들에게 결핍함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가는 화를 돋우기 십상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나보다 돈이 많은 분들을 유심히 관찰하면 반드시 나보다 더 행복한 것은 아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이 많은 분에게 누가 신사임당 한 장을 쥐어주면 시시하게 느끼겠지만 그러나 신사임당 한 장 받아들고도 입 꼬리가 올라가는 사람의 경우 그것이 바로 행복을 느끼는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행복을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아들과 통화하기 어려운 이런 환경에 있고 싶지는 않다. 속히 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 받은 후에 마음껏 통화하고 싶다. 아니, 속히 만나서 얼굴을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여 주고 싶다. 또 적은 돈에 감사하고 싶어서 계속해서 가난하겠다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다른 것을 몰라도 돈 걱정은 좀 안 하고 살아보고 싶다. 돈이 부족해서 목회에 지장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나는, 꼭 필요한 돈이라도 채워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세상 그 누구도 원하는 만큼 가지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기에 결핍함을 느낄 때에 한 편으로는 결핍함과 부족함과 아쉬움이 없는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었음을 소망하며 감사할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비록 결핍함의 갈증이 있더라도 그 속에서 결핍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감사와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 감사하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하다. 돈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고 건강도 부족하고 인기나 명예도 여전히 부족하고 무엇보다 자유가 부족하다. 도대체 내 인생인데 내 맘대로 살 수가 없다. 사람은 얼마 만큼 자유를 누리고 어느 정도 소유하면 충분하다고 느낄 것인가? 전 우주를 다 소유하고 전 우주를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 할까? 그러나 그런 생각은 상상만으로도 신성모독이기에 오늘도 여전히 결핍한 인생을 사는 것을 감사하며 행복을 느낀다. 오늘 나는 결핍하지만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