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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칼럼

우편 강도같이 되게 하소서

작성자최광희|작성시간21.04.02|조회수1,264 목록 댓글 0

우편 강도같이 되게 하소서

최광희 목사

 

오늘은 고난주간의 금요일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강도 둘이 함께 처형되었다. 그들의 십자가는 공교롭게도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하나씩 서 있었다. 죄 없는 예수님을 두 강도 사이에 세운 것은 예수님도 흉악범일 뿐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일까? 이 강도들은 어떤 사람인가? 또 그 중 예수님에게 신앙고백을 한 강도는 어느 편 강도인가? 그리고 이것은 왜 중요한가?

 

1. 강도는 어떤 사람인가?

 

누가복음에 의하면 두 강도 중 하나는 예수님을 비방하고 다른 한 명은 예수님을 비방하는 그 강도는 나무랐다. 그 장면을 보면 두 강도는 같이 악행을 했던 동료이거나 감옥에서 만나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다. 헬라어에서 강도는 레스테스(λῃστής)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레스테스는 강도, 산적, 혹은 혁명가 등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실 때도 레스테스(λῃστής)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 등장하는 강도 역시 레스테스(λῃστής)로 표현되었다.

레스테스(λῃστής)는 원래 단순한 약탈자였으나 1세기 당시에 유대인 열심당원들이 로마군을 공격하자 로마인들은 열심당원들을 레스테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레스테스는 약탈자라는 의미 외에도 애국자 혹은 혁명가라는 의미가 추가되었다. 그렇다면 예수님 양쪽에 처형된 레스테스는 단순한 강도일까, 혹은 로마에 항거하다가 체포된 애국 운동가들이었을까? 마태복음 27장과 마가복음 15장에서는 강도를 레스테스(λῃστής)로 표현했지만 누가복음 23장에서는 강도(레스테스 λῃστής) 대신에 행악자(카쿠르고스(κακοῦργος)로 표현되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 좌우에 못 박힌 강도는 로마를 향해 반란운동을 주도하던 열심당원들이 아니라 진짜 악한 강도들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강도들이 단순한 사형도 아니고 십자가형을 당한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 죄를 많이 지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2. 회개한 강도는 어느 편 강도인가?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한 강도가 고통 가운데서 죄 없이 죽어가는 예수님을 향해 네가 메시아이면 너도 구원하고 우리도 구원해보라고 비방하였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반대편 강도가 동료 강도를 꾸짖으면서 예수님이 하신 일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예수님을 옹호하였다. 이어서 그 강도는 예수님에게 가장 짧은 신앙고백을 하였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그 한 마디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놀라운 선언을 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강도는 지금 틀림없이 예수님과 함께 주님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신앙고백을 하고 구원받은 강도는 우편 강도였을까 혹은 좌편 강도였을까? 성경 어디에도 좌우편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런데 많은 경우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그 강도를 일명 ‘우편 강도’라고 부르고 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이것을 두고 성경을 잘못 이해한 대표적 사례로 지적하기도 한다. 성경에 ‘우편’이라는 말이 없는데 자기 마음대로 ‘우편’이라고 읽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잘못 읽는 실수는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 강도는 우편 강도가 맞다. 왜인가?

사람들이 그 강도를 좌편인지 우편인지 이야기할 때 그 기준은 무엇일까? 예수님 방향에서 생각하면 예수님의 오른편이 우편 강도이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의 방향에서는 예수님의 좌편이 우편 강도가 아닌가? 그렇게 보면 우편인지 좌편인지 따지는 것의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에서 ‘우편 강도’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3. 왜 우편이어야 하는가?

 

우리나라 말에서 오른쪽은 ‘옳은 쪽’과 같은 말이다. 사전에서 ‘바른손’을 검색하면 ‘오른손’과 같은 뜻이라고 나온다. 영어에서도 오른쪽이라는 말과 옳다는 말은 같은 단어(right)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히브리적인 개념이다. 히브리인들은 오른쪽을 옳은 쪽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예수님도 의인을 우편에 세울 것이라고 하셨다. 히브리인들에 왼손과 왼발은 부정하다. 그래서 모든 중요한 것에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한다.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발을 씻을 때도 왼손으로 왼발을 먼저 씻고 다음에 오른손으로 오른발을 씻는다. 반대로 하다가는 왼발을 씻던 부정한 물이 오른발에 튀어 부정하게 되면 오른발을 또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인들은 출입문이나 정결탕에 들어갈 때도 오른쪽으로 들어간다. 물론 나올 때는 역시 그 반대편인 오른쪽으로 나온다. 그만큼 그들은 옳은 편에 속하기를 갈망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이나 영어는 물론이고 히브리 사고방식에 오른편과 옳은 편이 같은 개념이라면 예수님 좌우의 강도 중에 옳은 결정을 한 사람은 당연히 오른쪽 강도가 맞다. 그것은 예수님 방향이나 예수님을 바라보는 방향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 강도가 옳은 선택을 했기에 그는 오른쪽 강도이다.

 

나가는 말

 

그 강도(레스테스 λῃστής)는 하나님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해서나 무슨 선한 일을 한 것이 없다. 그는 평생 흉악한 죄만 짓다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그런데 그가 평생 지은 모든 죄보다 더 큰 훌륭한 일을 하나 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요 구원자로 고백한 것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자기의 선행 행위로 자신을 구원하는 줄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내 선한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고난주간의 금요일에 나는 우편 강도처럼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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