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무엇인가?
최광희 목사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다. 한자로는 신자(信者)라고도 하고 또 성도(聖徒)라고도 한다. 그런데 믿는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믿는다는 말일까? 믿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오랫동안 우리는 헬라 철학에 익숙해져왔다. 그래서 믿는다는 것을 마음속의 문제로 인식해 왔다. 그래서 믿다가도 마음이 흔들리고 믿음이 연약해진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강하게 믿고 싶어서 ‘믿~씁니다’하고 기도하기도 한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설교자가 말하면 ‘아멘, 아멘’을 연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에서 믿음이란 그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이다.
믿음 뿐 아니라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히브리인들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랑한다(히, 아하브)는 말도 구체적인 달라붙는다(히, 다바크)는 단어로 바꾸어 놓았다. 사랑이란 달라붙는 것이다. 히브리어 다바크에서 파생된 단어 데베크는 접착제가 된다.
히브리인의 사고방식의 근간은 가족 공동체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주로 800명 혹은 1000명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그 공동체는 한 명의 우두머리(주로 가장)를 중심으로 연결된 형태이다. 그 우두머리는 사법과 행정의 책임자이고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
만일 그 공동체 밖의 어떤 사람이 그 공동체에 들어오려고 하면 우두머리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우두머리가 허락하면 그날로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새로운 회원은 공동체를 사랑하고 충성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과 동시에 그 공동체의 모든 이익을 공유할 권리도 생기는데 바로 그날부터 다른 사람이 일해서 거둔 음식을 먹게 된다. 이 권리가 바로 믿음이다.
공동체에서 의무와 권리는 항상 같이 간다. 공동체의 우두머리를 사랑하여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 공동체에 충성하는 것이 공동체 구성원의 의무라면 공동체의 모든 이익을 공유하는 권리가 바로 믿음이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구성원이 대표에게 드려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대표로부터 받아 누리는 것이다. 만일 그 구성원이 대표를 사랑하지 않고 그 공동체에 충성하지 않는다면 공동체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그 공동체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고 공동체의 이익도 나눌 수 없게 된다.
예수님의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라는 머리에 충성맹세를 하고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 예수님이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 나라를 공유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혹은 권리를 누린다. 이 믿음의 기저에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공동체에 충성해야 한다는 전제에 깔려있다.
오늘날 예수님의 공동체에는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들어와 있다. 너무나 거대하여 공동체가 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이며 우리는 이 공동체를 사랑하고 충성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그런데 일부 신자들이 공동체의 우두머리인 예수님은 사랑하지만 예수님의 공동체에 충성을 하지 않는 일이 있다. 공동체의 원리로 볼 때 이런 사람은 공동체에서 추방이 될 것이며 이 공동체의 열매를 누릴 수 없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열매를 공유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믿음이란 예수님의 구원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권리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게 했던 충성 맹세를 그의 몸된 공동체에 나타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