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게디스의 의자가 촉발한 국민언약
최광희 박사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는 매우 오래된 접이식 의자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이 작고 오래된 의자는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전승에 따라 ‘제니 게디스의 의자’로 불리는 이 의자는 스코틀랜드 국민언약(National Covenant)을 촉발했다고 할 만큼 소중한 물건이다.
때는 1637년 7월 23일, 에든버러의 세인트 자일스 성당(St. Giles’ Cathedral)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예배 시간에 사용되던 예전(禮典)이 바뀌면서, 성도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제임스 1세 왕의 아들 찰스 1세(Charles I)와 이를 뒷받침한 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로드(William Laud)의 승인으로 새롭게 편찬된 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를 스코틀랜드 교회에 강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존 녹스의 영향으로 개신교 신앙을 귀하게 여기던 스코틀랜드 장로교 신자들에게 그것은 교회를 다시 로마 가톨릭 미사로 되돌리는 행위로 여겨졌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인들은 이를 심각한 신앙의 침해로 받아들였고, 그날 예배는 순식간에 소동으로 변했다. 제니 게디스(Jenny Geddes)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네가 내 귀에 이단 미사를 들려주느냐!”라고 소리치며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강단으로 집어던졌다. 전승에 따르면, 게디스는 장터에서 채소를 팔던 한 평범한 여인이었다. 게디스가 이와 같은 돌발행동을 하자 다른 신자들도 일제히 의자와 막대기 등을 함께 던지며 강력히 저항했다. 게디스와 신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돌발행동이나 소란이 아니라, 종교적 억압에 맞서 장로교 신앙을 지키려는 신자들의 저항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오늘날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이 사건을 자유와 신앙의 투쟁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기억한다. 1637년 7월에 일어난 이 불씨는 곧 거대한 불길이 되었고 결국에는 1638년,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모인 신자와 귀족, 시민들이 함께 국민언약(National Covenant)에 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 언약은 1581년, 제임스 6세(훗날 영국의 제임스 1세) 시기에 채택된 신앙고백(King's Confession)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시대적 위협에 대한 저항을 담아 확장된 문서였다. 교회 지도자, 귀족, 그리고 일반 국민들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맹세하고 이 언약에 서명했다.
이 서명은 단순히 신학적 의견만을 표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신앙과 자유를 지키겠다는 서약을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영국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언약운동은 1643년 ‘엄숙동맹과 언약(Solemn League and Covenant)’으로 확장되며 영국 청교도와 연합하여 더 큰 개혁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제니 게디스의 의자 사건은 우연한 돌발 사건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쌓여온 스코틀랜드 교회의 긴장과 불만이 폭발한 상징적 장면이었다. 1560년 존 녹스(John Knox)와 개혁자들이 세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과 장로정치(長老政治)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잉글랜드 국왕들은 일관되게 주교정치(Episcopacy)를 스코틀랜드에 강요하려 했고, 이는 곧 스코틀랜드 교회와 왕권 사이의 지속적인 갈등을 일으켰다.
특히 찰스 1세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하나의 종교 체계 아래 두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위해 1637년에는 새로운 기도서를 강제로 도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스코틀랜드인들에게는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폭거로 보였다. 학문적으로도, 이 사건은 “상향식 신앙운동”이 어떻게 국가적 저항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국민언약은 단순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언약에 서명한 이들은 국왕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기보다,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 아래 교회의 자유를 수호할 책임이 있음을 선언하였다. 이는 훗날 영국과 유럽의 정치 지형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결국 제니 게디스의 의자는 신앙과 자유를 지키려는 국민의 열망을 상징하는 역사적 도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게디스의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역사의 큰 변화가 거대한 군사력이나 강력한 정치 세력이 아니라 한 여인의 작은 행동이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해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진리를 확인한다. 실제로 국민언약 서명 이후 스코틀랜드 교회는 “언약도(Covenanters)”라는 이름으로 신앙과 자유를 수호하는 투쟁을 이어갔다. 많은 이들이 투옥과 순교의 길을 걸었지만, 그 피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통을 더욱 든든히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오늘 우리가 이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우리 시대 역시 옳은 것을 위해 일어서야 할 순간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며 주저한다. 그러나 제니 게디스의 의자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작은 용기, 미약해 보이는 행동이 역사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과 양심을 지키려는 결단이 모일 때,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셔서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하신다.
우리가 지레 포기해서는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와 사회 속에서, 불의에 순응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일어서야 한다. 그것이 작은 목소리일지라도, 때로는 큰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다. 제니 게디스의 의자가 불러온 국민언약처럼, 지금도 우리의 용기 있는 행동이 교회사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채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