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비를 많이 받으면 삯꾼인가요?
최광희 목사/신학박사
1.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나는...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을 일곱 가지로 선언하셨다. 그중에 하나는 “나는 선한 목자이다”라는 말씀인데 선한 목자란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선한 목자의 반대는 삯꾼이다. 그렇다면 선한 목자와 삯꾼은 무엇이 다른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만 삯꾼은 양을 버리고 달아나므로 이리가 양을 물어 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고대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양을 위탁받아 돌보는 삯꾼 목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양이 이리에게 물려가든 말든 등한히 했을까? 삯꾼이 아닌 자기 양을 돌보는 목동은 누구나 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을까? 동서양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명예와 평판을 중시했다. 그들은 자기 양만이 아니라 위탁받은 양이라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매우 노력했다. 하지만 사나운 맹수가 왔을 때 양을 지키다가 자기 목숨을 잃는다면 그는 선한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미쉬나에는 삯꾼 목자의 책임 한계가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삯꾼 목자가 양을 지키다가 늑대 한 마리를 만나면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두 마리 이상의 늑대나 곰, 사자 혹은 도적 떼를 만났을 때 그것은 불가항력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불가항력의 재해로 양을 잃었을 때는 목자에게 법적으로 배상 책임이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예나 지금이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책임감이 강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다.
예수님도 당시에 전해지던 율법적 관례를 충분히 아셨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양을 버리고 달아나는 모든 목동을 정죄하는 듯한 말씀을 했을까? 그리고 양을 지키려고 목숨을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을 왜 선한 목자라고 하셨을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은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목숨 보전을 선택한 모든 목자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목숨과 맞바꾸면서까지 양을 사랑한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을 선언하신 것이다.
자기 양이든, 위탁받은 양이든 잘 돌보는 것이 당연하지만 양을 지키려다가 목자가 목숨을 잃으면 안 된다. 하지만 양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그보다 선하고 고마운 목자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다윗은 양을 지키려고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곰과 사자에게 맞서 싸웠다. 그랬던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에게 바로 그런 목자라고 고백했다. 그로부터 1000년 후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마치 양과 같이 각기 제 길로 가는 죄인들을 살리려고 목숨을 내놓으셨다. 즉 다윗이 곰과 사자에 맞서 싸운 것은 장차 오실 메시아의 예표로서의 행동이었다.
2.
그런데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를 비교하신 예수님의 비유는 다양한 면에서 오해를 받아왔다. 우선, 예수님이 말한 선한 목자는 법적 책임과 손익 계산을 초월한, 예수님 자신의 아가페 사랑의 선포라는 사실을 놓치는 것이다. 고대의 이스라엘 목자들은 누구나 다윗처럼 사자와 맞서 싸운 줄로 아는 것도 한 가지 오해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품삯 혹은 대가를 받는 사역자를 삯꾼으로 생각하여 정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반드시 일한 만큼 삯을 주는 것이 정상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짐승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모세의 율법에는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도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한다(신 25:4). 바울은 이 율법을 인용하여,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가 사례비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교훈으로 적용한 것이 두 번이다(고전 9:9, 딤전 5:18).
그런데 유교적 청빈 사상이 팽배한 대한민국 교계에서는 사례비를 굶지 않을 만큼만 받으면 선한 목자이고 남보다 넉넉히 받는 목사는 삯꾼 목사라는 사고방식이 두루 퍼져 있다. 하지만 유교적 청빈 사상이 꼭 성경적이지는 않다. 성경은 더러운 이득을 취하지 말라고 했을 뿐 넉넉한 사례비를 받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바울조차도 사역지의 형편에 따라 가난하기도 했고 풍부하기도 했다(빌 4:12).
목사가 사례비를 많이 받는 것은 교회가 부유한 지역에 있거나 성도 수가 많을 때 가능하다. 만일 사례비를 많이 받으면 삯꾼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면 가난한 지역에서 목회하거나, 교회가 성장하지 않아서 자립하지 못하는 교회의 목사는 모두 선한 목자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목사가 가난한 것과 선한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넉넉한 목사 중에도 성실하고 훌륭한 목사가 있을 수 있고 가난한 목사 중에도 불성실하고 무자격한 목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목사 중에는 겸손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삯꾼 목사입니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겸손한 표현에는 뜻밖의 문제가 있다. 예수님이 말하려던 선한 목자의 의미를 놓치게 되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고, 삯꾼 목자에 관해 오해하게 되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삯꾼은 품삯을 받는 목자가 아니라 양이 이리에 물려가도 관심 없는 악한 목자이다.
오늘날 삯꾼 목사는 누구인가? 이를 규정하려면 먼저 이리가 누구인지 직시해야 한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이 성도 가운데 들어와서 노략질하는 이리(λύκος, wolf)라고 말씀하셨다. 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흉악한 이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않고 자기들을 따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행 20:29-30).
바로 그 말씀처럼 오늘날 신학교에는 순진한 신학생들에게 성경 비평학을 가르쳐 믿음을 빼앗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있다. 사실 그들은 신학자라 부르는 것도 부적절한 악한 이리들이다. 그런데 목사가 그런 신학교 교수를 팔짱 끼고 구경한다면 그것이 바로 삯꾼이다. 잘난척한다고 비난받을까 봐, 공부 많이 한 신학교 교수와 싸우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심지어는 양의 탈을 쓴 간교한 이리를 식별하지 못해서 양들이 미혹되고 있는데 그런 이리와 친하게 교제하고 고상한 말만 하는 목사는 무책임한 삯꾼이다.
다시 말하지만, 삯꾼 목자란 사례비를 많이 받는 목사가 아니다. 사례비를 넉넉히 받는 사람은 부자라고 하는 것이 맞다. 사람은 받은 은사(달란트)가 각각 다르다. 어떤 분은 천성적으로 머리가 좋거나 건강하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예쁘거나 말을 잘한다. 돈을 버는 데도 부자가 있듯이 두뇌에도 부자가 있고, 외모나 노래 실력 혹은 운동 실력에도 부자가 있다.
목사 중에서도 설교와 교회 운영을 잘해서 사례비를 넉넉히 받는 부자가 있다. 실력 있고 돈 많은 사람이 다 삯꾼이 아니듯이 교세가 크고 사례비 많이 받는다고 하여 삯꾼은 아니다. 물론 목회자가 더러운 이득을 취하거나 대형화를 통한 사욕을 탐한다면 비난의 대상이다. 하지만 교회의 규모와 형편에 따라 정당하게 지급되는 사례비 그 자체를 죄악시하는 태도는 성경적이지 않다.
4.
예수님은, 이리가 오는데 양을 버리고 달아나는 사람이 삯꾼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맹수가 하는 짓은 양을 물고 가서 죽이고 뜯어 먹는 것이다. 맹수는 위험하다. 만일 사자가 양을 빼앗기면 그다음에는 목자를 공격할 것이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주의 교수들이 가르치는 성경 비평학의 악함을 폭로하면 그 교수들이 힘을 다해 목사를 공격할 것이다.
일례로 최근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120회 총회가 유신진화론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기성 교단의 서울신학대학교 이사회는 2024년에 유신진화론을 옹호하는 박영식교수를 해임한 바 있다. 하지만 박영식교수는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로부터 해임 취소 통보를 받고 교수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기성 교단 총회가 유신진화론을 이단으로 규정했으니 이사회가 힘을 받게 되었다.
그것을 알기 때문인지 지금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중 유신진화론을 두둔하는 자들이 길길이 반발하고 있다. 또한 외부에서 유신진화론을 두둔하는 학자와 목사도 기성 교단이 중세 시대로 돌아갔다는 말로 공격하고 있다. 한 교단 총회의 결의에 대해서도 이렇게 반발하는데 개인 목사나 학자가 자유주의신학, 성경비평학, 유신진화론 등 반성경적 이리들과 싸우려면 피흘리며 싸울 각오가 필요하다.
다윗이 그랬듯이, 예수님이 그랬듯이 선한 목자는 사자의 수염을 붙들고 싸워서 곰과 사자를 물리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자는 어디에서 어떤 맹수가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맹수와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물맷돌 던지는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한다. 날쌘 맹수를 맞히던 물맷돌의 명사수 다윗에게 육중한 골리앗은 어쩌면 더 쉬운 표적이었을 것이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자유주의 신학, 성경 비평학, 유신 진화론 등을 열심히 공부하여 그 폐단에 관해 익숙해야 한다.
예수님은 삯꾼 목자인 바리새인을 지적하고 공격하다가 그들의 미움을 받아 십자가형까지 당했다. 지금도 신학적 이리들과 싸우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주셨듯이 선한 목자의 반열에 서서 죽도록 충성하는 목사들에게도 생명의 관을 주실 것이다. 오늘날 목사가 맹수의 공격을 막아서서 양을 보호해야만 예수님의 제자이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사례비를 적게 받든지 전혀 안 받든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례비를 많이 받는 목사가 삯꾼이 아니라 반성경적 악한 사상에서 양을 보호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삯꾼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