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9 주일설교
가능성 없는 나에게
(마태복음 13:33)
높아서 문제/ 낮아서 문제
사람의 몸속에는 콜레스테롤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수치는 200을 넘지 않아야 하고 240이 넘으면 고지혈증이라고 부릅니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설명은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HDL 수치는 60이 넘어야 하고 LDL 수치는 130 미만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HDL은 낮으면 문제가 되고 LDL은 높으면 문제가 됩니다.
이처럼 몸에서는 콜레스테롤이 문제라면 우리의 마음에는 자존(自尊)이 문제입니다. ‘자존’ 뒤에 무슨 글자가 붙느냐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심’이 붙으면 ‘자존심’이 되고 ‘감’이 붙으면 ‘자존감이 됩니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글자가 비슷하지만 뜻은 전혀 다릅니다. 자존심은 높으면 문제가 되고 자존감은 낮으면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 없는 자존심이 높습니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약간만 무시를 당하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면 화를 내거나 정반대로 좌절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존감(self-esteem)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무시를 당해도, 심지어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일이 있어도 쉽게 화를 내거나 혹은 좌절해 버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입니다. ‘에이, 저 같은 게 뭐 대단하다고요?’라는 말은 한 편으로는 진심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거짓입니다. 그 말이 진심인 이유는 정말로 매사에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잘나지도 않았고 잘 하는 것도 없고 머리도 나쁘고 말주변도 없고 인기도 없고 돈도 잘 못 벌고 공부도 많이 못 했고 센스도 없고... 이쯤 되면 죽어야겠죠.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별 볼일 없는 사람을 무시하면 바로 화를 냅니다. 아니, 본인이 스스로 별 볼일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내가 그렇게 시시한 사람으로 보이느냐고, 이렇게 무시당하고는 못 산다고 엄청나게 화를 냅니다. 그 말은 자신이 시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죠. 자기는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죠.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중요한 직책을 맡기면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임명 안하면 섭섭한 것이 사람입니다.
자기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말과 자기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말 중에 도대체 어느 쪽이 진짜일까요? 둘 다 진짜입니다. 정말로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본심인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엉뚱한 자존심만 높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마치 LDL 수치는 낮추고 HDL 수치는 높여야 하는 것처럼, 자존심은 낮추고 자존감은 높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콜레스테롤에 관해서는 의학박사들이 원인 분석과 해결방안까지 다 내어 놓았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실천을 잘 못해서 그렇지 시키는 대로만 하면 해결됩니다. 반면에 자존심을 낮추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해결방안을 몰라서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자존감을 높이는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누룩비유: 천국의 확장성?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 설명하실 때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지요. 그 중에 하나가 소위 ‘누룩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간단하게 ‘한 절’입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 비유를 설명할 때 ‘천국의 확장성’이라는 의미로만 설명합니다. 천국의 확장성이란 잘 보이지도 않는 누룩이 많은 반죽을 부풀리듯이 미미한 교회가 온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좋은 설명입니다. 사실 천국은 2000년 동안 그렇게 확장되어 왔습니다. 적은 누룩이 많은 밀가루 반죽에 눌려버리지 않고 오히려 반죽을 부풀게 하듯이 천국은 어떤 방해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계속 확장되어 전 세계에서 많은 백성을 구원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소망을 가지고 천국 확장에 기쁘게 동참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누룩비유: 가능성 없는 나에게!
그런데 그렇게 동참하고 하나님 일에 쓰임받기 원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 교회가 비전을 제시하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자고 말하면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나는 능력이 없어 별로 도움이 못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어떤 못난이의 생각이 아니라 대부분의 반응입니다. 누구나 자존심은 높지만 자존감은 낮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누룩 비유는 새로운 희망을 제공해 줍니다. 누룩 비유의 더 중요한 교훈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룩’입니다. 성경학자들이 누룩 비유를 천국의 확장성으로 설명할 때는 아마도 이스트(yeast)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건조된 이스트는 효능이 아주 좋습니다. 바게트 빵을 만들 때 필요한 이스트는 밀가루의 0.6%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밀가루 한 말을 반죽한다면 이스트는 자판기 종이컵의 2/3 분량만 넣으면 됩니다. 그 정도 양을 가루 한 말에 섞어 놓으면 이스트는 보이지도 않겠지만 전체를 부풀려서 바게트를 만들 수 있다니 대단하죠.
그런데 예수님 시대의 누룩은 우리가 아는 이스트가 아닙니다. 그 시대의 누룩은 먹고 남은 빵을 말린 빵가루입니다. 이 가루를 반죽에 넣어 놓으면 부풀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그런 누룩을 가루 서 말에 넣는다면 도대체 언제 반죽이 부푼단 말입니까?
우리는 출애굽 시대에 발효되지 못한 빵을 구워 먹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해마다 유월절이면 반드시 무교병을 먹는데 두 가지 의미가 있죠. 우선, 발효되지 못한 딱딱한 빵은 애굽의 노예시절에 당한 고난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출애굽할 때 느긋하게 발효시킬 시간이 없어서 무교병을 구워먹은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 당시에도 누룩의 효능이 좋지 못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천국의 모습은 어떤 여자가 효능 떨어지는 그 누룩을 무려 가루 서 말에 집어넣은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그런 여자가 있다면 주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여자는 요리를 망치고 집안사람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이 그런 모습이라니 예수님은 과연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누룩 비유의 주인공을 천국에 대입시킨다면 여자는 하나님이고 반죽은 이 세상과 교회이고 누룩은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왜 귀중한 반죽을 버릴지도 모르는데 가능성 없는 여러분을 무모하게 집어넣으시는 걸까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부족하지만 기쁘게 주님의 일을 감당하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잘 한 것은 모두 인정하시고 칭찬하시고 마지막에 상급과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이라 말하지 말고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나는 어리고 무능해서 아무 것도 못한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경험이 부족하고 미숙한데 비해서 굉장히 중요한 일에 부름 받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름 받아서 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슬프다고 했습니다. 오죽하면 자신을 ‘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이란 경험이 없고 능력이 없고 자신감이 없고 환경은 매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함께할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1:6~8)
위대한 예레미야 선지자도 스스로를 말할 줄도 모르는 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무능하게 여기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천국은 설명하시며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넣은 누룩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능성 없는 나에게 능력을 주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군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갸랴는 포로 귀환 이후에 스룹바벨 총독이 성전을 세우던 때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70년 전에 멸망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우여곡절 끝에 성전을 다시 세우기는 했지만 그 옛날 솔로몬 성전과 비교해서 너무나 초라한 성전의 모습을 보며 백성들은 기쁨보다 슬픔이 더 컸습니다. 바로 그런 시대에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서 이 성전에 메시야의 영광이 가득할 것이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순금 등잔대 양쪽에 순금 올리브나무가 서 있고 파이프를 통해서 순금 기름을 계속 공급해줌으로 등잔대가 절대 꺼지지 않는 환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기서 등잔대는 하나님의 교회를 뜻하는데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일곱 순금 등대 사이를 걸어 다니는 모습으로 등장하셨습니다.
스가랴 시대의 유다는 나약했고 성전은 초라했습니다. 어떻게 메시야가 끊임없이 기름을 공급하여 꺼지지 않는 교회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스가랴는 천사에게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 천사는 이런 말씀으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약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세상에서 잘나고 능력 있는 사람만 쓰시지 않습니다. 혹시 능력이 있다고 까부는 사람은 먼저 굴복시키고 항복시킨 후에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 아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주어 사용하십니다.
그것을 남보다 일찍 깨달은 한나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삼상 2:7).
바울은 이것을 빨리 눈치 채고 스스로 만삭되지 못하여 난 팔삭둥이 같은 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아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전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존심은 낮추고 자존감은 높이고
우리교회에는 대단한 부자도 없고 높은 관직에 앉은 사람도 없습니다. 게다가 숫자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교회는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 교회입니다. 일곱 순금 등대 사이로 다니시는 예수님이 우리교회에도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별 볼일 없는 ‘아이’일지라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누룩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은 작은 자 하나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동참할 기회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섬길 기회를 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저는 벌써부터 내년도에 직분자를 어떻게 임명하고 직책을 어떻게 배분할지 고심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년도 뿐 아니라 이번 가을에 우리 교회가 하려고 계획한 것도 있는데 여러분 모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성공하는 경험을 공유해봅시다. 11월에 집중전도주일을 정해놓았는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나아가봅시다.
힘들겠고 어렵겠다고 생각하던 일들을 기도하며 협력해서 성공했을 때, 그럴 때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것이 바로 간증거리입니다. 신자는 무슨 신비체험을 한 간증거리보다 믿음의 체험을 한 간증거리가 중요합니다. 또한 개인의 체험보다는 교회적으로 믿음의 체험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체험이 쌓이면 여러분의 자존심은 내려가고 자존감은 높아갈 것입니다. LDL이 내려가고 HDL이 높아지면 몸이 건강해지듯이 자존심이 내려가고 자존감이 높아지면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 건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이고 목사의 소원인데 또한 여러분의 소원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능성 없는 나에게 기회를 주시고 기다려주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