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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2020

2020-03-22 주일설교, "피할 곳은 어디인가요? " (시편 46:1~11)

작성자최광희|작성시간20.03.21|조회수325 목록 댓글 0

2020-03-22 주일설교

피할 곳은 어디인가요?

(시편 46:1~11)

 

 

도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불안한 세상

 

여러분의 어릴 적 꿈은 무엇입니까? 저의 꿈 가운데 하나는 연극 배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제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영화 제목은 코로나 2019”입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재난 영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몇 주째 주일이 되어도 얼굴도 못 보고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개학이 연기되어 학교에 못 가니 아이들이 발광을 합니다. 인터넷에는 재택 근무하는 어머니의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손발을 묶고 입을 봉해놓고 컴퓨터 앞에 앉은 엄마의 모습, 설마 연출이겠지만 이런 걸 요즘 말로 웃프다고 하지요.

요즘은 문자 메시지가 오면 대부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내용입니다. 집 밖은 위험하다고 사람들이 외출을 안 하다가 확찐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먹거리 쇼핑도 인터넷으로 하다 보니 요즘은 택배 오는 것이 명절 때보다 더 오래 걸립니다.

이 세상을 피해서 달아나버리고 싶지만 도대체 피난처는 어디일까요?/ 안전한 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언제쯤 안전한 세상이 올까요?/ 도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요?/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나요? 발걸음 무겁게.

이 세상 어디 쉴 곳 있나요? 머물 곳 있나요?

 

이런 문제, 이런 고민의 해답을 찾으려고 저는 한 걸음 물러나서 역사를 보고, 성경을 보았더니 이런 일은 세상에 처음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환난이 늘 있어왔고 그때마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잘 대처하고 잘 이겨왔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잘 극복한 사람들은 그 상황을 노래로 만들어 후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었습니다. 시편 46편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라 자손의 노래를 통해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지 해답을 찾아봅시다.

 

I. 요란한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피하라.

 

1) 변하면 안 되는 것, 땅과 산이 무너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나, 전 세계나,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목사가 성도에게 교회에 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상상도 못해 봤습니다. 학교 교수들도 카메라 앞에서 강의하고 학생들은 집에서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도 그랬습니다. 1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큰 환란을 겪었습니다. 2절에서 시인은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라고 말합니다. 원래 땅은 변하지 않고 산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변해서는 안 되는 기본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2) 원래 불안하던 바다가 우리를 죽이려 한다.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릴 때 바다는 어땠을까요? 3절에는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라고 말합니다. 원래 안전하던 산이 흔들리자 원래 불안했던 바다는 기회는 왔다 하고 죽이려고 덤벼들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환율은 오르고 주가는 곤두박질쳤습니다. 가뜩이나 장사가 어려운데 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이 오지 않아서 직원에게 강제로 무급휴가를 주는 가게가 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힘드시죠. 제가 아는 집사님은 치과원장인데 환자가 없어서 문 닫고 등산 왔다면서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땅이 흔들리고 바다가 솟구친다는 것은 9절을 보면 전쟁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립니다. 어디 한 곳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그런 난리 속에서 시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3) 모든 것이 무너질 때 피난처는 하나님이다.

이 시는 그런 난리를 경험한 후 어디가 가장 안전한 피난처였든지 노래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첫 마디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1)

시인은 하나님이 환난 중에 도움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은 히브리어로 메오드(מְאֹד)인데 굉장히, 매우, 대단히그런 뜻입니다. 모든 토대가 흔들리고 죽음의 세력이 삼키려고 할 때 하나님이 시인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몸이 아플 때는 어떤 의사가 큰 도움이 됩니다. 공부할 때는 어떤 교수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사업할 때는 어떤 사장님에게서 큰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위기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여러분도 하나님을 만나시고, 시편기자처럼 고백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II. 하늘의 왕 하나님께로 피하라.

 

1) 하나님의 나라에는 평화로운 강(נָהָר)이 흐른다.

3절 끝에서, 세상에 난리가 나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4절에 나옵니다. 시인을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영화에서 시끄러운 전투장면을 보여주다가 장면을 바꿔 사령부에서 회의하는 장면을 보여주듯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하던 시인은 하늘 성소의 모습을 노래합니다. 여러분도 세상만 바라보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에 잔잔한 시냇물이 보입니다. 솟구치는 바다나 범람하는 강물도 아니고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입니다. 잔잔한 시내,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시죠? 이 좋은 봄날에 빨리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잔잔한 물이 흐르는 양수리의 두물머리에 가고 싶습니다. 우리 성도들 다 함께 가십시다. 여러분이 잔잔한 물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잔잔하게 흐르는 시내는 우리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2) 하나님이 계신 성에는 아무런 요동이 없다.

하늘나라의 두 번째 장면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의 모습입니다. 5절을 보면, 이 세상에서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고 바다가 솟구치는 것에 비해 하나님의 성은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하나님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태양을 향해,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화살을 쏘고, 기관총을 쏘고, 아니 미사일을 쏘아대도 태양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물며 세상 사람들이 떠든다고 하나님이 영향을 받을 리가 없습니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슬픔도 없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승리만 있네

고통은 모두 다 사라져 버리고 영광만 가득 하겠네

우리의 주님과 함께 있을 때는 영원한 기쁨 있겠네

 

3)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신다.

우리 하나님의 성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세상에 벌어지는 일에 하나님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십니다(5절하).

새벽에 도우신다는 말을 들을 때 여러분은 무슨 생각이 납니까? 저는 홍해 사건이 생각납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 있을 때 애굽 군대가 달려왔습니다. 백성은 부르짖고 모세는 지팡이를 내밀었습니다. 하나님은 밤새도록 바람을 불게 하셨고 바다에 길이 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 속으로 통과하자 애굽 군대가 추격하려고 합니다. 바로 그 새벽에 하나님이 애굽 군대의 병거 바퀴를 벗겨 버리셨습니다. 모세가 다시 손을 내밀자 새벽에 바다 물이 돌아와서 애굽 군대를 덮쳐버렸습니다.

새벽에 도우신다는 말은 마지막에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새벽에 도우신다는 말은 내일은 찬란한 새 날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새벽에 도우신다는 말은 밤새 기도할 때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새벽에 하나님께서 소리를 내십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의 목소리에 땅이 녹아 버립니다. 땅이 녹아버린다는 말을 할 때 여리고 기생 라합의 말이 생각납니다.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듣고 여리고의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 버렸다고 라합이 고백했습니다. 호랑이가 한번 소리를 내면 모든 짐승들이 오금이 저린다는데 하나님께서 소리를 내시면 사람들의 두려움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의 모든 것 망하겠네.

 

III. 모든 원수들을 멸하시는 하나님께로 피하라.

 

1) 하나님이 오시면 원수를 초토화시키신다.

우리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에서 소리만 내고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저 멀리서 세상을 구경만 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개입하십니다. 8, 그가 땅을 항무지로 만드셨도다.” 하는 말은 하나님은 세상 나라를 초토화시켜 버린다는 말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장로님들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역사의 흥망성쇠(興亡盛衰),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

어떤 개인이든지 나라든지, 어떤 세력이든지 하나님을 대적하면 초토화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던 이집트도 망했고 성전을 허물고 하나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던 바벨론도 망했습니다.

지금 중국의 하나님은 시진핑이라고 가르치라고 한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교회를 가장 싫어하는 북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사태에 이만희와 신천지 이단이 탈탈 털렸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나 세력도 하나님을 대적하면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2) 하나님이 오시면 전쟁을 멈추게 하신다.

저에게 평생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은 바로 독재자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보통 독재자라고 하면 폭군을 떠올리지만 제가 기대하는 독재자는 선하고 지혜로운 독재자입니다. 선하고 지혜롭고 전능한 독재자,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오시면 전쟁은 끝이 납니다. 다 같이 9절을 읽읍시다.

사람들은 모두 평화를 소원합니다. 평화는 어떻게 하면 올까요? 서로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싸우지 않으면 평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평화는 동화책 속에만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해서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평화란 서로 양보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힘의 우위에서 옵니다. Pax Romana, Pax Americana는 모두 막강한 힘의 우위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에 의한 평화입니다.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이 오시면 전쟁이 그칩니다. 하나님이 오시면 참 평화가 옵니다. 그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것이 제가 소망하는 평화입니다. 그 날을 소망하면서 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온 세상 전쟁 그치고 참 평-- ---

 

3) 조용히 하고 만군의 하나님께 피하라.

10절에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셨을까요? 성도들일까요? 원수들일까요? 원수들이나 성도들이나 모두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원수들을 이 말씀을 들을 귀가 없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듯이 원수들은 죽을 때까지 덤빕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성도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일찍이 홍해 앞에서 모세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4:13-14)

 

결말.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이다.

 

지금 우리에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라는 것이 아주 특이합니다.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에 있는 반생물입니다. 바이러스의 크기는 세균 즉 박테리아의 1/100입니다. 바이러스는 가만히 있다가 생명체를 만나면 그 속에서 자기증식을 합니다. 바이러스는 가장 작지만 무서운 존재입니다.

201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실린 한 논문에 의하면, 중국의 과학자가 박쥐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를 추출해 돌연변이를 만들었는데 당시에 가진 백신이 효과가 없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사람이 완전히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바이러스야말로 하나님만 통제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이러스가 변종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도 있고 허락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이라스가 일시에 물러가게 하실 수도 있고 더 창궐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바이러스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펼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피할 곳은 하나님입니다. 7절과 11절은 같은 내용으로서 이 시의 후렴입니다. 이 후렴에서 시인은 만군의 여호와가 우리의 피난처라고 노래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아무리 큰 군대도 이깁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아무리 작은 바이러스도 이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지난 주일에 다니엘 이야기를 설교했는데, 다니엘은 기도하면 죽이는 법이 만들어진 상황에서도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감사했다는 히브리어 예다(יְדָא)감사하다, 찬양하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어려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한숨만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시편 46편으로 만든 좋은 찬양곡이 있습니다.

CCM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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