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30 주일설교
교회에 목사를 주신 목적(2)
에베소서 4:11~12
두 주 전에 저는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이어 전에 다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설교할 텐데, 지난번에는 11절을 중심으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주일마다 모든 교회에 오셔서 말씀할 수 있지만 직접 오시는 대신 교회마다 목사를 세워 놓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전하는 말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목사의 말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목사와 교사는 같은 말이며 목사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목사의 제자가 되어야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번 설교에 이어 오늘은 여러분에게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목사의 가르침을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둘째는,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 설교를 잘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제자의 모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이 그림을 좀 보세요. 이 그림의 제목은 “코치의 원핸드 덩크슛”입니다. 이 그림에는 심각한 문제가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교사 세미나에 갈 때마다 이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문제를 발견하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이 그림에 있는 문제는 원핸드 덩크슛을 하는 사람이 코치라는 것입니다. 코치는 선수가 더 경기를 잘하도록 하는 사람이지 본인이 덩크슛이나 3점슛을 성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제로 농구 경기에서 코치나 감독 가운데는 이런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제 성경을 보며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1. 목사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사람이다.
11절에서는 하나님이 교회에 목사 곧 교사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를 왜 주셨는지 그 이유가 12절에 나옵니다. 12절은 ‘이는’으로 시작합니다. 헬라어로는 πρός인데 ‘~을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교회에 목사 곧 교사를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외쳐 보세요.
“목사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많은 목사들이 성도를 온전하게 만들라고 하신 직무를 유기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성도를 온전하게 만드는 대신에 누구를 온전하게 만드는지 아세요? 목사들은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도가 너무 안쓰럽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일주일 내내 바쁘고 힘들게 지냅니다. 그런 분들이 주일에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 해도 대견합니다. 그런 성도를 붙들고 성경 공부를 시키자니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형편이 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성경 공부를 하지 않는 습관이 굳어져 버립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하루 5시간씩 성경을 가르쳤는데 저는 바울만큼 독하지 못합니다.
둘째는, 성도들이 협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공부하자고 하면 급한 일이 있다고 양해를 구합니다. 성경을 읽어 오라고 해도 바빠서 못하고 옵니다. 그래서 성경 공부보다 친교를 하며 믿음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A. 믿음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B. 성경을 공부하려면 믿음이 좀 더 성숙도록 기다려야 한다. 이런 것을 딜레마(dilemma)라고 합니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억지로 돌리는 것입니다. 경운기는 스스로 시동이 걸리지 않지만 억지로 몇 바퀴 돌리면 시동이 걸립니다. 그러면 강력한 힘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목사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바울은 그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보통 목사들은 그렇게 하려니까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목사들은 억지로 돌리지 않고 쉬운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성도에게 시키지 않고 목사 자신이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열심히 기도하고, 목사가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목사가 열심히 전도하고, 목사가 열심히 나가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범을 보이면 성도들이 따라오겠지 하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우리 목사님 잘한다’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칩니다.
이것은 농구로 말하면 코치가 원핸드 덩크슛, 두핸드 덩크숫, 3점슛까지 멋지게 성공하고 리바운드도 잘 잡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코치는 본인이 득점하는 사람이 아니고 선수들이 득점하도록 해야 됩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을 온전하게 만들고, 목사가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온전하게 만들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훈련소에 가면 교관의 설명을 한 후에는 조교가 나와서 멋지게 시범을 보입니다. 훈련병들은 계속해서 조교의 시범만 보고 있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조교의 시범을 딴 한 번으로 끝입니다. 그다음부터는 훈련병들이 해야 합니다. 넘어지고 떨어지고 하면서 될 때까지 연습해야 합니다.
목사가 성도는 그냥 두고 목사 혼자 성경 많이 읽고, 혼자 기도하고, 혼자 전도하는 목사가 많습니다. 이것은 유격대 조교가 혼자 계속해서 시범을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목사를 주신 목적은 계속해서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성도들 온전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새로운 놀이 기구 사용법을 설명하고 시범을 보이면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선생님, 우리도 타 볼래요.” 이제 여러분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시기 바랍니다.
“목사님, 우리도 해 볼래요.”
2. 성도는 봉사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목사는 목사 자신이 아니라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육상 선수가 달리기를 잘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시합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입니다. 축구 선수가 공을 잘 차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월드컵에서 우승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도 목적이 있습니다. 12절 말씀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라고 한 후에 두 가지 목적을 말합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첫째 목적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봉사의 일을 하기에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믿음 성숙이 덜 된 성도들에게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여기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과 시간, 우리의 인격을 초월하는 일을 할 능력을 성령님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는 못 한다고 하지 말고 성령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봉사의 일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봉사의 일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얼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목사에게나 다른 성도에게나 가장 중요한 선물은 여러분의 얼굴입니다. 우리 하나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지 한 장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교회 영상예배에 꼭 들어오라고 초대하는 것은 귀한 봉사입니다. 요즘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영상예배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더 좋은 전도 방법입니다.
헌금도 중요한 봉사입니다.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를 합니다. 그러므로 돈이라는 것은 인생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을 하는 것은 큰 봉사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분의 처지에서 무슨 봉사를 할 수 있을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성도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두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란 교회, 즉 신앙 공동체를 말합니다. 교회에는 공간이나 건물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건물은 목적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요?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방법은 갈라디아서 6장 2절과 5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각각 자기의 짐을 지는 것과 서로의 짐을 지는 것입니다. 신자는 각자의 짐을 지고 서로의 짐을 지기에 온전해야 합니다.
(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 6: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요즘 TV에 방영되는 “강철부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특전사, UDT, SDT, SSU, 707, 해병수색대, 이렇게 여섯 개의 특수부대 예비역들이 자기 부대의 명예를 걸고 시합을 하는데 그 내용이 인간 한계에 도전합니다.
한번은 40키로의 군장을 메고 산악행군을 했는데 그 시합에서 지면 탈락입니다. 그런데 SDT의 이정민가 어깨를 다쳐서 군장을 메고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팀 리더 김민수가 자기 군장과 이정민의 군장을 함께 메고 산을 올라갔습니다.
40키로 군장 하나를 등에 메고 가는 것도 힘들어 줄을 지경인데 다른 사람의 군장을 가슴에 하나 더 메면 80키로입니다. 그렇게 하고 산을 오르는 이유는 한 팀이기 때문입니다. 한 팀은 끝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짐을 서로 지는 모습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모두 40키로 군장을 메고 산악행군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자의 첫 번째 사명은 자기의 짐을 지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기의 믿음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다가 동료가 가기 힘들 때는 서로의 짐을 져 주어야 합니다. 이 말은 서로의 믿음을 붙잡아 주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기 믿음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믿음을 붙잡아 주기에 온전하게 되어야 합니다. 신자를 그렇게 만들라고 하나님이 목사를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강철부대 프로그램에서 먼저 도착한 팀들이 마지막에 오는 팀을 응원해 주는 모습에서 저는 히브리서 12장이 생각났습니다.
(히 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먼저 결승점 천국에 도착한 믿음의 선배들은 지금 우리를 위해 격려하며,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짐을 지고 주저앉지 않으면 반드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SDT 대원들은 이미 꼴찌가 되었고 탈락이 확정되었음에도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은 보여주었습니다. 저 멀리 SDT 대원들이 보이자 먼저 도착했던 팀의 대원들은 모두 달려가서 응원을 해 주었습니다. 그 장면은 보는 사람들을 울게 했습니다. 그리고 SDT 팀은 비록 꼴찌이지만 챔피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꼴찌이지만 챔피언이라는 말은 그만큼 감동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에 도달하면 진짜로 챔피언이 됩니다. 자기 힘으로 넉넉하게 천국에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겨우 갑니다. 목사님의 도움으로 겨우 갑니다. 성도들을 격려하는 목사도 성도들 눈치가 보여서 씩씩하려고 애를 쓰는 중입니다. 어떤 분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어떤 분은 자녀의 도움을 받고 천국에 갑니다. 그렇게, 그렇게 천국에 가면 누구나 챔피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목사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라고 저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통해 온전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봉사의 일을 하시기에 온전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세우기에 온전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기 바랍니다.
한 영혼 더 구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믿음의 손을 잡고 끌어주며 격려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다 도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