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1 주일설교
자신과 타인을 구원하는 비결
(딤전 4:12~16)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는 자신이 있고, 남보다 앞장서고 싶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에는 자신이 없어서 뒤로 빠집니다. 신자 중에도 그런 분이 있습니다. 다른 일에서는 나이와 경험을 내세우면서 앞으로 나서지만, 신앙생활에서는 갑자기 겸손해져서 뒤로 물러가는 분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바울의 입을 통해 스스로 어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향해 교훈을 주십니다. 나이가 젊든지, 경험이 적든지, 신앙생활의 연륜이 짧든지 다른 사람에게 어리다는 소리를 듣지 말라고 하십니다.
디모데는 젊은 나이에 중요한 교회를 맡았습니다. 디모데는 원래 고향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서 주변 신자들에게 칭찬을 받았던 젊은이였습니다(행 16:2). 그러다가 사도 바울의 제자가 되었고 바울에게 인정받아 에베소교회를 맡았습니다. 그렇게 인정과 칭찬을 받은 디모데였으나 자기가 젊다는 이유로 늘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디모데에게 젊다는 사실로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합니다.
12절에서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누군가 업신여기는 사람이 있으면 권위로 누르고 다시는 그런 말을 못 하게 군기를 잡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서는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업신여길 일이 없도록 신앙 인격을 갖추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여러분들에게 적용하면 아무도 여러분은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거나 신앙 연조가 짧다고 느끼거나 믿음이 성숙하지 못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누군가 그런 말을 못 하도록 입을 틀어막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을 할 여지를 없애라는 것입니다. 업신여기기보다 오히려 인정하고 칭찬할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은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 “저 신자는 신앙생활의 연조에 비해 성숙하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성숙해야 할까요?
또한 어떻게 하면 성숙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내면적인 성숙함입니다.
12절에서 바울은 다섯 가지 덕목을 나열하는데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오직’이라는 부사가 있습니다. 여기서 ‘오직’의 의미는 다른 것은 필요 없고 이것만 하라는 말이 아니라 최소 이 다섯 가지는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다섯 가지를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까요? 다른 신자들에게 본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은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 이 다섯 가지 가운데 몇 가지나 자신이 있습니까? 한 항목이 20점이라면 세 개는 자신이 있어야 낙제는 면하는데 우리 모두 낙제를 면하기 어렵죠? 그런데 어떻게 본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말씀을 들으면 은혜가 안 되고 부담만 켜지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쥐 잡듯이 하시려고 성경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그 해답은 잠시 후에 알려드리도록 하고 두 번째 교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는, 사역에서의 성숙함입니다.
성숙함의 첫 번째는 내면의 성숙함인데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서 다른 신자에게 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성숙해야 할 두 번째 영역은 사역입니다. 13절은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서 성숙하라고 합니다.
읽는 것이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공중 앞에서 큰 소리로 성경을 봉독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성도들이 개인 성경책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을 모아서 성경을 읽어주어야 했습니다.
오늘날은 누구에게 성경을 읽어주어야 할까요? 성경책을 가지고 있지만 읽으려고 생각하지 않는 신자, 성경책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여러분이 성경을 읽어주시면 됩니다. 친구들끼리 성경 읽기 모임을 만들어 보세요. 목사가 없는 모임에서 성경을 읽고 무슨 뜻인지 질문하면 서로 아는 대로 답하고 그래도 모르면 목사에게 와서 물어보고 그렇게 하면 됩니다.
또 성경책을 읽어주어야 할 사람은 성경책이 없는 비신자입니다. 비신자에게 성경을 읽어 주세요. 성경을 설명하는 것과 성경을 직접 읽어주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은 그 자체로 능력입니다. 성경을 펴서 직접 읽어주는 것은 마치 무기가 가득한 무기고를 보여주는 것, 돈이 가득 담긴 금고를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지요.
이처럼 여러분은 성경책을 가지고 있으나 읽지 않는 신자, 성경이 없는 비신자에게 성경을 읽어주세요.
읽는 것 다음에는 권면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순서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먼저 가르치고 지식을 갖춘 후에 그렇게 살도록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권면하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사람은 머리로 다 이해해야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또 머리로 다 이해했다고 하여 몸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잘 배운다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가르쳐주면 더 따지고 계속 질문하고 마지막에는 그냥 갑니다.
성령께서 사람에게 임하시면 예수님, 십자가, 부활, 믿음, 천국 다섯 단어만으로도 믿습니다. 예수, 천당 두 단어만으로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람을 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도 전에는 가르친 후에 권면하는 것이 맞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사람은 가르침으로 회심하거나 구원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이 병을 치료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을 보고 예수님에게 빵을 얻어 먹은 후에도 예수님께 등을 돌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언제 변화되었나요? 성령이 임하자 비로소 변화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성령님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믿고 권면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택하신 사람이 주님께 돌아올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순종하려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르치는 것은 성경을 읽어주는 것보다 좀 더 전문 분야입니다. 이 일은 교회를 통해 목사를 통해서 하면 됩니다.
세 번째는, 집중력과 지속성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첫 번째는 내면적 성숙함으로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사역적 성숙함으로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어떤 면에서 성숙할 것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이제 세 번째는 어떻게 성숙할 것인가에 대한 답인데 전심전력하라는 것과 성숙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전심전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요즘 사람들은 세상 직장에서처럼 영혼을 갈아 넣어 1등이 되라는 말로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1등이 되거나 영웅이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바쳐 충성하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전심전력의 헬라어 메탈라오(μελετάω)는 정성을 다하라,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주님 앞에서 바르게 서 있는지, 성실했는지 성찰하라는 뜻이죠. 바울은 주님 앞에서 깊이 자기성찰을 했더니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자기 성찰이 부족한 사람은 자기가 바울보다 훌륭하다고 착각하겠죠.
여러분, 우리 이렇게 합시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영혼을 갈아 넣지는 말고요, 바울처럼 주님께 더 가까이 가서 자신을 성찰합시다.
주의 십자가 있는데 더 가까이 가네
날마다 점점 가까이 더 가까이 가네
구주의 흘린 피로써 날 대속하셨네
날마다 점점 가까이 더 가까이 가네
주님께 더 가까이 가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에 이어 또 한 가지 비결은 지속성입니다. 15절에 ‘성숙함’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프로코페(προκοπή)인데 전진, 진보를 뜻합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진보’로 번역되었는데 개역개정판에서는 ‘성숙함’으로 표현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진보’는 ‘보수’의 상대어로 생각하기 때문인 듯 싶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수주의자가 되지 말고 진보주의작가 되라고 했을 리는 없죠. 여기서 말하는 진보, 프로코페(προκοπή)를 나타내라는 말은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신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주식 시장에서 어제보다 주가가 올라가면 빨간색으로 표현됩니다. 주식에 투자한 모든 사람의 소원은 주가에 빨간 꽃이 피는 것입니다. 주식시장에 빨간 꽃이 피는 것, 그것이 바로 진보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을 원하시죠? 우리 주님의 소원도 우리가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의 진보 즉 성숙한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한번 나아지는가 했더니 다시 땅바닥으로 꺼지고 그다음에는 지하실로 추락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고 성숙함이 아닙니다.
제가 앞부분에서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서 성숙하라고 하면 은혜를 받지 못하고 부담만 커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해답을 뒤에 알려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 해답이 바로 진보입니다. 진보란 완벽이 아니라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완전하겠습니까? 다만 이런 부분에서 믿는 사람답게,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려고 조금씩 진보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자신과 타인을 구원하는 비결
마지막 결론으로 16절은 이렇게 하면 타인을 구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너 자신도 구원한다고 약속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둘 중 하나를 할 때만 믿음도 유지되고 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산불에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불은 자기 혼자서는 존재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다른 나무를 태울 때에만 그 불은 죽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 불과 같습니다. 내 믿음 하나 겨우 지키려고 나만 바라보고 있으면, 내 안의 영적인 불은 어느새 식어버리고 재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세상을 향해 목회자가 되어 누군가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복음을 가르치고, 주님께로 오라고 권면할 때, 즉 내 안의 복음의 불씨를 타인에게 옮겨붙이기 시작할 때, 신기하게도 내 안의 믿음의 불길이 가장 뜨겁게 타오릅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전하는 자만이 영적 침체를 이기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타인을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것이 바로 내 영혼이 살고 내가 구원받는 방법이고 비결입니다. 여러분이 타인을 권하고 가르침으로 본인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성숙하게 되는 그런 복이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