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그 말씀

모든 성경 (2021.12.12 / 대림절 제3주일, 성서주일)

작성자송길똥|작성시간21.12.12|조회수89 목록 댓글 0

 

모든 성경

디모데후서 3:14-17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대림절 셋째 주일이다. ‘기다림초’는 목자들의 초이다. 또 12월 두번째 주일은 성서주일이기도 하다. 성서주일이 대림절 한복판에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때이다. 성경에는 두 가지 강림 사건이 있다. 초림과 재림이다. ‘기쁜 소식’(복음)은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오셨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성경은 과거에 ‘오신 주님’과 장차 ‘오실 주님’을 증거한다. 아마 성서주일이 대림절기 한복판에 있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성경과 기쁜 소식을 더욱 널리 알리고, 보급해야 할 사명이 있다.

 

올해 성경에 대한 편식을 피하려고 톨레레게 진도에 따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골고루 설교하였다. 새해부터 바이블 25 ‘말씀따라’ 코너에 색동교회 새벽기도문 ‘굿모닝 하나님!’을 날마다 올릴 것이다. 색동교회는 성경을 널리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오늘 제목을 ‘모든 성경’이라고 정하였다. 본문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에서 ‘모든 성경’을 뽑았다.

 

라디오에서 정부 교육부가 하는 캠페인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슬로건을 들은 적이 있다. 여기에서 모든은 단순한 전체가 아니라, 모두에게 향한다는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소유격으로서 모든이 아닌, 서로 존중하고 포함하려는 여격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일깨워 준다.

 

마찬가지로 ‘모든 성경’은 모두에게 향하고, 모두를 포함하는, 그리하여 모두에게 골고루 미치는 영향권과 영향력을 의미한다. 우리는 복음이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잘 알고 있다. 모두 가운데 고맙게도 바로 나를 포함한다.

 

1)

 

‘모든 성경’은 성경 66권, 구약 히브리어 40,186개 단어와 신약 그리스어 17,327개 단어를 합한 57,513개 낱말의 종합이다. 낱낱의 단어의 수가 모여 성경을 이루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곧 성경의 능력은 아니다. 성경이 특별한 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6).

 

성경의 특별함에 대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헨리에타 미어즈는 특별한 성경을 가장 쉽게 사람들에게 보급한 여성이다. 그가 쉽게 쓴 <성경핸드북>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다.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에서 우리는 이웃을 발견합니다. 자식은 어머니를 발견하고, 부모는 자식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죄, 인생의 길, 성령을 발견합니다. 성경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성경도 내게 가까이 접근해 옵니다. 그래서 안 보이던 본문이 보입니다. 늘 보던 본문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 보면, 거기에 갈 길이 보입니다. 말씀은 때로 나를 심판합니다. 바로 그 말씀이 나를 용서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해야 할지도 성경에서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광부와 같은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다.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지구상에서 가장 큰 광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가장 소중한 금맥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성경이 내게 가르쳐주는 위대한 가치이다.

 

유대인은 성경의 사람들이다. 유대인 성경을 가리켜 ‘타나크’라고 부른다. 토라(율법), 네비임(예언), 케투빔(거룩한 시가)으로 구성되어있다. 우리는 구약성경이라고 부른다. 유대인에게 성경을 듣고 배우는 일이 일상적이다.

 

유대인 랍비는 ‘기도드릴 때는 짧게, 배울 때는 길게’ 시간을 잡으라고 한다. 왜 그럴까?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는 인간이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드릴 때는 바른 정신과 바른 기분으로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하여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배우고 진리를 추구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시간이다. 성경에서 지식을 존중하고, 지혜를 존중해 온 이유는 바로 성경을 포함하여 모든 배움은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와 똑같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켜 책의 민족이라고 하는 이유다. 바이블은 그리스어 비블리오(Biblio)에서 나온 말로 곧 책이란 뜻이다. 존 웨슬리는 ‘한 책의 사람’이란 별명이 붙어있는데, 여기에서 한 책은 바로 성경이다.

 

2)

 

본문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이다. 디모데는 헬라 출신이나 어려서부터 유대인 신앙교육 속에서 자랐다. 유대인의 전통에서 신앙교육의 주체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교육내용은 성경이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14).

 

믿음의 출발점은 ‘내가 배운 대로, 내가 확신한 그 일에 머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남다른 모범을 기대하게 마련이다. 그 모범의 출처는 바로 성경이다. 본문은 이러한 성경을 삶의 원칙으로 삼으라는 당부를 담고 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

 

신앙의 원칙 ABC를 성경에서 찾으라는 것이다. 신앙교육이든, 경제학이든 모든 교육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가르친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주입이 아니라, 신념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종교에서 신앙이나, 상거래에서 신뢰의 문제는 원칙 중의 원칙이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과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의 원칙은 대단히 중요하다.

 

존 웨슬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개혁하는 무기는 총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라고 주장한다. 사도 바울의 원칙이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5).

 

성경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공감을 주는 것은 예수님의 일관된 말씀과 삶과 행동이다. 그것을 한 마디로 사랑의 율법, 사랑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자기 삶에 확신에 기초한 신념과 소신이 없으니 그때그때 다른 말, 다른 태도, 다른 행동을 한다. 배운 사람들이 최소한 배운 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위기이다. 그리스도인이 최소한 신앙인으로서 모범이 되지 못하면 위기이다.

 

사실 원칙, 원칙 하는데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체계를 형성하는 뼈대와 같다. 율법이 그랬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비난한 것은 그들의 행실이 율법의 원칙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안식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형식논리에 빠져서 하나님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성경은 말한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지하려고 하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완성하시려고 하셨다. 바로 원칙을 회복하심으로써, ‘사랑의 율법’을 이루고자 하셨다. 복음은 이러한 예수님을 배우고, 믿고, 따르게 한다.

 

성경을 배우는 목적이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17).

 

우리는 개신교인이다. 개신교회의 정신은 ‘신앙의 원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바로 ‘신앙의 원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본질적) 믿음보다는 (형식적) 행위가 신앙의 표준이 되고, 하나님의 은총보다는 인간의 노력이 중요하게 된 잘못된 신앙의 모습을 바로 고치려는 데서 출발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이 말했던 신앙의 원칙 중 하나가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이었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만, 그 말씀을 자기 생각 속에, 교회의 판단 속에 가두어 버린다. 자신의 믿음의 성장에 관심을 갖고 교회의 부흥에는 도움을 얻고자 하면서, 정작 인간의 삶과 이 세상의 질서를 고치고 바꾸어내려는 하나님의 말씀은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는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매우 중요한 신앙의 원칙을 들을 수 있다. 그 원칙은 현대 세계의 거짓과 유혹과 불신앙을 낱낱이 일깨워 준다. 그 해독과 속임수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성경이 있는데 다른 가르침을 따라갈 수는 없다. 우리들의 신앙과 생활은 성경의 가르침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한다고 하면서도 오늘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폭력, 차별, 가난, 우상숭배에 대해, 평화를 가로막는 모든 불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가장 흥미로운 발언을 하게 한다. 이 세상이 교회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어떤 권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증언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인다면, 말씀은 우리를 분명히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가 신앙과 생활의 표준으로 삼아 교훈, 책망,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려고 한다면 우리를 신앙의 원칙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보다 귀한 일은 없다.

 

종교개혁자들의 가장 큰 공헌은 바로 성경을 일상의 가까이에 옮겨다 둔 점이다. 그들의 주장은 “성경이 가는 곳만큼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 멈춘다”고 하였다.

 

3)

 

성서주일은 성경을 보급하려는 사명을 촉구하는 주일이다. 대한성서공회(KBS)는 애초에 영국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지원으로 시작했으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성경을 보급하는 공회로 성장하였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시절에 권서인 제도가 있었다. 말 그대로 ‘책을 권하는 사람’인데, 쪽 복음을 들고 다니며 복음도 전하고, 책도 팔았다. 마치 얼레빗과 박하분을 들고 다니던 박물장수와 같았다.

 

기독교장로회를 시작한 김재준 목사가 있다. 그가 아홉 살 때, 어떤 권서인이 아버지를 찾아와 전도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공자의 길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이단사설에 혹할 이유가 없다”고 끝까지 거부하였다. 그러자 그 전도인은 국한문신약성경 한 권을 두고 가면서 “혹시 선생의 마음이 돌려지거나 자손 중에서 믿으려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니 간직해 두십시오”하였다.

 

그리고 15년 세월이 흘렀다. 그때의 일은 아득히 잊혀질 만한 긴 시간이었다. 청년 김재준은 서울 숭동예배당의 부흥회에 참석하던 중 마음에 감동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그는, 그때 그 권서인이 맡기고 간 성경책을 꿀 송이처럼 달게 탐독했다고 한다.

 

김재준 목사는 전도서의 말씀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그 옛날 방랑 전도자는 그 성경을 물 위에 던졌고 먼 후일 도로 받았다”(전 11:1)라고 하였다. 세월의 물 위로 던진 떡이 마침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헛됨이 없었던 것이다.

 

내 친구 박창수 목사는 인천에 있는 선한목자교회 담임인데, 현대판 권서인이다. 그는 ‘낭독을 위한 로마서’ 발간을 시작으로 사도행전, 요한복음, 마가복음, 잠언, 마태복음, 옥중서신 그리고 최근에 누가복음을 펴냈다. 그가 스스로 대한성서공회에 저작권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쪽 복음’을 편집한 것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자기 나름으로 기획한 기념방식이다.

 

보통명사로서 ‘쪽 복음’은 한동안 낱낱의 복음을 단권용으로 제작하여 전도용으로 활용했던 작은 책을 가리킨다. 얼마나 유용했던지, 요즘의 전도용 물티슈나 뻔한 소모품들과 비교할 수 없다. 그때는 성경 자체가 귀한 시절이라 소책자도 소중히 여김을 받았지만, 이젠 성경이 흔하디 흔해져 더 이상 효용성을 평가받지 못한다.

 

책으로 가득한 우리 세상에도 빈틈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수 없는 빈 구석이 있다. 박창수 목사는 성경을 잃어버린 세대를 향해 자비량으로 일하는 21세기 권서인이다.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려는 사람은 누구나 권서인이다. 그리고 더 많은 권서인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의 교회를 개혁하려고 한다면 바로 말씀을 회복하는 일에서부터 쟁기질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우리 교회가 도심 속에서 말씀의 영성을 지닌 열린 교회, 깊은 교회이길 바란다. 비록 수양관은 없어도 사이버 수도원을 만들고, 교육관은 없어도 무엇보다 말씀 공부하는 일을 사랑하고, 1년에 한 번쯤 말씀 잔치를 열어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같은 주제로 말씀의 풍성함을 배우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사는 교회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 정의롭고,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돕고, 사회의 개선과 변화를 위해 힘쓰는, 성경의 원칙과 사랑의 율법대로 사는 교회이다.

 

무엇보다 복음의 원칙을 회복하는 일이다. 모든 성경이 모두의 성경이 되게 하자. 나도 그 속에 포함되고, 사랑하는 이들을 포함 시키자. 그리하여 세상을 ‘모든 아이가 모두의 아이’가 되도록 바꾸어 가야 한다.

 

하나님이 이를 위해 우리와 함께하시고, 거룩한 성탄을 허락하셨다. 그런 믿음으로 풍성한 믿음과 생명을 얻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