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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씀

선한 사람 선한 열매 (2026.6.14/ 성령강림 후 제3주일, 환경선교주일)

작성자송길똥|작성시간26.06.14|조회수46 목록 댓글 0

 

선한 사람 선한 열매

마태복음 12:33-35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와 함께 하시길 빈다.

 

성령강림절기이다. 6월 둘째 주일은 감리교회가 정한 환경선교주일이다. 1년에 하루 환경선교주일을 지키는 것이 오늘만 환경선교와 창조질서에 관심을 갖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설날에 떡국을 먹으면서 나이를 한 살 먹는다는 이치와 같다. 그날 먹는 떡국 한 그릇의 힘으로 1년을 버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1년에 단 하루만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365일 일용할 양식을 먹으면서 하루 씩 나이를 먹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뿐 아니라 일 년 365일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색동(‘새똥’)교회와 같은 녹색교회는 일 년 52주, 365일 내내 환경선교의 날이다.

 

애초에 색동교회 비전 7가지 중 다섯 번째 내용에 잘 담겨 있다. ‘5)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내일의 집’이다. 창립 10주년에 낸 <색동기도>에 있는 기도문 내용이다.

 

“바라기는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은총의 숲을 가꾸게 하소서.

하나님 집의 신실한 관리인으로서, 자연 세계의 피조물을 돌보는 청지기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경건의 나무, 감사의 나무, 평화의 나무, 행복의 나무, 그 나무들로 저마다 자기 동네에서 숲을 이루게 하옵소서.”

 

연말에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린 나무 달력에도 그런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본다. 그런 선한 사람으로서, 선한 나무처럼 선한 열매를 맺는 색동교회와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1)

 

성경은 종종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사기에 나오는 요담 이야기는 나무 이야기로 유명하다. 숲에서 나무들 가운데 왕을 뽑았다. 먼저 왕을 추천하였다. 감람(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에게 차례로 ‘너는 우리 위에 왕이 되라’고 권하였다.

 

그런데 소중한 나무들은 모두 사양하였다. 올리브는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할 기름’을, 무화과는 ‘나의 단 것과 아름다운 열매’를,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소명으로 여겼기에 마다한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세 나무의 입장이 참 겸손하고 진실하다.

 

그런데 가시나무는 우쭐해서 나선다. 그리고 나무들 위에서 복종을 강요하며 군림하려고 들었다.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다면 와서 내 그늘에 파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랄 것이니라”(삿 9“15).

 

그런 가시나무 왕은 남을 해치고, 우리 사회에 악을 끼치는 존재다. 그러니 가시나무만 되지 마라.

 

예수님의 말씀을 보자. 나무 비유의 강조점은 선한 나무를 말씀하시면서 선한 사람과 선한 열매의 의미를 가르치신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선한 사람이 선을 쌓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이 있다. 즉 본질적 속성과 결과적 특성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여기레서 본질적 속성은 좋은 나무이고, 결과적 특성은 좋은 열매이다.

 

이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을 때 과수원에 있는 나무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이 우리 자신을 향해 인생의 목적과 결과에 대해서 말하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교회 마당에 나무를 심었다. 다른 곳에서 자란 나무를 이식(移植)하는 과정이었다. 처음 몇 주간은 바람에 흔들려 비들비들하니, 제대로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가리켜 나무가 ‘주접떤다’고 하였다. 모든 나무는 그런 과정을 거치며 안정되게 뿌리를 내린다.

 

그러므로 ‘주접떤다’는 말은 흉이 아니다. 사실 나무에게 가장 큰 욕은 아마 ‘싹수가 노랗다’일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주접을 떨 수 있다. 그렇다고 싹수가 노란 것은 아니다. 싹이 누렇기에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은 매우 잔인한 비난이다. 가시나무와 같다는 말처럼, 자라나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와 통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싹이 아니라, 오직 열매를 강조하신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33).

 

사과를 맺었으니까 사과나무일까, 사과나무여서 사과를 맺었을까? 정답은 사과나무여서 사과를 맺은 것이다.

 

같은 이치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인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었는가? 사과나무여서 사과를 맺듯,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이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죄의 열매가 크거나 작거나 상관없이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좋은 나무로 자라야 한다. 마치 나무가 자라는데 거름과 물, 햇빛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삶 역시 날마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총 안에 살아야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7, 20).

 

그러기에 나를 들여다볼 때, 과연 나는 좋은 나무인가를 언제나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바른 믿음이 좋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 구원이라는 좋은 열매를 얻으려고 한다면, 바른 믿음이란 목적을 가져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신천지와 통일교처럼 믿음의 목적이 바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만약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듯, 그 나무와 그 열매가 불일치하다면 그것은 거짓 믿음이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34)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서 거짓 선지자와 지금도 종교인의 외식과 위선에 대한 말씀이다. 성경을 보라. 예수님은 선한 척, 거룩한 척, 아름다운 척하는 이중인격에 대해 비판한다.

 

특히 지도자들과 종교인들에 대해서는 일벌백계의 마음으로 비판하신다.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거짓으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겔 22:28)고 말한다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도 그런 위험이 있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길,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행 20:29) 혹은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벧후 2:1)고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판단이 가능한가? 그것은 그 사람들의 말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달콤한 말에 속아서는 안된다. 오직 열매로 판단해야 한다.

 

사람의 본질은, 그 참 모습은 겉모습, 치례, 경력, 미사여구가 아닌 오직 그의 내면을 반영하는 삶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 3:12).

 

성경에서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감람(올리브)나무는 선한 나무를 상징한다. 가시나무와 엉컹퀴는 악한 존재를 상징한다. 흔히 가시나무에 붙어있는 검정 딸기는 포도로, 엉컹퀴의 꽃은 무화과로 보인다고 해서 보기로 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는 것은 착시일 뿐, 진실은 변함이 없다.

 

예수님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판단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좋은 나무가 되지 못하면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길이란 없다. 그냥 그렇게 되는 대로 살아도 개살구든, 개복숭아든, 어떤 모양의 열매야 얻게 될 터이지만 그것이 좋은 열매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지적은 서슴없다. “독사의 자식들아!”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독사의 자식은 누구인가? 물질과 돈을 복음보다 앞에 놓고 믿음을 가르치는 자도 거짓 선지자이다. 복음 외에, 십자가와 부활말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다른 특별한 은혜가 있다고 말하는 자도 거짓 선지자이다.

 

사람이 말과 행동, 즉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불신을 받게 마련이다. 만약 종교인이 신앙의 가르침과 다른 행실을 한다면 이중인격이다. 종교적 허위의식은 신앙과 생활을 분리시키는 위험을 가져온다.

 

거짓 선지자는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가는 길을 가로 막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해관계를 쫓고, 자기의 생각, 사상만을 강요하며, 자신의 명성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자신이 숨겨지기를 원한다.

 

우리들은 이 거짓 선지자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처음에는 방법이 없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은 달콤하기 때문이다. 결국 열매로만 판단이 가능하다.

 

3)

 

그러므로 좋은 나무를 제대로 가꾸어야 한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35).

 

나무 종류나, 값을 따지는 수종의 문제가 아니다. 2012년, 당시 독일 메르켈 총리는 독일통일을 기억하며 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소나무, 너도밤나무, 참나무이다.

 

사실 세 가지 나무는 독일에서 가장 평범하고, 흔하디 흔한 나무들이다. 그런데 이런 보통 나무들을 독일의 대표 나무로 선정한 이유가 있다. 소나무(Kiefer)는 동독을, 너도밤나무(Buche)는 서독을, 참나무(Eiche)는 통일독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가 세 나무를 기념 식수한 장소는 분단 시대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연결하는 돌다리가 있던 곳이다.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나무를 심어 그 아픔의 역사, 회복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것이다.

 

사실 세 나무는 기념 식수할 재목감이 못되는 가장 평범한 나무들이지만, 그럼에도 국민의 손때가 가장 많이 묻고 친숙한 나무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나무 그 자체이다. 모든 나무는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

 

성경은 마치 수목원처럼 온갖 나무를 소개한다. 올리브(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기쁨을 상징한다. 상수리나무, 떨기나무, 종려나무, 백향목나무는 거룩함과 관련되었다. 이 나무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설명하고, 또 거룩함을 찬양하는 예배와 관련된다. 이런 거룩하고, 복된 삶을 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려는 의미는 분명하다. 너희도 세상과 사람들에게 이런 유익한 기쁨과 평화를 주는 나무가 되라는 뜻이다.

 

나 혼자 잘된다고 우리 사회가 건강한 것이 아니다. 더불어 숲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태풍도, 기후 위기도 견딜 수 있다.

 

예수님은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 15:1)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예수라는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어떻게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을 수 있는가? 예수님 안에서는 싹수가 노란 나무도, 주접을 떠는 나무도 결코 망하지 않는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노란싹의 인간은 얼마든지 있고, 인생 주접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연민의 눈은 우리를 언제나 붙잡아 주시고, 그 안에 거하기만 하면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런 은총의 하루하루를 살자. 그 은총의 자양분을 늘 먹고 살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목표로 하자. 그럴 때 좋은 열매를 맺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창조질서에 대한 정교회의 영성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영혼의 자서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한 유언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롭다.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잘 돌보아라. 나무도 옛날에는 인간이었는데 너무 오래 전이라 그런 줄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인간은 기억을 하니 그래서 인간이 아니겠니...”

 

나무가 홀로 있으면, 스스로를 지키기 어렵다. 그래서 나무끼리 서로 어울려 숲을 이룬다. “나무가 곁에 있는 나무에게 말했다. 우리 숲이 되어 지키자”(신영복, <더불어 숲>).

 

나무만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모른다면 그건 사람다움이 아닐 것이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녹색 교회, 녹색 가정, 녹색 그리스도인, 녹색 시민으로 살게 하시길 그리하여 건강하고 평화로운 공동체의 숲을 이루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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