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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씀

뜻밖의 회개 (2018.1.21 / 주현 후 제3주일)

작성자송길똥|작성시간18.01.21|조회수59 목록 댓글 0


뜻밖의 회개

요나 3:1-10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주현 후 세 번째 주일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샬롬샬롬을 나누시기 위해 여러분의 삶과 평창의 겨울을 찾아주시길 바란다.

 

어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스위스 로잔에서 12시간 동안 남북 올림픽 참가 회의를 열고 늦은 밤에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동계와 하계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남북 단일팀이 성사되었다고 하였다. 남북은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며, 국가는 아리랑을 부른다. 북한은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비롯해 5개 종목에 참가한다.

 

참 반가운 일이다. IOC는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장벽없이 존중하고 대화하고 이해하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라고 밝혔다. 모처럼 남과 북 모든 사람들이 한반도의 화해와 하나됨을 염원하며 응원하길 바란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큰 교육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온 세계 사람들이 다 몰려오는 평창올림픽에 혹시 색동 가족 중에 겨울 방학에 자녀를 데리고 평창을 방문하시는 분이 있다면, 평창 문화마을에서 숙소를 제공할 수 있다. 비록 인터넷은 없지만, 따듯한 방과 온수, 편리한 부엌이 제공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마치 전쟁이 곧 일어날 일촉즉발의 위기국가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젠 평화의 진앙지가 되길 소원한다. 이런 작은 뜻밖의 소식들이 계속 이어져, 커다란 뜻밖의 소식으로 연결되길 바란다.

 

1)

 

오늘 말씀은 세계 만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준다. 4장에 불과한 짧은 예언서 요나가 전하는 메시지는 뜻밖의 소식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선지자인데,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자 그는 불순종하여 바다로 도망쳤다. 결국 풍랑의 원인제공자로 뽑혀 바다에 던져졌고,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간 머물다 겨우 살아났다. 그래서 겨우 마지못해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꿈같은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인간의 불신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행하신다는 것이다.

 

요나 이야기가 쓰인 때는 주전 5-4세기인데, 그 당시 유다 민족에게는 이방 민족들과 관계를 멀리하고, 배척하려는 분위기가 만연하였다. 반면에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신앙에 귀의 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요나의 태도는 전형적인 유다 사람의 편견을 담고 있다.

 

이러한 역설적 상황에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만백성과 모든 사람들을 구원에 초대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예언서 요나에 담겨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않고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이방인이든, 적대국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럼에도 이를 거부한 선지자 요나는 불순종하였고, 동쪽 니느웨와 정반대 방향인 서쪽 다시스(스페인)로 도망쳤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어코 당신의 계획대로 이끄신다.

 

요나 이야기를 재구성해보자.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1).

 

두 번 째로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도록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도망쳤던 요나에게 다시 순종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애초에 불순종하다가 호되게 당한 요나는 이번에는 순순히 순종한다. 그러나 지극히 소극적이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4).

 

니느웨는 큰 성읍이다. 걸어서 사흘 길이 걸리는 만만찮은 규모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겨우 딱 하루 동안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며 다녔다. 사십일 후에 일어날 심판을 선고하였다.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의 거리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지만, 이 성읍이 회개할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뜻밖의 회개가 일어난 것이다. 요나는 건성으로 경고했는데, 니느웨 사람들은 위로 왕으로부터 아래로 백성과 짐승에 이르기까지 회개하였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5).

 

임금이 앞장섰고, 심지어 짐승까지도 회개의 모양을 내게 하였다. 왕은 베옷을 입고, ‘위에 앉았다. 성경에서 재는 인생의 무상함을 상징한다. 죽음의 선고 앞에 선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그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재를 뒤집어쓰는 회개이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8).

 

니느웨 사람들은 즉각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또 악한 길에서 떠났다. 그들은 ‘40이란 심판의 유예기간을 회개의 적극적 기회로 삼았다. 하나님의 남겨두신 희망의 여지를 자신들이 살아날 기회로 깨달았던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에 응답하셨다. 악한 길에서 돌이 킨 니느웨 성읍 위에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다.

 

2)

 

요나서에서 말하려는 뜻밖의 회개는 하나님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심하시다. 당시 선지자 요나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자신의 만을 고집한 장본인이었다. 그들은 이방나라 니느웨의 구원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적대적이었다.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일지라도, 제 이해관계와 다르니 시늉하는 척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 죽을 뻔한 끝에, 두 번째 부르심을 듣고 나서야 요나는 건성건성 순종할 뿐이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들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각별한 관심을 느끼기 힘들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의가 아닌 자기 죄를 고백하는 사람을 눈 여겨 보신다. 무엇보다 사람이 잘못된 길에서 돌아올 때,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편견이나 기준과 다르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품어 주신다. 죄인의 회개를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그랬다. 자기만 의롭다고 고집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무슨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증거, 곧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불순한 의도를 파악하시고, ‘요나의 표적에 대해 말씀하신다(12:38-41). 사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요나와 같은 인물들이었다. 유다교의 지도자로 굴었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뭉갤 그런 위인들이다. 그들은 불순종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이다.

 

요나가 유명한 것은 그의 순종이 아닌 불순종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해야할 선지자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이 제 마음에 들지 않자 하나님을 피해 반대방향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그 결과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뱃속에서 보내야 했기에 아주 유명해졌다.

 

예수님은 자기의 편견과 고집을 내세워 요나처럼 행동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12:39).

 

예수님은 불순종하는 그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그들은 겉으로는 종교적으로 경건한 척 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척 하지만,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사람들일 뿐이다. 예수님이 예를 들어 설명하신 요나의 표적에 대해 들을 귀가 있었다면,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는 자비와 죄인들을 향해 사랑을 전하시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예언서 요나를 보라.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킨 까닭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용케 살아난 요나의 무용담 따위를 듣고 나서가 아니다. 그 일은 니느웨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기적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과 만나려는 가난한 마음이 삶을 변화시킨다.

 

3)

 

하나님은 불순종의 시대에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악하고 패역한 세대 가운데 진지하게 응답하려는 의인을 구하신다.

 

본문은 선지자 요나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없다. 실은 선지자 요나는 모범적인 하나님의 사람이기보다 약점과 흠이 많은 사람이었다. 요나란 이름은 비둘기란 뜻인데, 본디 단순하고 겁 많은 성품을 엿보게 한다.

 

예언서 요나는 니느웨 백성의 뜻밖의 회개를 다루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요나로 대표되는 자칭 의인들의 뜻밖의 회개를 기대한다. 요나가 그랬다. 그는 자신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무성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그늘을 만들어준 박넝쿨 하나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마침내 회개한다.

 

선지자 요나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4:2)을 고백한다. 율법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배웠지만, 그러나 실제로 이방 나라 니느웨 성 백성이 구원받는 일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키지 않았다. 요나의 뼛속까지 배어있는 선민의식과 보수주의로는 하나님의 관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언서 요나는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선포한다. 그러러면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인식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야 한다. 복음은 바로 죄인과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선포한다.

 

우리 민족은 지난 73년 동안 남과 북으로 분단된 채 적대적으로 살아왔다. 잠시 화해와 교류 협력의 시기도 있었지만, 역사를 증오의 시대로 되돌리는 일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였다. 남과 북은 형제자매였으나 오랫동안 웬수만도 못한 사이였다. 그 불신의 벽이 너무 높고, 미움의 담이 길다. 상처가 깊은 이유가 분명히 있다. 또 우리의 편견과 고집은 얼마나 무서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 남과 북의 화해는 불가피하다. 우리 세대와 후손들이 평화롭게 살려면 손을 잡는 일은 필연적이다. 게다가 온 세상 나라들이 모여 친선을 도모하는 올림픽이 이 땅에서 열리는 마당에, 만약 뜻밖의 기회마저 훼방하려고 한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비난을 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지 못한다면 이미 마음에서 불순종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불순종하고 거부하더라도,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이라는 주님의 계획을 성취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 뜻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평화를 거부하는 편견과 불순종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뜻밖의 회개이다. 화해의 사건을 훼방하고, 하나님의 샬롬을 거절했던 사람은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편견과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그들뿐 아니라 나 자신이기도 하다. 내가 주장해온 의는 얼마나 독선적인가?

 

뜻밖의 회개를 믿지 못하고, 건성건성 평화의 복음을 전하려던 게으른 종은 누구인가? 주저주저 하며 형제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장벽 없이 존중하고 대화하고 이해하는그런 올림픽 정신조차 용납하는데, 이를 외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이다.

 

회개는 그들 이전에 내가 할 몫이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10).

 

하나님은 뜻밖의 회개를 기대하신다. 회개는 심판의 경고 때문에 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작은 친절과 공감과 따듯한 이해와 손잡아 주는 아량 때문에 뜻밖의 회개가 가능하다. 나를 용서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지금 우리 민족은 그 은혜와 사랑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화해와 용서의 은총이 우리 자신과 이 민족 가운데 오롯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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