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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씀

주의 말씀으로 서라 (2019.1.27 / 주현 후 제3주일)

작성자송길똥|작성시간19.01.27|조회수114 목록 댓글 0


주의 말씀으로 서라

느헤미야 8:1-3, 5-6, 8-10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주현 후 셋째 주일이다. 주현절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정체성이 빛처럼 드러난 절기이다. 바로 성탄하신 그가 온 세상의 그리스도요, 나의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절기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

 

성경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는 유일한 책이다. 그 영적권위는 구약시대는 물론 지난 2천 년의 신약시대동안 훼손되지 않았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알아 간다. 여기에 말씀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톨레레게 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참하는 일이다. 주의 말씀으로 굳게 서려는 생활신앙운동이다. 색동까페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늘고 있어 반갑다. 코너 속의 코너도 있고, 자신의 말을 건네는 이들도 있다. 댓글을 달지 않더라도 나 홀로 묵상할 수 있다. 생활습관이 되고, 일상의 말씀훈련이 되기를 바란다.

 

올해는 가족 톨레레게를 하면서 내가 반말 투로 쓰는데, 이해하기 바란다. 우리 집 두 아들에게 말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실감나게 반말 투로 쓰고 있다. 바라기는 가족과 친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전달하여 함께 주의 말씀으로 바로 서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1)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한 국가적인 이벤트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기회는 사람들의 영적 목마름에서, 흔들리는 삶을 바로 세우려는 마음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느헤미야 전반부가 제도 개혁이라면, 후반부는 영적 개혁을 다룬다. 무엇보다 계기가 필요하였다. 유대교 종교력에서 새해는 일곱째 달에 시작되는데, 이 날은 모든 날들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

 

일곱째 달 초하루는 새해맞이이고, 일곱째 달 제10일은 대속죄일이며, 일곱째 달 보름부터 8일 동안은 3대 감사절기인 초막절이 계속된다. 새해는 큰 명절이다. 새해를 알리는 나팔을 불기 때문에 나팔절이라고 부른다.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9, 10)이었다.

 

종교력의 관점에서 보면 안식일이 한 주간의 일곱째 날이듯, 새해는 일곱째 달에 시작한다. 새해맞이를 하는 첫 날은 어떤 노동도 하지 않고 안식한다. 그리고 제10일은 대제사장이 모든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의식을 치루었다. 대제사장은 1년 중 단 하루, 이 날에만 지성소에 들어 갈 수 있다. 그리고 보름부터 8일 동안 국민적 행사로 초막절을 지킨다. 이런 의미에서 첫 달은 거룩하다.

 

본문은 새해 첫 날의 풍경을 다루고 있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2).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새해 첫날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이날을 욤 하라트 올람이라 부르는데 세상의 생일이란 뜻이다. 이날을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는 날로 지킨다.

 

또한 이 날은 로쉬 하시아나’, 곧 심판의 날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사람 간에 화해하는 날이다. 이렇게 인사한다. “당신의 이름이 하나님이 펼치신 생명책에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이렇듯 시간은 하나의 매듭 역할을 한다. 그 시간의 마디를 절기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곱 절기를 통해 일상적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신비를 담아내려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절기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 절기를 지킬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먼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또는 절기를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사람이다. 포로로 잡혀 갔거나, 오랜 나그네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근심이 클까.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절기를 지킨다. 새해 첫 날에 먼저 율법을 낭독하였고, 그 말씀을 듣고 경배하고 기쁨을 나누었으며, 말씀에 순종하여 잊고 지냈던 절기인 초막절을 범민족적으로 준수하였다. 모두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고, 언약백성으로서 삶을 고백하는 일이다.

 

내가 하나님의 시간을 참되게 지키고 거룩한 날들을 내 삶에서 회복하는 것은 내 신앙생활의 정상화를 의미한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서려고 다짐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생활습관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바꾸어 내는 일이다.

 

올해 나는 내 영적 개혁을 위해 어떤 결심을 하였는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새로운 삶의 태도를 결심하였는가? 그것이 새해를 맞는 의미이다. 아직 1월이고, 주현절기이다. 선한 의지를 갖고 도전하라.

 

무엇보다 말씀 회복은 얼마나 중요한가?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이를 강조한다.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2:5).

 

하나님의 자녀라면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마음을 돌이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12:6, 새 번역).

 

2)

 

새해 첫날에 예루살렘에 정착한 모든 백성은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나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모인 것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에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백성들은 제사장이요, 율법학자인 에스라에게 율법 책을 가져오기를 청하였다. 그 시대에 느헤미야가 정치지도자라면, 에스라는 영적 지도자였다.

 

백성들이 원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앞장서 신앙갱신과 언약의 회복을 요구하고 나섰다. 마침내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 책을 갖고 광장의 무대 위에 섰다. 본문에 따르면 알아들을 만한 귀를 가진 남자와 여자들이 모두 참여했다고 전한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2).

 

어마어마한 규모의 낭독행사가 펼쳐졌다. 마치 범국민적 기념식으로서 율법 책을 낭독하는 이벤트가 치뤄진 것이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무려 6시간 동안 꼬박 에스라가 낭독하고 백성은 경청하였다.

 

오늘 읽은 본문 사이사이에 여러 사람의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그 백성의 지도자들은 낭독하는 에스라의 좌편과 우편에서 낭독한 말씀을 통역하고, 해석하였다. 백성 중의 지혜자들과 레위 사람이 에스라가 낭독한 율법 책을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쉽게 전달하니, 그날 백성 모두가 감동을 받았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상해 보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은 얼마나 장엄한가? 에스라가 율법 책을 펼 때에 모두가 일어섰다. 성경에 대한 경외감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이고, 겸손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이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6).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큰 은혜를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자신의 평소 생활 사이에 너무나 커다란 간격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탄식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죄와 불순종을 참회하면서 울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8-9).

 

이 때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의 목적은 너희에게 슬픔을 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라며 진정시켰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10).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느헤미야란 이름의 뜻이 하나님의 위로이다. 말씀을 깨닫게 하는 지도자,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는 지도자 덕분에 모든 백성이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백성에게 위로와 새 힘을 주었다. 가장 기뻐해야 할 새 날임에도 그들은 울었다. 가장 좋을 때는 너무 기뻐서 우는 법이다.

 

정치지도자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 것처럼, 영적지도자 에스라는 무너진 백성의 마음을 회복하였다. 백성이 다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였다.

 

백성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기뻐하였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다짐하였다. 그 결심으로 일곱째 달에 초막절을 지킨 것이다. 초막절은 하나님의 구원사건인 출애굽과 광야시절을 상기하는 절기이다. 에스라는 초막절 7일 동안 첫날부터 끝 날까지날마다 율법책을 낭독하였고, 여덟째 날에 성회를 열었다(18).

 

3)

 

성경은 시대 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이를 가리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성경 안의 이상한 신세계라고 불렀다. 바르트는 우리가 성경에 접근할 때면, 평소 내가 지닌 모든 영적, 정신적 도구들이 그 이상한 신세계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서 결국에는 성경도, 그 자신의 세계도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주후 386년 어거스틴은 톨레레게 톨레레게란 음성을 통해 그의 삶이 바뀌었고, 1517년 마틴 루터가 말씀에 사로잡혀 그 시대를 개혁했으며, 1934년 독일의 고백교회가 말씀 위에 서서 저항하였고, 1968년 콜롬비아 메델린에서 가톨릭 주교들이 가난한 민중 속에서 복음을 새롭게 발견하였다. 문익환 목사는 내가 성경을 제대로 읽은 때는 수형생활을 할 때였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렇다. 내가 읽는 성경은 어제의 그 성경이 아니라, 오늘 내게 이상한 신세계로 다가온다. 작년과 다른, 어제와 다른, 지금 여기에 선 나를 향해 성경은 항상 뜻밖의 소식’(unexpected news)을 전해준다. 그러니 성경을 두어 차례 읽어 봤다고 결코 교만할 수 없다. 평생 성경과 씨름한 학자들일수록, 평생 말씀을 전하는 목사일수록 성경의 신비와 비밀 앞에서,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 앞에서 그 경외감은 더욱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할 일이다. 그러기에 나는 날마다 그 시대의 눈으로, 오늘 정직한 믿음과 마음의 눈으로 성경을 읽고, 그 사건에 참여할 수 있다. 간절한 사모함과 절실함이 필요한 이유이다.

 

개화기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정연희의 소설 <양화진>이 있다. 소설 중에 조선에 온 젊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아직 본격적인 선교를 못하고, 광혜원에서 스크랜턴을 도와 환자를 돌보는 일을 거든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감리교 여성선교사 스크랜턴과 대화에서 조선 사람들의 인습의 벽이 얼마나 높고 두터운지를 듣는다.

 

언더우드는 스크랜턴과 대화를 통해 근심이 깊어졌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온 뒤 성경을 읽으며 묵상했다. 이러한 언더우드의 초기 선교에 바탕을 둔 기도문이 전해진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는 땅에...

조선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아멘.

 

예루살렘 수문 광장에서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듣다가, 묵상하다가 그 은혜 때문에, 내 죄의 막막함 때문에,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울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스탠리 존슨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성경을 읽을 때 내 처지에 대해 말하는 구절을 만날 때마다 퀘이커 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그 구절에 입을 맞추었다. 그게 내 습관이 되었다.”

 

슬픔도 고통도 모르고 사는 것이 복이 아니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복이다. ‘하늘을 겨냥하면 땅은 덤이다란 말이 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땅에서 형통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에 참여하는 우리를 향해 말한다. 주의 말씀으로 굳게 서라! 영원하신 말씀 가운데 참여하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10).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우리가 새로운 삶을 결단하며, 베풀어 주시는 은총의 능력 가운데 살게 하시길 나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간절히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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