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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동 이야기

톨레랑스(Tolérance/Toleranz/Toleration)

작성자싱그런바람|작성시간26.06.23|조회수34 목록 댓글 0

심광섭 목사님께서 페이스북에 올리신 글을 공유합니다.

*톨레랑스(Tolérance/Toleranz/Toleration)

지난 주일 교회에서 고전 희곡 낭독 모임을 시작했다.
체코에서 공부한 홍성헌 님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는 레싱의 유명한 작품 《현자 나탄》을 손수 재미있게 각색하여 제공했다.
등장인물이 10명인데, 남녀 함께 분위기와 내용을 살려 대본을 낭독하는 것만으로도 흥미 있는 일이었다. 모두가 나름의 기량을 뽐냈고, 나는 이슬람 제국의 술탄인 살라딘 役을 맡았다.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유명한 현자 나탄의 ‘반지 비유’를 통해 진짜 참된 종교란 교리와 가르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과 사랑의 실천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가 가르치는 진리의 ‘알짜’는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와 이웃 종교인에 대한 관용과 사랑에 있음을 감동적으로 짠하게 역설하는 이야기다. 참된 종교의 기준은 교리나 제도가 아니라 인류애와 실천적 사랑을 보여주는 것임을 주장한다. 모두가 설득된다.

낭송이 끝나고 대화 시간이 이어졌고 모두 두어 시간 이상, 교회 안에서 흥미와 색다른 의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계속 하기로 했다. 다음 7월에는 계절에 맞춰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낭독하기로 했다.

독일의 레싱에 해당하는 인물이 프랑스의 볼테르와 영국의 존 로크이다.
관용을 피력한 볼테르의 대표적인 저서는 『관용론』 (Treatise on Tolerance, 1763년)이고 존 로크는 《관용에 관한 편지 (A Letter Concerning Toleration)》(1689)이다. 둘 다 레싱의 현자 나탄(1799년)보다 100년 이상 앞섰다.

존 로크의 관용론과 경험은 존 웨슬리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 시절부터 존 로크의 《인간 지성론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과 《관용에 관한 편지》를 탐독했고, 인간 인식이 가진 한계를 명확히 인지했다. 이것이 설교에 두 가지 방식으로 투영된다. 열왕기하 10:15절을 본문으로 한 웨슬리의 설교 보편적(일치의) 정신(Catholic Spirit, 1740/49년, 50년)에 잘 나타나 있다. 참 많이도 읽었던 설교이다.

하나는 인간 지식의 불완전성과 '의견(Opinion)'의 분리이다. 로크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신의 뜻이나 우주의 진리를 완벽하게 확증할 수 없다고 보았다. 웨슬리는 이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기독교의 본질적인 핵심(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제외한 교단별 교리나 예배 형태(유아 세례관, 예정론 등)를 '의견(Opinion)' 혹은 '지엽적인 문제'로 규정한다. 인간은 누구나 착각하고 실수할 수 있으므로(로크적 불완전성), 내가 가진 신학적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독단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은 신앙의 자율성과 강제 불가능성이다. 로크가 "칼과 폭력으로는 인간의 내면적 확신을 바꿀 수 없다"고 한 것처럼, 웨슬리 역시 설교에서 "나는 당신이 내 의견을 따르기를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생각이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시각이나 청각을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본인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서로의 생각을 억지로 뜯어고치려 하지 말고, 신앙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손을 잡아야(연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관용은 무조건적인 방임이 아니다 자칫 관용의 역설에 빠지기 쉽다. 웨슬리는 로크의 철학을 수용했지만, 철저한 복음주의 신학자였다. 따라서 그는 이 설교에서 모든 사상을 다 좋다고 인정해 버리는 '회의주의'나 '종교적 방임주의(Latitudinarianism)'는 "지옥의 자식"이라 부르며 엄격히 경계했다. 본질적인 복음(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사랑) 위에는 굳건히 서되, 그 외의 신학적 방법론과 교리적 차이에 대해서는 로크식의 '이성적 겸손과 관용'을 발휘하여 형제 자매로 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설교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18세기에 살았던 웨슬리의 정신은 16세기의 루터나 칼뱅과는 차이가 난다. 루터와 칼뱅이 살았던 16세기는 중세 후기 가톨릭에 대하여 복음의 진리를 천명하고 교회의 참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후기(16세기 중엽부터)에는 각자 수립한 교단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고백주의‘와 이어 정통주의의 시대'가 열린다. 반면, 웨슬리가 살았던 18세기는 존 로크로 대변되는 '계몽주의와 합리적 관용의 시대'였기 때문에 이들의 태도에는 심오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루터와 칼뱅에게는 중세 후기의 정신이 남아 있다면 존 웨슬리에게는 18세기 영국의 초기 산업사회의 새로운 사회적 분위기와 성경과 전통과 더불어 이성과 경험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보편적(일치의) 정신(Catholic Spirit)을 설교하는 존 웨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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