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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길똥 칼럼

발로 꿈꾸는 평화 (2026.6.21)

작성자송길똥|작성시간26.06.21|조회수33 목록 댓글 0

 

#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발로 꿈꾸는 평화

 

6월은 평화의 달이다. 전쟁의 반대를 평화라고 한다면, ‘평화의 달 6월’은 역설(逆說)적이다. 다행히 이란과 미국 사이 종전을 위한 60일간 휴전에 돌입하고,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분쟁에도 국제사회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평화는 자주 말로, 각각 주장으로, 기도와 소원으로 늘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냥 찾아오는 법은 없다.

 

‘6월 평화의 달’은 우리 민족 남과 북에도 반어(反語)적이다. 현대사에서 가장 커다란 비극이 6.25 한국전쟁이라면, 그 상흔과 상처는 지난 80년 동안 분단과 함께 지속되어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당위적 수사(修辭)로만 그칠 뿐, 남과 북은 서로를 반사하는 거울처럼 책임과 주장을 떠넘기는 데 익숙하다. 나라 안팎에서 평화는 그저 말뿐인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불과할까?

 

이런저런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선언하고 선포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비록 빈손의 기도와 공염불에 불과할지라도 평화 없이 생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가장 큰 이익은 전쟁 없는 상태로 서로 공존과 공생, 동반과 동행을 누리는 일이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는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하였다.

 

최근 세계사에서 군사적 행동이 배제된 평화 모델이 만들어진 적이 있었다. 소련 내부에서 시작한 균열과 지각변동은 결국 1991년 12월, 연방의 해체와 각 공화국의 독립으로 귀결되었다. 제2차 대전 이후 동과 서, 양대 세력으로 나뉜 냉전 체제가 마침내 무너진 것이다. 그때 자주 들었던 말이 ‘콘뻬르치야’였다. ‘군사무기의 전환(轉換)’인데 탱크를 만들던 공장이 트랙터를 만들고, 군용 차량이 제철소 고철로 재활용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전쟁산업의 대 전환은 마치 이사야의 예언을 연상하게 한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사 2:4). 당시 유럽 뿐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평화의 진전이 있었다. 1990년대와 함께 열린 북방정책의 전개 과정에 따라 UN남북동시가입(1991.9.17.),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1991.12.13.)는 희망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그리고 1998년 11월 18일에는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다. ‘현대금강호’가 동해항을 출발해 장전항으로 향하면서 분단 바닷길이 열렸고, 2003년 9월엔 육로관광이 가능해졌다. 10년간 계속된 금강산관광으로 무려 195만 명이 북녘땅을 여행하였다. 2003년 6월 30일, 개성특구 착공식과 함께 개성공단도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2016년 2월 10일,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하루아침에 개성공단을 폐쇄하기까지 남과 북은 늘 평화의 지근거리를 왕래하였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은 얼마나 꿈같은 사건이었던가? 지금은 희미한 옛그림자로 기억할 뿐이지만, 엄연히 이 땅에서 현실이 된 옛 선지자의 환상이었다. 비록 콘뻬르치야의 현장이었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 전쟁이 벌어지고, 평화를 노래하던 한반도는 더 이상 ‘우리의 소원’을 부르지 않는다. 과연 북의 핵무기와 남의 K-방산이 자신만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주간(6.15-17) 열린 감리교 평화순례는 10여 명이 함께한 작은 발걸음이었지만, 다시 꿈을 꾸고 소망을 다지는 행진이었다. 강화 교동도 평화통일의집에서 출발하여 파주 임진각에 이르는 길은 철책선과 아스팔트, 등산로와 논둑길 그리고 아파트 숲을 잇는 일상의 공간이었다. 일용할 평화는 오늘의 걸음으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걷다 보면 길이 넓어지고, 단단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조금씩 경계의 끝으로 나아간다.

 

평화순례에 나서며 걷기도 할 때 신던 등산화를 꺼냈다. 밑창을 두 번 수선할 만큼 낡은 신발을 고집한 이유는 개성공단 제품이기 때문이다. 폐쇄 다음 날(2016.2.11.) 안국동 개성공단상회로 달려가 구입한 것이다. 무려 10년이 지나도록 벗지 못한다. 눈앞의 현상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발로는 역사의 진보(進步)를 믿을 만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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