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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풍경그리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63로 50 (수정)

작성자미키|작성시간26.06.08|조회수15 목록 댓글 0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63로 50

                                   

                                        오자키미키

 

 1)나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63로 50의 ‘흙’이다. 옛날 한강이 흐르고 나무와 풀이 함께 있어서 폭신폭신했다. 지렁이는 매일 꿈틀꿈틀 춤을 췄다. 미끈거릴 때마다 간지러워서 까르르 웃어버렸다. 눈 없는 지렁이도 초승달 입 모양을 지으며 웃어줬다. 두더지는 손발을 바쁘게 움직이며 터널을 만들었다. 두더지가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뻥 뚫린 구멍을 만든 덕분에 맑은 공기를 듬뿍 마실 수 있었다. 고소하고 달콤했다.

  2) 비가 내릴 때도 있었다. 빗물은 작은 돌멩이에 쏘오옥 숨어, 눈에도 보이지 않은 조그만 친구를 지나 내게로 스며들었다. 빗물은 새콤하고 짜릿했다. 햇빛이 두더지 구멍에서 솟아 내려 눈부신 날도 찾아왔다. 흠뻑 젖었는데 서서히 마르기 시작했다. 목말라하는 나무와 풀들은 아기가 엄마 젖을 쪽쪽 먹는 듯, 뿌리로 달콤한 물을 빨았다. 눈 감고 귀를 기울이면 주르륵 흐르는 소리, 사람들의 흥얼거리는 소리, 귀뚜라미 속삭임조차도 멀리서 느껴졌다. 동물들은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해줬다. 귀를 쫑긋 기울이다가도, 자장가가 되어 스르르 잠이 들었다. 

  3)그러던 어느 날, 나무와 풀의 향기가 나지 않게 되었다. 두더지 구멍에서 희미하게 들어온 햇살, 맑은 공기와 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하얀 뿌리들도 끝에서부터 점점 까맣게 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어두움이 찾아와 나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햇살보다 훨씬 찌글찌글 뜨거웠다. 찐득찐득하다가 딱 굳어버렸다

 무겁게 다가온 냄새는 몸 전체를 아프게 만들었다. 얼마 후 딱딱한 뭔가가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못 느낀 강한 충격이었다. 마음을 뚫릴 듯, 큰 구멍을 팠다. 어느새 회색으로 된 딱딱하고 길쭉한 것이 생겼다. 매일 길쭉한 뭔가가 나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요란한 소리와 흔들림 때문에 잠잘 수가 없었고, 뻐근했다.

  4)맑은 향기를 가진 나무와 연초록 풀의 뿌리가 그리웠다. 그런데 갑자기 길쭉하고 차가운 뭔가가 내 몸을 수없이 질었다. 늘 곁에 있던 자그만 친구들도 모두 허둥지둥 도망가버렸다. 어디에 숨은 거지.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나를 만나러 두더지가 간신히 와주었다. 내가 있는 자리는 구름이 지나다닐 만큼 높은 덩어리가 있고 어떨 때는 해님만큼 반짝반짝할 때도 있는 곳이라고 해줬다. 두더지는 울음을 참으면서 이제 함께 있지 못한다고 했다. 밖에도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에 언제 밟힐지 몰라,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 두더지와 만남은 순식간이었지만 왠지 길게 느껴졌다. 헤어질 때 좁쌀 같은 눈에서 툭툭 떨어진 두더지의 눈물은 나를 살짝 적셨다.

  5)며칠 전부터 몸이 마르기 시작했다. 날카롭고 차가운 것들이 내게 붙기 시작했다. 욱신거렸다. 이제 딱딱해지고 회색으로 굳어버리는 건가. 생각에 잠겨, 잠시 눈을 감았다. 순간 잠들어버렸다. 예전에 듬뿍 마셨던 맑은 공기와 고소한 향기가 콧속까지 찾아왔다. 어디선가 한결같이 흐르는 물소리, 사람들의 따뜻한 목소리, 조용히 노래하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새콤한 빗물도 내려와,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동물 친구들의 흥겨운 이야기와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멀리서 요란한 흔들림과 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정신을 차리고 얼른 깨어났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아주 낯설었다. 내 꿈속에는 아직도 맑은 향기와 그리운 소리, 친구들과의 기억이 고요히 숨 쉬고 있다. 아주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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