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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풍경그리기

그녀의 크록스

작성자박옥매|작성시간26.06.15|조회수46 목록 댓글 0

그녀의 크록스

 

                                                                                                                                                                   

박옥매

 

 

1) 그녀의 크록스는 마침내 800km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다.

순례길의 태양은 때로 가혹했다. 기온은 40도를 훌쩍 넘었고, 발아래 대지는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오래 걷다 보면 발바닥에 불이 붙은 듯 화끈거렸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마저 뜨거운 숨결처럼 느껴졌다. 나는 물집을 막기 위해 단단히 무장했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그 안에 발가락 양말까지 겹쳐 신었다. 조금이라도 발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언제나 맨발에 크록스 한 켤레가 전부였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얇고 가벼운 신발로 어떻게 수백 킬로미터의 순례길을 걸을 수 있을까. 돌길도, 흙길도,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도 모두 견뎌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주가 지나도 그녀의 걸음은 변함없이 가벼웠다. 그리고 5주가 흐르는 동안에도 그녀의 발에는 물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길을 지나오며 지쳐 가는 것은 내 발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순례길은 얼마나 단단히 갖추었는가보다 어떻게 걷고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비에 젖고 햇볕에 바래고 먼지를 뒤집어쓴 크록스는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신발은 묵묵히 길을 견뎌냈고, 마침내 800km의 시간을 함께 완주했다. 어쩌면 순례길을 완주한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말없이 곁을 지키며 한 걸음 한 걸음을 함께 내디딘 크록스 또한 또 하나의 순례자였는지 모른다.

 

2)포도밭과 밀밭은 지평선 끝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그 길을 걷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늘 한 점 없는 길 위로 태양은 쉼 없이 내리쬐었고, 순례자들은 온몸으로 그 뜨거움을 견뎌 내야 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잠시 쉬는 시간에 그녀는 크록스조차 벗지 못한 채 짚더미 위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어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 모습마저 웃음이 나올 만큼 지쳐 보였다. 다시 길 위에 섰다. 밀밭 사이로 난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세 시간쯤 걸었을까. 땀은 이미 옷을 적셨고,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때 마침 숲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서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누군가 살며시 등을 토닥이며 "수고했다"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 바람 하나만으로도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바로 그때, 앞서가던 그녀의 목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언니, 빨리 와요! 여기 수돗물이 나와요!”

반가운 소식에 걸음을 재촉해 달려갔다. 정말이었다.

수도꼭지에서는 맑은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있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갑고 고마운 풍경이었다. 그녀는 이미 수돗물 아래에 발을 내밀고 있었다. 먼지와 땀으로 얼룩졌던 발이 시원한 물을 만나자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흙먼지로 누렇게 변했던 크록스도 물줄기 아래에서 본래의 색을 되찾아 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신발 끈을 풀었다. 그리고 두꺼운 양말을 벗고, 그 안에 신었던 발가락 양말까지 하나씩 벗어냈다. 겹겹이 감싸 두었던 발이 드러나자 비로소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았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시원함은 단순한 물의 감촉이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견뎌 온 시간에 대한 작은 위로이자 보상이었다. 그녀는 이미 맨발과 크록스로 그 시원함을 온전히 누리고 있었고, 나는 여러 겹의 양말을 벗어낸 뒤에야 그 자유를 따라갈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차가운 물줄기와 숲을 스치는 바람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처럼 느껴졌다. 카미노의 기쁨은 거창한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오곤 했다.

포플러나무 숲길의 그늘을 지나 오후 1, 마침내 로고로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이날 걸은 거리는 21km, 걸음 수로는 4만 보가 넘었다. 뜨겁게 달궈진 대지 위를 걸어온 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당시 기온은 40. 하지만 알베르게 어디에도 에어컨은 없었고, 선풍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24시간 냉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태도였다. 누구 하나 더위에 대해 불평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뜨거운 햇볕도, 후끈한 공기도 그저 여름의 일부인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여유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저녁 6시가 되자 마을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성당 광장에서는 소몰이 축제가 열렸다. 빨강과 흰색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광장으로 모여들었고, 광장은 금세 웃음과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긴장감이 흐르던 순간,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소 한 마리가 거침없이 광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소를 유인했고, 소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질주했다. 광장 안은 순식간에 열기로 들끓었다. 사람들의 함성, 소의 거친 숨소리,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발걸음이 뒤섞여 축제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40도를 넘나드는 더위도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오히려 그 뜨거움마저 축제의 일부처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뜨거운 공기가 온몸을 감싸자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마침, 소가 잠시 광장을 비운 틈을 타 중앙에 있는 수도꼭지로 달려갔다. 차가운 물에 손수건을 적신 뒤 서둘러 울타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여기저기서 외침이 들려왔다.

위험해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먼지로 얼룩진 크록스를 신고 있던 그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크록스 바닥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내며 다가온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나무랐다.

정말 위험했어요.”

그 꾸중 속에는 짜증보다 걱정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에도 광장은 여전히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삶을 축제로 바꾸어 버리는 사람들, 두려움보다 열정을 앞세우는 사람들. 그날 나는 소몰이 축제를 통해 스페인을 조금 더 깊이 만났다. 강렬한 햇살처럼 뜨겁고, 함성처럼 자유롭고, 붉은 옷처럼 정열적인 나라. 그들의 열기와 웃음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 새벽에도 마을에서는 계속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어제 소몰이 행사 후 뒤풀이가 계속되는 듯했다. 깨끗한 침상도 보이는 걸 보면 순례객들도 맘껏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여행지에서 만난 소몰이 축제는 최고의 행운이었다.

3)잘게 썬 감자와 양파, 파프리카, 당근이 팬 위에서 알록달록 어우러지며 고소한 향을 피워 올렸다. 노릇하게 볶아낸 밥 위에는 햇살 한 조각 같은 계란 프라이가 포근히 내려앉았다. 곁들인 올리브까지 더해 식탁 위에 올려놓는 순간, 친구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말보다 먼저 미소가 번졌고, 기대감이 식탁 주위를 가만히 채워갔다. 여행을 하며 낯선 나라의 사람들과 한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 그것 또한 카미노가 선물하는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프랑스인 카타리나, 에스텔, 모니카, 수스와 함께 각자 준비해 온 식재료를 꺼내 놓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주방 안은 웃음소리와 음식 냄새로 가득 찼고, 그녀의 크록스는 그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채소를 씻고, 냄비를 옮기고, 접시를 나르며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던 친구들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정말 크록스를 신고 순례 중인가요?”

.”

그녀는 대답과 함께 크록스를 신은 발로 폴짝 뛰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이미 비와 땀에 여러 번 젖은 크록스였다. 욕실에서 물로 한번 쓱 헹궈내면 다시 새것처럼 가벼워졌다. 길 위에서 든든한 동반자였던 크록스는 주방에서도 제 몫을 다했다. 순례길의 먼지와 저녁 식사의 온기를 함께 품은 채, 그날도 묵묵히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다녔다.

4)샛별을 바라보며 길을 나서는 카미노의 아침은 늘 상쾌하고 행복했다.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하늘 아래, 별들과 나란히 걷는 시간은 순례길이 건네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길가에는 아직 수염이 덜 익은 자그마한 옥수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낯선 땅에서 만난 풍경이지만, 어쩐지 고향의 들녘처럼 정겹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걷다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카스티야 수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끝없이 펼쳐진 메세타의 광활한 초원과 어우러진 수로의 풍경은 어떤 말로도 다 담아낼 수 없었다. 수로 양옆의 나무들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잎사귀를 흔들었고, 햇살을 머금은 초록빛은 반짝이며 춤을 추었다. 수상보트 위를 지나던 순례객들은 환한 얼굴로 부엔 카미노!”를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고, 그 순간의 설렘을 놓치고 싶지 않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하루의 걸음을 마치고 알베르게 침대에 몸을 누이면 창밖으로 성당이 보였다. 고요한 하늘 아래 우뚝 선 성당의 모습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매일 같은 길을 걷는 것 같지만, 카미노의 길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풍경도, 날씨도, 만나는 사람도 달랐고, 무엇보다 그 길을 걷는 나 자신이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길은 마치 조용히 묻는 듯했다.

오늘의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걷고 있나요?”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답하듯,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저녁 식사 전, 산 페드로 데 프로미스타 교구성당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한 필그림 콘서트가 열렸다. 고풍스러운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돌기둥과 높은 천장이 만들어 내는 경건한 분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감싸안았다. 곧이어 울려 퍼진 그레고리안 성가와 알렐루야는 낯설지 않은 선율로 내 마음 깊은 곳을 두드렸다. 성가를 듣는 순간, 부활성야 미사 때 힘차게 부활찬송을 노래하시던 신부님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성당 가득 울려 퍼지던 그 우렁찬 음성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 현재의 선율과 겹쳐졌다. 성가대의 노래는 웅장한 성당의 공간을 가득 채우며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는 기도처럼 들렸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자, 음악은 더 이상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 한 음 한 음이 마음을 어루만지며 자연스럽게 기도가 되어 갔다. 그날의 콘서트는 공연을 감상하는 시간이 아니라, 성가를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이었다. 웅장한 성당 안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 속에 잠시 머물며, 노래가 곧 기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그 은혜로운 울림은 콘서트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순례길의 한 페이지를 따뜻하게 밝혀 주었다.

5) 다음 날 새벽,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길을 걷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새 카미노 길을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희미한 불빛만 의지한 채 이리저리 길을 찾아 헤맸고, 낯선 어둠 속에서 긴장감이 서서히 밀려왔다. 하지만 당황할 틈은 길지 않았다. 그녀는 빠르게 방향을 판단해 큰 도로 쪽으로 나아갔고, 마침내 앞서가던 카미노 순례객들을 발견했다. 익숙한 배낭과 조개 표식을 보는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이 안도의 숨결로 바뀌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카미노의 매력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데 있다.”

길을 잃어 잠시 긴장했지만, 그 말처럼 생각해 보니 이 작은 해프닝조차 순례길이 건네는 또 하나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오히려 길에 생기를 더해 주고 있었다. 오전 930, 드디어 카페에 도착했다.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과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으며 잠시 쉬어 갔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배낭을 메고 길 위에 섰다. 기온은 22. 구름이 햇살을 적당히 가려 주어 걷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길가에서는 복분자 열매가 순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 중 제철 과일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카미노에서는 길 자체가 작은 선물 꾸러미 같았다. 탐스럽게 익은 복분자를 한 손 가득 따서 입에 넣자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말랑말랑한 검은 열매는 허기를 달래 주었고, 갈증마저 잊게 해 주었다. 어느새 손끝은 보랏빛 물이 들었고, 크록스에도 복분자 자국이 번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복분자의 달콤한 힘을 얻은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걸었고, 크록스는 그런 그녀의 걸음을 묵묵히 받쳐 주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카미노 하루가 햇살과 바람, 그리고 복분자 향기를 품은 채 흘러가고 있었다.

6) 주비리의 오후는 고요했다. 마을은 작고 한적했고, 마트조차 문을 열고 들어가 보기 전에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골목 깊숙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납작복숭아와 바나나, 맥주 몇 캔을 장바구니에 담아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의 걸음을 마친 몸은 쉬고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길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였다. 잔뜩 흐려진 하늘이 마침내 빗장을 풀 듯 굵은 빗방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로는 비를 타고 시원한 바람이 밀려들었고, 작은 텃밭을 덮고 있는 비닐 위로는 탁탁, 토독토독 경쾌한 빗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창가에 앉아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카미노는 때때로 거창한 풍경보다 이런 소박한 순간들로 더 깊은 감동을 선물했다. 비 냄새와 바람, 그리고 빗소리가 어우러진 그 오후는 카미노가 건네준 오늘의 선물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이 길에는 두꺼운 양말도, 발가락 양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크록스 한 켤레면 충분했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벗어야 했던 것은 양말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익숙함에 대한 집착, 불편할 것이라는 두려움, 꼭 이래야 한다는 생각들. 길은 매일 조금씩 그런 것들을 벗어 놓게 했다.

발은 가벼워졌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비에 젖고 햇볕에 마르기를 반복한 크록스는 어느새 순례길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수많은 발걸음과 풍경, 웃음과 쉼의 순간들을 함께 지나온 동반자였다. 그렇게 그녀와 크록스는 오늘도 길을 걷는다. 그리고 내일도, 또 그다음 날도. 말없이 곁을 지키며 이어지는 발걸음처럼, 순례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계속된다.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길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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