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에게(1)
정은이
1)아버지는 2026년 6월 2일에 고인이 되셨다. 삶은 주어지는 걸까? 선택하는 걸까? 주어지는 거라면 공평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났어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니 그 또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파란만장하다고 말하곤해한다. 소설을 쓰면 몇권도 쓸거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하신적이 없다. 자식된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파란만장 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 시절의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묵묵히 살아내셨다.
2)아버지는 1935년에 태어나셨다. 태어난 년도만 들어도 가슴이 멍해지지 않는가? 할머니는 열세명의 자녀들을 낳으셨다. 하지만 여섯분만이 살아남으셨다. 아버지가 몇번째 자녀인지는 모른다. 큰아버지가 첫째가 아니었다는 것만 들었다. 말씀하시지 않는데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않았다. 황해도가 고향이신 아버지는 6.25전쟁 때 겨우 열다섯살이셨다. 피난길에 어린 여동생을 차마 버릴고 올 수 없어서 업고 내려오셨다고 하셨다. 여섯 형제중 세분은 이북에서 세분은 남쪽에서 나았다고 하셨으니 짐작만할뿐이다.
3)전쟁이 끝났다고 살만했던 것도 아니었다. 전쟁의 혼란속에 어느 수용소 같은 곳에 끌려가셨다. 그곳에서 군대로 보내졌고 엄청 고생하셨단다. 참전용사로 직업군인이 되신 큰아버지가 아버지를 찾으셔서 살았다고 하셨다. 사는 것보다 죽는것이 나을것 같은 삶을 이겨내신거다.
4)아버지는 큰아버지 도움으로 서울 영등포에서 운수사업을 하셨다. 우리 삼형제는 거기서 태어났다. 계속 그곳에 살았으면 우리들의 삶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큰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신 큰아버지 대신 시골에 내려가셔야 했다. 잠시만 가있을 양으로 집도 세간살이도 모두 두고 왔는데 다시 못 가셨다. 그렇게 평생을 농부로 사셨다. 농부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는 말로할 수 없다. 그래도 아버지는 친구들의 아버지와는 달랐다. 뭐든 빨리 받아 들였다. 삶을 누릴 줄도 아셨다.
5)그러나 세월은 이기지 못하셔서 92세에 오래된 고목처럼 온몸에 수분이 다 마른 듯 앙상한 뼈만 남은 체 좋은 세상을 두고 가는 것을 아쉬워 하며 생을 마감하셨다.
6)주어진 삶이든 선택한 삶이든 삶은 소중하다. 간혹 삶을 경히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부모님들이 살아낸 삶이 무시당하고 있는 것 같아 화가난다. 지금 아무리 살기 어렵다고 느껴도 그분들의 살아낸 삶 같겠는가?
7)아직도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으로 죽고 난민이 생긴다. 또 어느 곳에서는 기아로 죽는 아이들이 있다. 내가 그곳에 태어나지 않아서 겪고 있지 않을 뿐이다.
어떤 삶이든 아침에 눈을 떠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길 바란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어떤 삶에게(2)
정은이
1)2026년 6월에 고인이 되신 나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해볼께요.
삶은 주어지는 걸까요? 선택하는 걸까요? 주어지는 거라면 공평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났어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니 그 또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파란만장하다고 말하곤 해요. 소설을 쓰면 몇권도 쓸거라고 하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하신적이 없어요. 자식된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파란만장 했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그 시절의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묵묵히 살아 내셨어요.
2)아버지는 1935년에 태어나셨어요. 태어난 년도만 들어도 가슴이 멍해지지 않나요? 할머니는 열세명의 자녀들을 낳으셨데요. 하지만 여섯분만이 살아남으셨죠. 아버지가 몇번째 자녀인지는 몰라요. 큰아버지가 첫째가 아니었다는 것만 들었어요. 말씀하시지 않는데 차마 물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너무 가슴아픈 이야기잖아요. 황해도가 고향이신 아버지는 6.25전쟁 때 겨우 열다섯살이셨어요. 피난길에 어린 여동생을 차마 버릴고 올 수 없어서 업고 내려오셨다고 하셨어요. 여섯 형제중 세분은 이북에서 세분은 남쪽에서 나았다고 하셨으니 짐작만 할뿐이에요.
3)전쟁이 끝났다고 살만했던 것도 아니었어요. 전쟁의 혼란속에 어느 수용소 같은 곳에 끌려가셨데요. 그곳에서 군대로 보내졌고 엄청 고생하셨데요. 참전용사로 직업군인이 되신 큰아버지가 아버지를 찾으셔서 살았다고 하셨어요. 사는 것보다 죽는것이 나을것 같은 삶을 이겨내신거죠.
4)아버지는 큰아버지 도움으로 서울 영등포에서 운수사업을 하셨어요. 저희 삼형제는 거기서 태어났어요. 계속 그곳에 살았으면 저희들 삶이 달라졌겠죠. 하지만 큰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신 큰아버지 대신 시골에 내려가셔야 했데요. 잠시만 가있을 양으로 집도 세간살이도 모두 두고 왔는데 다시 못 가셨어요. 그렇게 평생을 농부로 사셨죠. 농부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는 말로할 수 없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친구들의 아버지와는 달랐어요. 뭐든 빨리 받아들이 셨어요. 삶을 누릴 줄도 아셨죠.
5)그러나 세월은 이기지 못하셔서 92세에 오래된 고목처럼 온몸에 수분이 다 마른 듯 앙상한 뼈만 남은 체 좋은 세상을 두고 가는 것을 아쉬워 하며 생을 마감하셨어요.
주어진 삶이든 선택한 삶이든 삶은 소중해요. 간혹 삶을 경히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부모님들이 살아낸 삶이 무시당한 것 같아 안타까워요. 지금 아무리 살기 어렵다고 느껴도 그분들의 살아낸 삶 같겠어요?
6)아직도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으로 죽고 난민이 생겨요. 또 어느 곳에서는 기아로 죽는 아이들이 있어요. 내가 그곳에 태어나지 않아서 겪고 있지 않을 뿐이에요.
어떤 삶이든 아침에 눈을 떠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길 바래요.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길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