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크록스
박옥매
1) 여러 겹의 양말을 벗어낸 뒤에야 그 자유를 따라갈 수 있었다.
2) 나는 두꺼운 양말을 신고 그 안에 발가락 양말까지 겹쳐 신었다. 하
지만 그녀의 발에는 언제나 크록스 한 켤레뿐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주가 지나도 그녀의 걸음은 변함없이 가벼웠다. 그리고 5주가 흐르는 동안에도 그녀의 발에는 물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비에 젖고 햇볕에 바래고 먼지를 뒤집어쓴 크록스는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크록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걷고 나면 발이 성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예상한 방식으로 지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걸음을 멈춘 뒤 그녀는 크록스조차 벗지 못한 채 짚더미 위에 몸을 던졌다. 그녀의 크록스는 비를 맞고 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묵묵히 길을 따라왔다.
3) 소몰이 축제로 광장이 환호성으로 들끓던 순간이었다. 나는 수도꼭지로 뛰어갔다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고개를 돌렸다. 그때 먼지투성이 크록스를 신은 그녀가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정말 위험했어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손을 잡았다. 움켜쥔 손 사이로 땀이 배어 나왔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주방 안은 웃음소리와 음식 냄새로 가득 찼고, 그녀의 크록스는 그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채소를 씻고, 냄비를 옮기고, 접시를 나르며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던 순례자들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정말 크록스를 신고 순례 중인가요?”
“네.”
그녀는 대답과 함께 크록스를 신은 발로 폴짝 뛰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이미 비와 땀에 여러 번 젖은 크록스였다. 물로 한번 쓱 헹궈내면 다시 새것처럼 가벼워졌다. 그렇게 크록스는 또 하루의 길을 지나고 있었다.
4) 길가에는 복분자 열매가 순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탐스럽게 익은 복분자를 한 손 가득 따서 입에 넣자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말랑말랑한 검은 열매는 허기를 달래 주었고, 갈증마저 잊게 해 주었다. 어느새 손끝은 보랏빛 물이 들었고, 크록스에도 복분자 자국이 번져 있었다.
5) 이 길에는 두꺼운 양말도, 발가락 양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비에 젖고 햇볕에 바래고 복분자 물까지 들었던 크록스는 어느새 순례길의 시간을 품고 있었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어떻게 저 신발로 수백 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는지, 하지만 순례길이 끝날 무렵에는 알 것 같았다. 물집을 걱정하던 나는 여러 겹의 양말을 신었고, 그녀는 맨발에 크록스 한 켤레로 길을 걸었다.
여러 겹의 양말을 벗어낸 뒤에야 그 자유를 따라갈 수 있었다.
그제야 마음도 함께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