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가는 시간
박소영
1)어김없이 울리는 귀가 베일 정도로 시끄러운 벨소리에 잔뜩 찌푸린 얼굴로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작은 신음과 무거운 팔다리에 머릿속으로는 몇 번이나 출근을 포기한다. 아침밥은 당연히 건너뛴다. 남들 밥시간은 곧 나의 집중업무시간이며 잠깐의 브레이크 타임에 겨우 한 끼 챙겨 먹으면 운이 좋은 날이다. 그렇게 버틴 지난시간들은 누군가에겐 특별한 생일상이 되기도 했고, 완벽한 데이트코스가 되어 주기도 했다.
2)우연한 계기로 조리사에서 교육자로 전향하게 되었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될 정도로 하루 온전히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도 다음날 가볍게 일어날 정도로 이 일은 나에게 잘 맞았다. 오전 9시, 수강생들은 가끔 나보다 일찍 오는데 강의실을 가득 채운 뜨거운 공기와 이른 아침의 고요함이 한데 뒤섞여 나까지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강의가 시작되고 모두 앞에 모여 앉아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이해를 했는지 파악하는데 오늘따라 상냥한 시선은 보이지 않고 날카로운 눈초리에 몸짓하나하나가 얼어붙었고 고요한 적막을 깨는 내 목소리만을 따라 움직이는 죽은 인형이 된 것 같았다. ‘아 조금 쉬어야겠다.’
3)쉬는 시간엔 칼 관리를 한다. 날이 무뎌지면 써는 힘이 더 실려 몸을 다치게 한다. 수업 중에 피 보는 일은 피하고 싶으니 충분히 불려둔 숫돌에 5자루 남짓 되는 칼을 돌아가며 관리해준다. 뭉특해진 칼날을 보면 쉬지 않고 일만하다 지쳐 잔뜩 망가진 내 몸이랑 다를게 없구나 싶어 열심히 갈아주기로 한다. 가끔 이렇게 내 몸도 돌봐주어야 겠다.
4)충분히 날카로워진 날로 마음을 다잡고 강의를 시작한다. 단단한 식재료를 잡고 들뜬 기대감으로 채썰기를 시작했다. 칼의 리듬이 가볍고 참 경쾌하게 들린다. ‘그래 이 맛이야’, 음식을 다 만들어 내기도 전, 칼과의 싸움에서 이겨 어딘가 얄밉기도 한 표정의 나를 떠올렸다. 그런데 수강생들도 그 마음을 아는 건지 유난히 그날은 수업 내내 모두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5)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수업 시간 한참 전 도착해 서로의 자리를 묵묵히 정리할 때는 ‘왜 이렇게 일찍 오셨지? 혼자 편하게 준비하고 싶은데...‘ 혹은 가르쳐준 내용을 몇 번이고 되물어보고 작품이 이상하게 나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돌아보니 “선생님 식사하셨어요? 오면서 빵 좀 사왔는데 드세요”, 하며 내 아침을 챙겨주었던 어머님의 따스한 마음과, 반짝이는 눈을 피해 쫓기듯 진행한 수업들에 온전히 이해를 못할 수밖에 없었던 수강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윽고 칼날의 방향은 나를 향했다. 가슴 한쪽이 따끔거렸다.
6)칼은 언제나 무섭지 않았고 수업의 한 도구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젠 무뎌진 날과 날카로운 날은 주기적으로 내 삶 깊숙이 들어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음이 무겁고 예민한 날은 괜스레 칼을 한번 들여다본다. 그래, 오늘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