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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빛문우회

나의 압력밥솥 - 이재은(새벽4시29분, 수정조금해서 다시 올려요^^)

작성자책책맘 이재은|작성시간26.06.09|조회수32 목록 댓글 0

 

 

 

< 나의 압력밥솥>

 

이재은

 

 

(1)치이익.

(2)20분이면 밥이 다 됐다는 소리가 울린다. 우리 집은 압력밥솥을 쓴다. 밥이 빨리 되고 갓 지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어서다.

(3)결혼하고 새 집으로 혼수를 들여 올 때, 엄마가 말씀하셨다. 집에 제일 먼저 들여 놓으라고, 그래야 잘 산다고. 그 때 우리집 밥솥은 전기밥솥이었다.

(4)결혼하고 처음으로 밥을 했다. 그 전에는 엄마께서 지어주신 밥을 ‘먹기만’ 했다. 어쩜 한번도 밥 해 볼 생각을 안해봤을까. 그래서 처음으로 밥을 지어본 날은 결혼 후 이 집에서 처음 살게 된 그 날이 되었다. 이 기계를 처음으로 다루는 것이다보니 설명서를 교과서 읽듯 한줄한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밥 한번 안해보고 처음으로 이 일을 하려고 보니 부끄러움이 몰려 왔다. 성인이 되고 자취 생활이라도 했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스스로 웃음이 났다.

(5)설명서를 읽고 본격적으로 밥을 짓는 미션이 시작되었다. 쌀을 씻는다. 물을 정해진 용량대로 채운다. 버튼을 누른다. 라면 설명서는 보지 않아도 뚝딱이었는데 밥 지으면서는 설명서를 정독하고 있는 나. 첫 밥은 어찌저찌 하다보니 완성되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뽀얗게 따뜻한 밥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밥 하나를 겨우 해냈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숱한 밥을 먹었고, 그 밥은 모두 엄마가 해주셨었다. 근데 왜 엄마가 쌀 씻는 모습은 한번도 못 본 것 같지?

(6)엄마는 압력밥솥으로 항상 따뜻하고 갓 지은 밥을 주셨다.

“밥 먹어야 되지?”

“밥 다 됐다.”

뚝딱, 엄마는 항상 빠르셨다.

(7)전기밥솥으로 2년동안 밥을 하던 나는 압력밥솥으로 바꿨다. 계속 전기가 돌아가서 밥이 계속 익어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굳은 밥알들이 생겨나고 밥맛이 조금 변하는 기분이었다. 그저 엄마가 지어준 밥맛이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8)압력밥솥을 사용하고는 물의 양이 또 문제가 되었다. 흔히들 말하기를 손을 넣어서 손가락이 물에 잠길 때까지라고 했는데 그 적정선이 어딘지 영 모르겠는거다. 한번은 시어머니꼐서 요래요래 옆으로 뉘어서 쌀 양의 반 정도 온다 싶으면 그 때가 딱 물의 양인거라 하셨다. 그 때부터 항상 물을 담고 기울여 가면서 물의 양을 맞춘다. 진짜 기가 맥히게 딱 알맞은 밥이 된다. 그 양을 기준으로 진밥을 원하면 조금더, 된 밥을 원하면 조금덜 하면 된다.

(9)어느 덧 결혼하고 10년이다. 전기밥솥으로도 수없이 밥을 하고, 압력밥솥으로 맛있는 밥을 만들어 왔다. 설거지가 쌓이고 빈 밥솥그릇과 섞여 있을 땐, 압력밥솥부터 닦고 가스불을 키고, 밥을 기다리며, 설거지를 하는 유연함도 생겼다.

(10)엄마도 시집 와서 아무것도 할 줄 몰랐어!

아가야, 전기 밥솥을 안쓰고 압력밥솥을 쓰네? 물양이 어렵다고? 이렇게 기울이면 된단다.

(11)치이익. 밥이 다 됐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모든 엄마와 함께 있는 듯하다. 철부지 딸이었는데, 어느새 주부로, 엄마로, 숱한 밥을 지어 왔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이렇게 매일매일 당연하게 밥을 만들어내고 있을테지, 나도 이제 뚝딱 밥을 완성해내는 엄마와 같은 엄마다.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에 오늘도 콧노래 부르며 압력밥솥 뚜껑을 연다. 뽀얗에 잘 익은 밥알들이 날 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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