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1)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어른은 어떤 사람이야?”
“책임감 있는 사람.”
(2)성년의 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을 한다. 퇴근 시간 넘겨가며 일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고, 더 할 것이 있으면 주말에도 일을 하곤 한다. 아이 밥을 챙기고 설거지, 빨래를 해도,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 안에선, 떼쓰고 우는 아이, 토라져 꽁해진 아이, 인정받고 싶어 조바심 치는 아이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었다.
(3)“할머니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아들에게 일침을 당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내 안에서는, 여전히 화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린다. 불꽃 속에 푸른 빛과 붉은 빛처럼, 내 화 속에는, 서로 다른 온도가 섞여 있었다. 자신을 희생해 온 어머니. 그러나 고마운 마음은, 수없이 들어왔던 어머니의 ‘부정적인 말’ 밭에 갇혀, 비뚤고 서툴게 비어져 나왔다.
(4)나의 친할아버지는 당신의 동생 사업자금으로 집을 담보로 할 수 있게 하셨다. 그 덕에 내 어머니는 첫 딸의 돌도 되기전에 세간이 모두 길거리로 나앉는 일을 치뤘다. ‘살아내면 살아진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집을 잃은 시부모, 시동생 일곱 식구 뒷바라지를 하는 시집살이라니. 게다가 밖에서는 공자님이라 불리고, 안에서는 효자라 불리는 남편이 어머니의 지붕이 되어 주었을까.
(5)곰은 재주가 부리고 덕보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은, 나의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를 빗대 한 말이었을까. 딸‘만’ 셋을 낳은 맏며느리, 사근하지도 않은데 할 말은 참지 못하는 성격의 어머니는 집안 대소사, 일이란 일은 다 하는데도 시어머니의 눈빛은 차갑고 말은 모질었다. 비단 치마 살랑거리듯 하늘한 작은 어머니는 아들까지 낳아, 손 끝에 물은 뭍히지 않아도 내 어머니가 부쳐놓은 전은 어김없이 들려 있었다.
(6)‘씩씩한’ 전사로 키우고자 했던 아버지의 철학에 맞춰 딸 셋은 선머슴 소리가 더 어울리게 자랐다. 딸 셋은 사춘기도 조용히 보냈다. 반항도 방황도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교때 아버지가 정년 퇴임 후, 서울 동쪽에 마련했던 조그만 아파트를 정리해 서쪽 끝 김포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2년이 되지 않아 서울 아파트 가격이 본 적 없는 가격으로 상승을 했다.
(7)식탁에는 보이지 않는 반찬이 늘 하나 더 놓였다.
“모든 기회는 다 끝났다. 니 아부지가 나 몰래 사업한다 돈 날리고, 서울 집값이 그리 될 줄 누가 알았어. 모든 기회는 다 끝났다.”
“신혼 때, 자기 전에 하나 더 먹으라고 밤을 까서 넣어 주었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주먹으로 치는 거야.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그 때 그 늙은이가...”
“엄마! 밥 좀 즐겁게 먹으면 안될까?”
(8)병에 밥을 담아 놓고, 사랑해, 고마워처럼 좋은 말을 해주면 구수한 효모가 되고, 짜증이나 미움이 담긴 말을 하면 푸른빛의 해로운 곰팡이가 되더라는 얘기가 있다. 과학적으로 보편화 된 실험이 아니라 해도, 말의 힘을 믿는 내게 그럴싸하게 들렸다. 누룩까진 과장이었다 해도, 이쁜 말을 들은 식물이 더 잘 자란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끼니때마다 얹히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말도 여러번 들으면 듣기 싫은 법인데, 이십 년째, ‘자기 전 밤 한톨 사건’을 들어야 하는 사실에, 위로보다는 이제 한숨이 나왔다.
(9)행복한 결혼생활이 꿈이었고, 불행한 결혼생활이 한으로 남은 어머니. 이제 자식들 다 컸으니, 어머니 하고 싶은 거, 배우고 싶은 일에 시간을 보내시라 했다. 영국에서 살 때는, 어머니를 초대해 유럽 여행도 함께 했다. 그러나,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어머니 머릿속은 온통, ‘망가진 내인생’이었다.
“그래도 아빠 월급으로 하루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감사하자.”
“나는 뭐 놀았니?”
“이제는 엄마 좋아하는 거 배우면서 즐겁게 살자.”
“이제와서. 기회는 다 끝났어.”
그 때 어머니, 환갑이 조금 넘었을 때다.
(10)들여다보니, 내 화의 불꽃이 높이 타오르는 지점은, 어리석음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인생을 ‘과거’에 매몰시키다니. 자식이 실패하고 돌아와 기회가 다 끝났다 하더라도, 무슨 소리냐 기회는 또 온다, 말해줘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여겼다. 조금 낮게 타오르는 지점은 인정과 다독임 부재였다. 잘했다, 이쁘다, 괜찮다 보다는 늘 ‘여기만 조금 더 하면...’이었다. ‘잘했는데’ 는 당연한 전제라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부족한 부분에 대한 평가만 받는 기분은 김빠진 맥주가 되곤 했다.
(11)아들을 키우다 보니, 쉽지 않은 일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 때마다 불쑥하고 튀어나오는 나의 모진 단면들. 제 몸보다도 큰 두 발 자전거를 떼면서 겪었던 일로 깨달음이 많아 이제 잘하겠지 싶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 마다 정화되지 않은 감정들은 여전히 쏟아져 나왔다.
(12)‘화’의 뿌리가 어머니란 생각이 들 때마다 불꽃이 크게 넘실거렸다. 성난 고양이 하악질 하듯, 어머니의 말끝마다 짜증의 방울을 달았다. 그 소리는 아들의 귀에서도 울렸고, 내게 메아리처럼 돌려주었다. 아이가 내 말과 모습을 반사할 때마다, 눈을 가리고 싶었다. 나는 거르지 않은 어머니의 부정적 말 속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이제 어미가 되어서는 아들에게, 물려줘선 안될 것이라 했다. 머리로는 ‘그래야지’ 하면서도 매번 나를 정당화했다.
(13)그러던 어느날, ‘폭삭 속았수다’를 보다 들은 애순이의 말.
“나 하나 믿고 세상에 오는 조그만 생명한테, 내가 세상의 전부가 되어주는 일이지.”
아들의 조그만 손이 생각났다. 드라마 보며, 식탁 위에 한가득 쌓인 휴지를 버리며 어른이 되기로 했다. 내가 미워했던 어머니의 유산. 그 대물림을 끊는 것이, 내 감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 그 첫걸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물려받은 힘의 방식을 내 아이를 위해 다르게 풀어내는 것이, 나를 어른으로 되게 해주지는 않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