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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빛문우회

다섯 시간이 오 분처럼

작성자전선현|작성시간26.06.22|조회수28 목록 댓글 0

 

다섯 시간이 오 분처럼

 

전선현

 

(1) 우리는 이번에 스페인 식당에서 만났다. 11시에 문 여는 식당 앞에서 7분을 기다려 들어갔다. 흐린 파란색과 빨강에 가까운 갈색 체크무늬 식탁보가 씌워진 자리에 앉았다. 벽엔 창밖으로 꽃 화분을 가득 둔 스페인 골목길 그림이 인쇄된 커다란 천이 붙어 있었다.

(2) “여기 스페인 같다.”

우리 넷은 동시에 말했다.

우리 메뉴 공부하자. ”

첫째 언니의 말에 둘째 언니는 메모지와 볼펜을 꺼냈다.

난 크로께따 먹고 싶어.”

, 가지구이 먹어도 돼요?”

전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 닭고기와 해산물 빼고.”

직원은 한 사람당 요리 하나씩은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드 메뉴는 두 개가 주메뉴 하나에 해당한단다. 2인 세트에, 요리 하나, 사이드 둘을 주문했다.

(3) 그 사이 큰언니가 식탁 위에 앙증맞은 비닐 가방 세 개를 올렸다.

우와, 뭐예요? 이렇게 예쁜 가방은 또 뭐구요?”

, 카타르에서 사 왔지. 작지만 꿀이야.”

무거웠겠다. 여행 가서 선물 챙겨오는 거 쉽지 않은데, 감사합니다.”

뚜껑에 낯선 아랍 글자가 쓰여 있었다. 여행 때마다 선물을 챙겨주는 큰언니의 마음은 낯설지가 않았다.

(4) 주문한 요리가 나와 식탁이 가득 찼다. 또르띠야, 가지구이, 오징어 먹물 빠에야, 해물 깔도소, 크로께따...

스페인 음식이 이런 맛이야?”

내가 막내에게 물었다.

, 안 가봤는데요?”

막내가 대답했다.

근데, 여기 진짜 맛있다.”

그러게요. 스페인 가보고 싶다.”

우리 중에 스페인 가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오징어 먹물에 담긴 쌀밥은 이렇게 맛있는데. 모든 음식이 간이 잘 맞았다.

이번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점등식 했다면서요?”

난 포르투갈 가보고 싶어.”

포르투가 그렇게 예쁘다면서요.”

나도 들었어, 에그타르트가 그렇게 맛있다더라.”

나 아는 부부는 1년 동안 세계 일주하러 떠난 거 있죠. 이렇게 인스타로 근황 전하는데, 아프리카 정말 가보고 싶더라고요.”

막내가 핸드폰을 켜 사진을 보여줬다.

우와, 이거 바오바브나무야?”

아프리카 아주 위험하다던데.”

(5) 우리는 이베리코 돼지고기 요리를 맛보며, 세계를 씹었다. 세계의 유명한 도시들은 우리 혀 속으로 달콤하게 스며들었다. 도시 이름이 식탁에 놓일 때마다 우리는 그 도시를 함께 걸었다. 우리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한 사람이 이야기할 때 세 사람은 눈과 귀를 그를 향해 활짝 열었다.

(6) “여기 커피 없나

큰언니가 물었다.

맥주만 있나 봐요.”

그럼 분위기 좋은 카페로 옮길까요? 근처에 큰 카페 있던데.”

(7) 넷은 다시 차에 탔다. 근처 4층 건물 통째가 카페인 곳으로 갔다. 통유리 한쪽은 고층 아파트가, 또 다른 쪽은 바깥 소나무 숲이 그대로 보였다. 세 번 자리를 옮겨 측면에 소나무 숲이 보이는 곳에 앉았다.

탁 트이고, 배경 좋고, 여기 완전 우리 스타일이다.”

다들 몇 시에 가야 해?”

세 시에 나가면 돼.”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었는데 벌써 한시였다.

(8) 시원한 카페라테, 따뜻한 카페라테, 뜨거운 아메리카노, 따뜻한 캐모마일차를 주문했다. 우리 이야기는 여행의 꿈에서, 휴학과 졸업에 관한 아이들의 근황에서, 시국 주제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목적지가 갑자기 바뀌어도 아무도 멀미에 시달리지 않았다.

(9) 둘째 아이 키우며 우리 넷이 만난 지도 십 년이 넘었다. 초등이었던 아이들도 스물이 넘었다. 함께 영어 연극도 하고, 논술 수업도 하고, 견학도 다녔다. 아이들은 제각각 다른 세계를 발견했는지 서로들 만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 엄마들은 여전히 만난다. 여전히 아이들 근황을 물어보지만, 이젠 우리 삶의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내 다른 친구들은 아이들 친구 엄마들을 아직도 만나냐고 의아해한다. 하지만 만남을 이어가는 건 인연의 처음 기억보다 만남 속에 배려가 얼마나 스며있는가에 달린 것이었다.

(10) 다섯 시간도 우리에겐 오 분처럼 지나갔다. 할 이야기 절반도 못하고 다음 일정에 밀려 헤어져야 했다. 그래도 다섯 시간 중 단 5분도 머쓱한 침묵으로 흐르는 법이 없었다.

, 오늘도 기념사진 한 장 찍어요.”

내가 핸드폰을 켰다. 모두 활짝 웃고 있었다. 우리들의 사진첩에 함께한 오 분 같은 다섯 시간이 하나 더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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