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연필을 고르는 이유
김민주
1)깨끗하게 정리된 내 방, 책상 위에는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 하나, 그리고 노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얼마 전 문방구에서 사온 것들이다. 물건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미안한, 어쩐지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 것들.
2)문방구에는 늘 그렇듯 많은 것들이 있었다. 색색의 형광펜, 반짝이는 스티커, 자동 연필, 캐릭터가 그려진 필통들. 그 사이에서 나는 유난히 조용한 것들을 골랐다. 연필과 지우개. 꽃무늬가 작게 박힌, 조금은 낡아 보이지만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것들이었다.
“이거 얼마예요.”
계산대 뒤편의 주인 아주머니는 나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듯 말했다.
“집에 학생이 있나 봐요?”
그 말은 이상하게도 질문이 아니라 짐작처럼 들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쓸 거예요.”
아주머니는 잠깐 손을 멈췄다. 그리고는 잘 들리지 않는 혼잣말처럼 흘렸다.
“요즘은 볼펜도 좋은 거 많은데… 굳이.”
3)그 말끝에는 설명되지 않은 시간들이 매달려 있었다. 볼펜의 시대, 속도의 시대, 지워지지 않는 문장의 시대. 그 안에서 연필과 지우개는 이미 조금 뒤처진 존재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지워진다는 것은 사라진다는 뜻만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지워진 자리 위에서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문장들이 있다는 것을.
4)연필은 늘 망설이며 쓰는 도구다.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 생각, 확신이 아닌 감정,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마음들이 연필 끝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언제나 지우개가 있다. 틀렸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 지우개는 실패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남겨두는 도구다.
5)나는 이 둘이 함께 놓여 있는 것이 좋았다. 연필만으로는 불안하고, 지우개만으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쓰는 일과 지우는 일은 사실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완성이라는 이름을 향해가 아니라, 조금 더 솔직해지기 위한 과정으로서.
집에 돌아와 책상 위에 그것들을 올려두었다. 방은 조용했고, 창문 너머로는 늦은 오후의 빛이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나는 노트 한 장을 펼쳤다. 그리고 연필을 들었다.
6)처음 쓴 문장은 조금 삐뚤었다. 마음처럼 곧게 가지 않았다. 나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지우개를 가져왔다. 문장을 지우는 순간, 종이 위에는 희미한 자국이 남았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흔적. 마치 기억처럼.
7)그때 문득 생각했다. 사람의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지워진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아주 얇게 남아 다음 문장을 흔드는 것. 잘못된 선택, 돌아가고 싶은 말, 지나쳐버린 얼굴들. 그것들은 지워졌다고 믿는 순간에도 우리 안에서 연필심처럼 계속 깎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8)연필은 점점 짧아진다. 쓰는 만큼 닳아간다. 그러나 닳는다는 것은 소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쓰이지 않는 연필은 끝이 닳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 인생은 수정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굳어버린다.
지우개 역시 마찬가지다. 지우는 만큼 닳아 없어진다. 누군가의 흔적을 대신 감당하면서 스스로 작아진다. 그러나 그 작아짐은 무력함이 아니라 역할의 흔적이다. 지운다는 것은 책임지는 일이기도 하니까.
9)나는 다시 한 줄을 썼다.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망설이면서. 그리고 지우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어쩌면 지우는 일보다 더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상 위의 연필과 지우개는 여전히 나란히 놓여 있다. 서로를 대신할 수 없는 채로, 그러나 서로 없이는 아무 문장도 시작되지 않는 채로.
10)어쩌면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쓰는 일과 지우는 일이 끝없이 반복되며, 결국은 완성보다 ‘다시 쓰는 용기’에 가까워지는 과정. 연필은 짧아지고, 지우개는 작아지고, 나는 조금씩 문장에 가까워진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김민주
1)여름은 늘 옷장부터 흔든다. 긴 겨울과 봄을 지나 계절이 바뀔 즈음이면 나는 옷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여름옷들을 꺼낸다. 한 철을 기다려 온 옷들은 접힌 자국을 품은 채 다시 햇빛 속으로 나온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셔츠와 원피스, 그리고 오래 입어 정이 든 청바지까지 모두 세탁기에 넣었다.
2)창밖에서는 초여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세탁기는 둥근 창문 속에서 물과 옷을 뒤섞으며 계절의 먼지를 씻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세탁이 끝난 뒤 청바지를 꺼내는 순간, 나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 무릎 근처가 살짝 헤져 있던 청바지 한쪽이 길게 찢어져 있었다.
3)원래도 세월의 흔적이 있던 옷이었다. 하지만 세탁기의 회전은 작은 상처를 더 크게 벌려 놓았다. 한동안 청바지를 바라보았다. 버려야 하나 싶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오래 입은 옷에는 시간도 함께 깃드는 법이다. 그 바지에는 아이를 키우며 분주하게 오갔던 날들, 남편과 여행을 떠났던 기억, 특별할 것 없던 평범한 오후들이 스며 있었다.
4)결국 나는 그 청바지를 버리지 못했다. 며칠 뒤 남편과 운동을 나가면서 그 바지를 입었다. 한쪽 다리가 훤히 드러난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다. 길을 걷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내 바지에 머무는 것만 같았다. 괜히 손으로 찢어진 부분을 가려 보기도 하고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그때 남편이 내 표정을 보며 웃었다.
"뭐 어때. 보기만 좋구만."
5)순간 나도 따라 웃었다. 생각해 보면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찢어진 옷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무릎이 닳아 구멍이 생기면 기워 입었고, 옷이 해지면 집에서만 입는 옷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지금은 일부러 찢고 해진 흔적을 만들어 멋으로 입는다. 시대가 달라지니 흠결은 개성이 되고, 낡음은 스타일이 된다.
6)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람도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상처를 입는다. 실패와 후회, 세월이 남긴 주름과 흉터들. 한때는 감추고 싶었던 것들이 지나고 보면 오히려 나를 증명하는 흔적이 된다. 새 옷처럼 완벽한 모습보다 시간이 스쳐 간 자리가 더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7)뜨거운 햇살 아래 운동장을 걷는데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한쪽 다리만 유난히 시원했다. 여름 바람은 살갗을 간질이며 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여름은 원래 그런 계절이다.
8)뜨겁게 드러내고, 숨기지 못하게 만든다. 짙어진 나뭇잎도, 이마의 땀방울도, 세월이 남긴 흔적도 모두 햇빛 아래 드러난다. 그리고 그 드러남 속에서 의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한다. 그날의 찢어진 청바지는 망가진 옷이 아니었다. 세월이 남긴 무늬였고, 시대가 허락한 자유였으며, 무엇보다 여름 바람이 드나드는 작은 창문이었다.
9)나는 그 바지를 입고 걸었다. 한쪽 다리로는 뜨거운 햇살을 받고, 다른 한쪽으로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또 하나의 여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