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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독서

[신앙, 경건]사도행전 /유상현

작성자sig|작성시간14.08.29|조회수43 목록 댓글 0

641/ 사도행전 /유상현

Ⅰ. 연구사 (가스끄, 사도행전비평사)

이때까지 연구한 사도행전의 연구사가 의문시되는 것을 확실하게 한 것이 없지만 사도행전이 역사서로서 사실과 신학적으로서도 이해를 해야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럼으로서 사도행전의 연구사를 살핌에 있어서 이해의 폭이 깊어지고 이후 연구하는데 있어서 길 안내가 될 수 있으며 헛된 수고로 가지 아니하며 창조적인 연구의 길로 갈 수있도록 한다고 본다.

Ⅱ. 개론적 질문 (큄멜, 신약정경개론)

<문제제기>큄멜은 예루살렘에서 이방선교의 확신(1: 15-15: 35)까지와 로마까지 확장(15: 36-28: 31)으로 사도행전을 나눈다.

<전개>1. 누가의 제 2부인 역사서로 사도행전이 누가문서와 차이나는 점을 두 책의 관점의 차이로 설명한다. 2. 사도행전의 성격에서 두 가지의 목적이 하나는 기독교인들을 교육하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 사도시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3. 저자의 의도에서 큄멜은 저자 누가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세계적인 구속사업을 묘사하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아무런 선례를 찾을 수 없는 모방한 후대작품도 남기지 않는 문학형태를 창조하였다고 본다. 그것은 요약적인 진술과 설교이다. 요약적 진술은 초대 기독교를 묘사할 때만 사용하고 있다. 설교는 이야기의 결정적인 전환점마다 나타나고 저자의 생각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실은 한번 이상 반복된다. 이로써 사도행전의 설교들은 작가가 채택한 설화전승들에다가 작가 자신의 신학적 의미를 놓기 위한 중요한 문법적 기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것이 저자의 신학적 임무로서 “기독교 안에서 역사적 시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구원은 예수의 과거 역사 속에 참여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선포하는 것으로 설교를 통해서 종말론적인 구원의 역사를 규정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약속된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초대 기독교의 역사관이라고 하는 골격 안에서 취한 것으로 큄멜은 보고 있다.

<결론>저자 누가는 선교라는 목적 하나로서 기독교의 모든 것을 사도행전에서 집중하였고 이것을 보고 큄멜은 15: 35,36에서 두 부분으로 나눈 것 같다.

<평가>저자 누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라는 선교라는 프로그램이 기독교의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창조적인 문학작품을 남겼다.

Ⅲ. 서문 및 승천(행 1: 1- 11) 부활주의 현현 장소(전 13-39)

<문제제기>부활 후의 예수님이 나타나신 장소에서 복음서들간의 어긋난다는 것에 대하여

<전개> 1. 마가 마태에서 갈릴리는 역사성과 신학적인 의미로 보고 누가에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구속사를 강조한다. 요한복음에서는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왕래한다. 2. 로마이어는 갈릴리 예루살렘 이 두 전통이 각기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생겨난 원시 기독교의 신학의 경향을 대표한다고 본다. 유대교의 종말론적인 기대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나 원교회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누가에게 예루살렘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을 장소이고 세계선교의 근원이요 교회의 발상지이다.

<결론>누가의 공동체가 새로운 시작으로 자라나기 위하여 정체성을 가지고 방향성을 가지는데서 저자 누가에게 있어서 선교의 시발점으로서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었다고 본다.

<평가>원시교회의 전통이 생겨나게 된 것에 그 당시에 여러 배경과 유대교와의 관계에서 신학적인 중요성을 생각하여야 한다.

Ⅳ. 오순절 사건과 교회의 탄생(행 2: 1-13) 전(40-56)

<문제제기>오순절 사건은 사도행전의 전 역사 기술을 방향정한 기본사건으로 보면서 원시교회의 성령현상을 읽어낼 원본이며 역사사실을 규명하는 단서가 된다고 본다. 전경연은 누가의 기술대로 원시교회의 태생이 오순절 사건에서 발생하였다면 교회의 성격을 특징지을 수 있는 신학적 특징을 오순절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전개>1. 사도행전 저자의 견해

1) 저자는 오순절 사건이 그 이후의 역사를 방향 지을 만큼 기적적인 새 사건으로 보도한다. 성령의 내림이 집단적인 현상으로 보면서 그 교회가 성령 받은 자들의 사회로 본다. 이에 대한 행 2장의 전경연의 해석은 성령 받은 현상에 모두가 참여한 것으로 보되 후에 이방선교에서는 성령의 강림은 사도들의 안수나 세례와 관련을 가졌다. 하지만 성령이 세례에서 생겼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모인 청중에게 준 설교가 시내사본에서(א)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에 온 세계에서 모여온 이방인 개종자들을 의미한다.

2) 저자는 성령현상이 “말하는 기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듣는 기적에서 놀랬다는 것은 하늘의 말 때문이라기 보다는 사도들의 능력의 비상함에 놀라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방언에 대해서 이방선교의 표징으로 해석한다.

3) 저자는 고전14장과는 달리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말을 예언과 동일시한다.

4) 저자가 성령사건 때 모인 사람들을 유대인이라고 보았는가 이방인이라고 보았는가 하는 문제에서 오순절이 이방인선교의 시작으로 보면서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생략된 것을 지지하면서 이것이 생략될 때 전세계에서 와서 예루살렘에 임시 거주하는 경건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된다. 11절이 보충하고 1: 8과 2: 5절이 다 세계 선교의 포부의 나타내는 것으로 사도행전에 거듭나오는 유대인이 거절했으니 이제 이방인에게로 간다는 말과 함께 여기서도 유대인은 방언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5) 저자의 구약사기와 유대교의 평행되는 사상에 대해서 오순절의 사건을 바벨탑의 설화에서 액운을 극복한 것으로 본다. 오순절 설교가 이방인의 선교의 시작으로 생각했다면 외국사람들은 알아듣지만 이 백성은 알아듣지 못한다. 오순절 날은 레위기23장 15-21절에 규정된 것으로 후기유대교는 율법수여의 날로 보고 있다. 그래서 율법(십계명)의 선포의 기적과 같이 오순절의 기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2. 고린도전서 12-14장, 로마서 8장과의 관계

1) 고린도전서에서는 방언(하나님께)과 예언(사람에게)을 분리시킨다. 고전에서는 방언은 점점 열광주의적이 되어서 알아들을 수 없으나 사도행전에 경우에는 알아들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방관자에게 해당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첫째로 전경연은 고린도전서가 행과 비교하여 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한다. 즉 행 저자 누가가 얻은 자료는 바울계의 사람으로 보고 있다. 둘째로 사도행전 2: 1-13과 뒤에 베드로의 설교가 일관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베드로의 설교는 방언현상의 해명이 아니라 바울의 설명대로(14: 19, 22) 한다면 이성적으로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예언의 설명이다.

2) 로마서 8장 25-27절에 “성령의 신음”에 대해서 케제만은 방언현상에 관련된 것으로 보며 스텐달도 성령의 신음이 방언의 문제에서 생긴 곤경을 말한다고 본다. 로마서 8장의 문맥에 따라 바울의 해석은 하나님의 영광의 위대함을 찬양하다가 그것이 고통스런것인가를 반성함으로 신음할 때 성령으로부터 오는 도움을 발견한다. 그것이 성령의 표현할수 없는 신음의 소리로 방언의 표현할수 없는 소리를 가르킨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이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사랑의 은사로 제한받고 의미를 찾도록 했다는 것이 바울의 특징으로 본다.

3) 사도행전에서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교회가 단지 자연적 인간들(갈릴리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적 역사를 증거하는 성령의 사회이며 능력있는 그리스도 증언의 추제로서 선교의 열성을 일으키는 새로운 내용임을 나타낸다.

3. 사도행전 2: 6-11과 고린도전서 14장 사이의 종교사적 연관

성령체험의 종교사적 연관으로 방언 현상을 살피는데 고전14: 28의 바울의 설명은 외국어를 말하는 종류로 보되 해석하는 것은 외국어의 소양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로 의한것이라 한다. 여기서 성령체험의 공통된 것으로서 방언을 말하는 자와 해석하는 자 사이에 관계를 전제한다. 오순절사건에서는 영감이 특정 예언자의 개인의 행동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신적 내용으로 보나 고린도전서의 성령체험의 종교사적 의미는 방언이 보편화할 수 없는 개인적 감응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즉 두 비교에서 열정적 황홀경으로서 공통점이 있으나 결과는 다르게 본다. 즉 성령의 주된 역할은 신앙고백에 있는 것으로 본다. 바울은 교회의 예배와 선교에서 이성으로 하는 찬미와 가르침을 높은 영의 은사라고 보았다.(14: 15- ) 이것을 배격하고 방언만을 유일한 신비성의 표징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한다. 교회가 선교에 대한 자세로서 개성의 각성과 성장에 의하여야지 초자연적 요소를 강조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확실하게 성서의 주장의 근거를 교육시킴으로서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담당하여야한다.

<결론>방언은 종교사적 현상을 일반적으로 찾을 수 있지만 기독교 교회안에서 인정되고 신학적 내용을 가질려면 원시교회의 태동인 오순절 사건에서 말하는 방언과 비교하여야 한다. 오늘날 일상적인 교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방언은 오순절과는 차이가 난다.

<평가>원시교회의 성격을 특징짓는 것으로서 오순절의 성령강림의 사건을 기준으로 삼는데 과연 2000년 기독교역사에서 오순절의 성령강림이 교회의 기준으로 신학으로 자리를 잡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Ⅴ. 일곱 지도자들의 선출(행 6: 1-7)

A. 스데반의 연설과 순교(전 76-107)

<문제제기>스데반의 연설에서 신학적 특성이 무엇이며 스데반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전개>연설과 스데반의 순교는 독립적으로 본다. 연설과 고소는 불일치성을 보여준다. 연설에서 저자의 의도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안에서 추진됨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시성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키고 있다. 스데반의 순교의 배경은 성전예배의 폐기문제였다.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몰라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에 구애 되어 하나님은 떠났다고 논증함으로 성전의 한정된 예배에서 떠나 하나님이 있는 곳은 어디서나 거룩하다는 것을 주장함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현현이 이제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을 넘어 사마리아 이방에까지 확장되어 가는 성령을 거슬렸다는 주장에서 전경연은 그의 순교와 관련성을 살피고 있다.

<결론>유대교의 격렬한 반대가 있음을 보여준다.

<평가>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성을 보여주고 있다.

B. 연설과 누가의 역사기록(전 207-235)

<문제제기>누가 기록의 방법은 목적은?

<전개>구약의 역대기 작가들은 연설을 자주 삽입하는데 그것들은 역사에 대한 주석으로 사용하였다. 저자 누가는 역사기술의 특성의 하나로 역사과정의 원인과 의미는 하나님의 의지와 행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선교의 역사가 세상의 권력자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 같지만 사도들의 손에 그 모든 것이 맡기어 졌다는 것이다.

<결론>저자의 요약과 역사기록의 목적이 하나님의 경륜(2: 23; 4:28; 20:27)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서 하나님의 의지의 실현임을 강조한다.

<평가>사도행전의 방향성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Ⅵ. 바울의 회심(행 9: 1- 19) 바울의 회심(전 151-181)

<문제제기>회심에 기사는 신학적인 면이 있고 바울의 신학을 방향정한 결정적인 사건으로 전경연은 보기에 바울의 회심을 살핌으로서 그의 신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고 본다.

<전개>사도행전의 세 보고서에 나타난 회심은 저자 누가의 신학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서 바울의 회심을 초 자연적 계시로(소명으로) 까지 보고 있다. 바울의 회심은 바울서신서가 더 바울적으로 본다.

<결론>결론적으로 서신과 사도행전 사이에서 회심 후에 행방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하나로 편집할 필요는 없다. 바울의 말을 더 신임하여야 하지만 사도행전에서 저자는 바울을 잘 이해하여 신학적(소명사)으로 회심을 표현함으로서 바울 선교신학의 방향성을 나타냈다.

<평가>사도행전에서 회심의 관점은 바울의 관점이 아니라 저자 누가의 관점이고 그 관점 안에 다메섹 교회의 관점이 있다고 말하였기에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회심만을 가지고 바울 신학 전부를 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사도행전 안에서만 논할 수 있는 것 같다.

Ⅶ. 베드로의 회심(행 10: 9 - 16)

A. 사도행전의 설득방식(유 94-112)

유상현은 사도행전의 저자가 독자를 설득하는 방식에서 가시적 구상화 부르면서 저자의 의도를 살피고 있다. 표현방식이 시각적 청각적인 다채로운 이야기로 전달하고자 한다. 행1: 9-12의 승천의 모습과 2: 1-13의 오순절사건 등 저자는 사도행전의 사실적이며 회화적인 묘사기법으로 저자가 의도한 것으로서 첫째는 모자이크적인 단편적 이야기들을 실감나는 이야기로 구상함에 있어서 회화적 이미지를 사용한 약속의 성취를 완만한 흐름으로 보여줌으로써 구속사적인 구약역사의 연장선상에서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하심이 계속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둘 째 단순한 개념과 사건을 사실적이면서도 회화적인 생생함으로 표현한 사도행전의 묘사방법은 독자의 내면에 과거 사건이 입체적 진실로서 재생될 수 있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저자는 초기 사도들의 선교행적과 공동체의 사건이 생동감 없는 이미 죽은 사건의 기록들이 아니라 가시적 구상화의 설득방식을 통해 당대에 살아 있던 지도자들의 체온이 담긴 살아있는 기록임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이 글을 접하는 독자들이 이러한 기록의 한계를 벗어나 자신의 현실에 받아들이고 현재화하여 독자로 하여 금 사도들의 선교역사의 분깃에 동참하게 하고자 원하는 저자의 미래적 깊은 생각을 담고 있다고 유상현은 설명하고있다.

B. 사도행전의 저작목적의 토론상황(유162-197)

1. 저작목적토의를 위한 서론적 고찰---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교회와 유대인들이 지배를 받던 시대에 이같은 역사적 상황에서 사도행전의 저자는 지나간 사건들을 신학적으로 해석해야하며 구속사적인 자리를 차아가야했다.

2. 구속사적 설명---구속사와 관련하여 누가가 구속사를 구상하게된 주 원인이 과연 재림의 지연에 있는 지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고 다만 재림의 지연이 이러한 구상을 하도록 어느 정도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사실이라고 유상현은 말한다.

3. 선교와 교화의 목적--- 몇몇 학자는 누가가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넓은 의미에서 복음전파 즉 선교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헨첸은 이러한 선교적 사명을 기록하는 것은 그 시도 자체가 신앙의 깨우침과 강화를 위한것이라 마침내는 이 구원이 구체적 실현을 위해 도움이 될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누가는 독자들에게 지나간 일들의 내적인 의미를 알게하고 작품속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진리에 관해 잊을수 없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서 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했으리라는 주장을 한다. 윌슨은 재림과 관련하여 목회적 성격을 강조한다.

4. 신학적 이유--- 뒤퐁은 누가가 복음 메시지의 확장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채용하는 관점은 단순한 연대기적 관점이 아니라 독특한 신학자의 관점이라고 본다. 그에 의하면 누가는 이방인 선교가 단순히 우연한 상황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따른것이며 메시야가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리라는 예언의실현이라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누가는 예수의 삶에 관한 서술(복음서)에 사도들의 선교에관한 서술(사도행전)을 덧붙이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기술하고 있는 이야기는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다.

5. 호교론적 이유--- 정치적 호교론에 국한하여 누가의 작품을 유상현은 말하고 누가 저술의 전체를 일관되게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6. 결론적 언급--- 저자의 저술 의도가 오직 하나 뿐이라는 이론을 배제하며 가스끄가 말한것처럼 누가가 글을 쓰게된 동기는 여러 가지 다양한 관심과 고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으리라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Ⅷ. 안디옥 교회(행 11: 19- 26)

A. 이방선교의 출범(전 108-133)

<문제제기>행 저자 누가는 이방선교의 시작을 스데반의 순교의 여파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저자 누가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에서는 저자의 말과 자료의 사용한 것의 구분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화마다 저자의 관심의 초점이 어디에 있으며 또 사용된 자료의 초점이 어딘지를 찾아봄으로서 저자의 이방선교의 대한 역사와 일관적인 신학적 관점을 찾을 수 있다고 전경연은 보고있다.

<전개>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의 순교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찾을수 없는 유대교의 승리를 보여준다. 하지만 빌립과 사마리아 선교와 에디오피아의 회심은 널리 예수의 복음이 퍼졌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예루살렘(사도)과 연관성을 나타내며 결정적으로 고넬료의 회심과 베드로의 회심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세우는 동시에 유대교의 관습을 물리치는 것으로 앞길을 새롭게 제시하는 예루살렘의 선교정책의 전환점이 되었다.

<결론>이방선교의 시작은 스데반의 죽음의 여파지만 이것은 유대교의 공격이었다. 예루살렘의 원교회는 유대교의 공격에 속수 무책이었지만 이방선교로 답이 주어졌고 결국 유대교의 공격에서 승리를 보여주고 있다(사도회의). 하지만 그 과정은 분파적(시몬과의 대결, 이디오피아인 등)으로 나가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빠른 시간 내에 순교의 자리인 예루살렘에서 승리(사도회의에서 유대교의 정신을 몰아내는 것)를 그리고 있다.

<평가>저자 누가는 이장에서 이방선교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고 동시에 선교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선교신학적인 의미를 동시에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 기준은 여전히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리워지면서 안디옥의 대한 이방선교의 신학이 나타나는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B. 사도행전의 기도(유113-140)

<문제제기>성령이 선교의 과정 전체에 개입하여 활동하는 능력으로 사도행전에서 나타나지만 초기 선교사를 파송하는데 제일먼저 기도로서 또한 여러 선교의 사건에서 기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저자 누가가 중요시 한 사도행전에서 기도를 살펴보자.

<전개>사도행전에서 열두 사도의 충원, 오순절과 최초 예루살렘 기독교 공동체의 성립, 일곱 지도자선출, 사마리아 지역선교 베드로 고넬료 집안 전도 등 사도행전의 기도는 목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 집단적 기도 모여서 기도하는 특성을 사도행전에서 보여준다.

<결론>기도가 삶으로서 사도행전에서 기도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수단이며 인간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서 성령이었다. 누가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기도로 감당하기를 바라고 있다.

<평가>선교적 측면 목회적 측면에서 기도의 응답은 성령으로 주어지고 있다. 삶이 선교적이어야 한다.

Ⅸ. 예루살렘 사도회의(행 15: 23-29)

A. 사도총회 (전 134-150)

사도총회에서 결과로 나타나는 내용이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에서 차이는 어떻게 다른지를 살피는데서 안디옥 사건은 교회사의 큰 사건이라기 보다는 복음 이해에 대한 바울의 내면사의 단면으로 본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에서 사도총회는 역사성이 있음을 전경은은 바울서신과 비교하면서 주장한다.

B. 사도행전의 야고보 (유 69-93)

누가가 의도적으로 야고보를 감춘 것으로서는 누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유상현은 야고보의 영향력이 예루살렘 중심으로 유대적 기독교의 영향력이 살아남았던 것으로 야고보서를 증거로 삼는다. 그래서 야고보의 역사적 실체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고 사도행전에서 저자 누가가 축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인 야고보를 뺀다는 것은 초대교회의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 빠지기에 생략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Ⅹ.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행 17: 22-31) 원시기독교와 바울(전경연)

<문제제기>여기에서 바울의 아레오바고 연설이 문제된 것은 사상이 너무 헬라적이고 범신론적이어서 과연 바울의 신학이나 성서적 계시 관념과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어왔고 이것을 살핌으로서 연설자와 저자 누가의 의도를 알아보자.

<전개>먼저 사도행전은 저자의 역사기술의 따라 연설이 주어져있다는 것이다. 본문을 분석하는데서 아레오바고 연설은 자연신학적이라기 보다는 창조신학적이라 말한다. 그러면서도 “손으로 만든” 신전에 거하지 않는다는 것과 또 하나님은“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에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는 것도 이교도의 종교심을 비판하면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27절에 찾으면 만난다는 것이 자연적 신인식이기보다는 인격적 의미의 가까이를 성서는 말하면서 각 사람에게 하나님이 있다는 것으로서 사제(중보)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만 “그를 힘입어 산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절대시함으로 계시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접근성은 예수에게 계시되었다. 전경연은 계시성을 변호한다. 현재를 전환점으로 하는 것은 누가의 특징이며 바울도 “지금”(롬3: 21)을 전환점으로 지시했지만 실존주의적인 결단의 때를 말한다기보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근거로 하는 “믿음으로 되는 의롭다 하는 인정받음”이 중심에 있다. 누가는 미래의 심판을 전망하면서 회개하는 지금을 말하고 예수의 부활을 믿음의 길을 여는 하나님의 준비라고 하는 것은 바울적인 견해로 30-31절을 결론으로 전체연설에 초점으로 본다. 부활은 그때 당시에 다른것과 가장 대립적인 것을 보여주며 한 연설로 본다면 자연계시사상이 아니다라는 점을 전경연은 해결되는 것으로 본다.

<결론>이 연설은 누가의 문체요. 그의 역사기술을 조명하는 삽화이다. 즉 저자가 바울의 아덴 방문을 어떻게 할것인가에서 이 연설이 바울이 복음선포와 거리가 먼 헬라적 스토익적 사상으로 채워져 있다는 평이었는데 이 헬라적 철학적 색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화의 접촉점을 제공하는 선교설교이다라고 전경연은 논함으로서 자연계시와 헬라적 스토익적 의문을 해결하였다. 전경연은 설교자가 이교의 것을 사용한 지혜이지 바울의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보며 이것은 선교연설이지 변명연설이 아니다라고 한다.

<평가>아덴은 헬라 문화중심지로서 불후의 철학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활동무대로서 기독교 복음과 만난다는 것은 사도행전저자에게서는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기독교종교적 우월성을 바울을 통해서 나타냈다.

Ⅺ. 바울의 재판(행26: 1: 32) 바울재판의 의미(유198- 231)

<문제제기>유상현은 바울 재판이 역사사건의 전개인지 저자의 창작의 의한 문학의 산물인지를 먼저 살피고 있다.

<전개>그러나 유상현은 단정하기를 역사적 사건을 기둥으로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신학적 역사로 구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론>바울 재판의 최종적인 결말은 재판 자체라기보다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로마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학적인 의미의 부과는 바울이 유대교에 최고 통치기구인 산헤드린에 고소되지만 그가 유대교의 권위를 벗어나 로마의 이방인에게로 재판을 받음으로서 이방인에게로 복음이 전해지는 것으로 이제 기독교는 유대교를 떠나 보편적으로 기독교를 변호하면서 이방인에게로 향한 것을 보여준다.

<평가>저자 누가는 계속하여 신학적인 의도를 살려나가고 있다.

Ⅻ. 로마에서 바울(행 28: 23-31) 사도행전의 결말해석(유 232- 251)

<문제제기>유상현은 사도행전의 결말부분에서 바울재판의 결과와 끝부분의 저자가 진정 의도한 결말이었는지를 묻고 있다.

<전개>사도행전의 기록된 시기로서 80-90년대에서 저자는 60년대의 바울의 기록을 한 것으로 보기에 사도행전이 로마권력으로부터 호의적 이미지를 손상시키게 하기보다는 저자 목적과 부합되지 않을 어색한 내용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 적당한 대목에서 이야기를 중단시켰다고 본다.

<결론>유상현은 저자가 구속사 전개의 한 복판에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보이는데서 사도행전의 결말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로 보고 있다.

<평가>저자의 의도성이 사도행전에 다분히 있다는 것으로서 역사서로서 신학적으로 의미를 깊이 있게 살려서 해석을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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