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역사 7월25일
역사 속 오늘, 대한제국 광무 11년, 1907년 7월 25일,
'대한매일신보'에 '헤이그 밀사 사건'이 처음 보도됩니다.
고종황제의 퇴위까지 연결된 이 사건은,
우리 역사에서 여전히 '답답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밝혀진 사실을 중심으로 정리해 봅니다.
만국평화회의보, 사진 왼편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 1907년 7월 25일 @조선일보DB
우리 특사들이 파견된, '만국평화회의'는 국제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전쟁 법규 등을 정리하려고 만든 국제회의입니다.
최초 제안자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Nicholas II, 1868~1918).
그의 제안에 따라, 1차 회의가 1899년 5월에 개최됩니다.
그리고 2차 회의는 '러일전쟁'으로 인해,
애초 계획보다 1년 뒤인. 1907년 6월부터 개최됩니다.
제2차 만국평화회의 1907년
6월 15일 ~ 10월 18일, 네덜란드 헤이그
당시 상황을 한번 보겠습니다.
일본은,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국제사회가,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을 묵인하도록 각종 외교활동을 펼칩니다.
그리고는 1905년 11월 17일, 일본군의 덕수궁 포위 속에,
고종과 대신들은 서로 '책임회피'를 하고.... 이 와중에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됩니다.
'고종이 서명을 하지 않았다'라고는 하지만, 을사늑약 당시,
대신들은 '고종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했고,
고종은 '대신들이 협의해서 하라'고 했답니다.
여러 기록들을 보면, 고종은 늘~ 스스로 결정하는 법이 없이,
'대신들의 뜻이 그렇다면 윤허한다'는 식의 정치를 했다고 합니다.
나라를 잃어버리는 상황에서도 그러했던 모양입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와
러시아제국 니콜라스 2세 황제
이때,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가 비밀리에
'만국평화회의'의 초청장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무효를 주장하기 위해 이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기로 합니다.
이에 대해, 최근의 연구는, '러일전쟁에서 패배하고,
혁명세력으로 국내 정세가 불안한 러시아가, 외교적 방법을 동원해,
일본의 확장을 막고 러시아의 이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고종을 끌어들였다'는 말도 있네요.
◈ 오늘의역사 7월25일◈
🌲20년 오상순 염상섭 변영로 등, '폐허' 창간
🌲21년 안용도가 지휘하는 의용대가 흥원군을 습격 하여
일본군과 교전 : 일경 2명 사살함.
🌲22년 전국 기자연맹 결성
🌲39년 경춘선(성동-춘천) 철도개통
🌲44년 신임 총독에 아베 노부유키 임명됨.
🌲46년 좌우합작위원회발족(김규식·안재홍·여운형 등)
🌲54년 이승만 대통령 미국방문(∼8월13일) 한국군 20개 사단 증강 요청
🌲55년 美 극동지상군 사령관 및 8군 사령부 서울로 이전 결정,
美 사령관에 화이트 대장
🌲64년 한국 최초의 국악 관현악단 설립
🌲68년 문화공보부 정식 개청
🌲69년 박정희 대통령, 7.25담화 발표(개헌 표결로 신임 묻겠다)
🌲69년 닉슨 미대통령, 아시아 국가 부담을 강조한 '괌 독트린' 발표
🌲70년 한ㆍ미, M16소총 공장건설 차관 합의
🌲70년 남산 어린이회관 개관
🌲77년 브라운 미국 국방장관, 박정희 대통령에 카터 대통령의 친서 전달
🌲77년 노조탄압 항의 집회중인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
작업복을 벗고 알몸으로 경찰의 강제 해산에 항거.
🌲81년 니혼케이자이신문(일본경제신문),
한국이 60억 달러의 차관을 일본에 요청했다고 보도
🌲81년 경제기획원, 외국기업의 국내 투자문호를 확대.
427개 업종에 외국인 투자를 허용
🌲84년 대낮 러브호텔 투숙 급증-재미교포가 고발 투고
🌲84년 박종규 대한사격연맹 회장, IOC위원에 피선
🌲85년 정부·여당, 폭력·좌경화에 제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학원안정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결의
🌲85년 경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월간 '민족문학 5' 압수
🌲86년 경주 용강동 고분에서 국내 최초로 토용 발굴
🌲89년 평민당, 서경원 의원의 밀입북시 김대중 총재의 대북 친서
전달설에 항의,- 무기한농성에 들어가
🌲89년 영 호남에 집중 폭우-태풍 주디 상륙 인명피해 113명 이재민 5만2000명 발생
🌲89년 서문여고 교장 요청으로 고교 첫 경찰투입, 전교조 가입교사 18명 연행
🌲90년 정원식문교부장관, 부산대학교 방문,
부산대생 150여명의 출입구 봉쇄로 4시간 10분 동안 갇혀.
🌲90년 정부, '군비통제기획단'을 대통령 외교안보 보좌관 지휘 아래 두기로 확정.
🌲90년 한국은행, 아시아 신흥공업국(NIES)들이 빠른 속도로
우리나라를 추격하고 있다고 분석.
🌳91년 한.미, 유사시 한국에 파견될 미군 증원군 군수 지원 사항을 담은
전시 접수국 지원협정안에 가서명
🌲91년 건대, 부정입학 사건-성균관대 이대, 이사장 총장 교수 쇠고랑
🌲91년 동력자원부, 2001년까지 전국에 원자력 발전소를 포함,
모두 60기의 발전소를 건설키로.
🌲91년 춘천 과 포천 등지에 최고 308.5mm까지의 폭우가 쏟아져 1
1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
🌲92년 교차로 3중 추돌 참사-경남 산청 산청읍 승용차- 관광버스-트럭
🌲92년 서울에 도착했던 북한 김달현 부총리는 6박 7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판문점을 거쳐 평양으로 귀환.
🌲92년 한국대표선수단 319명(선수 272명.임원47명) 스페인 바르셀로나
제25회 하계올림픽에 참가.
🌲95년 서울지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설계.시공 및 유지관리상의
결함이 복합적으로 작용-수사결과 발표
🌲95년 정부, 연변에서 선교활동 중 안승운 목사 (여의도 순복음교회) 납북 발표
🌲96년 신한국당, 해외동포 및 자녀들의 한국방문과 현지 문화행사 등 지원
`해외동포재단'을 설립키로
🌲96년 공노명 외무장관,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자카르타)
🌲96년 북한, 미국에 대해 남북한 경계선에서의 충돌을 방지할
협정체결 촉진 위해 군사접촉 채널 구축을 제의
🌲98년 군당국, 북한이 남침용 땅굴 21개를 군사 분계선 남쪽을 향해 파고 있으며
7개는 위치를 파악 시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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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7월25일: 청일전쟁 발발
조선의 갑오개혁 배경이 된 청일전쟁 시작,
한반도가 전쟁터로 전락.
일본의 승리로 을미사변·을사늑약으로
이어지는 식민지화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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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25일: 여순사건 군 철수
1948년 반군 사건 진압 후 주둔한 군대가
한국전쟁 영향으로 완전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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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25일...의정부 경전철 구조물 붕괴 사고
2009년 7월 25일 오후 의정부 경전철 제2공구 공사현장에서
대형 철골구조물 이 무너져 김모씨 등 한국인 인부 3명과
베트남 출신 외국인노동자 2명이 숨지고,
한국인 5명, 중국동포 1명, 베트남인 2명 등 인부 8명이 부상했다.
이 사고로 죽거나 다친 인부들은 그동안 공사현장 인근에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만든 숙소에 머물며
월 120만~200만원 안팎을 받고 밤낮없이 일했다.
이날 오후 7시20분쯤 의정부시 신곡동 드림밸리아파트와 부용천
사이에 건설 중이던 12m 높이의 교각에서 대형 철골구조물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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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후세인 요르단 국왕, 라빈 이스라엘 총리, 클리턴 미국 대통령.
▶1994년 이스라엘-요르단, 46년간 적대관계 청산 선언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1994년 7월 25일
워싱턴에서 양국 정상간 사상 첫 공식회담을 갖고
지난 46년간 지속된 해묵은 적대관계의 청산을 선언하는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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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7월25일우리나라 추상화의 선구자 김환기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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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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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25일..오상순 염상섭 변영로 등, '폐허' 창간
한국문학은 20세기 현대사의 구조적 모순을 비유와 상징의 언어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사실, 해방공간을 견뎌 낸 한국문인들의 창작(創作)과 절절한 체험은
세계문학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국권(國權)을 잃었고 말과 글,
이념과 풍속의 갈등을 겪었으며 해방 후 동족상잔(同族相殘)과 전쟁,
여기다 가난과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의 세례를 압축적으로 체득(體得)해야 했다.
지금은 폐간된 옛 잡지를 펼쳐보면 시대를 풍미한 당대
문인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살아 숨을 쉬고 있다.
때론 궁벽하고 구차하며 의뭉스럽지만 현대사를 버텨 낸 ‘민얼굴’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지금은 기억조차 바랬지만, 시간의 먼지를 탈탈
털어내 문인들의 실화(實話)를 발굴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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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7월 25일 프랑스 소장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국내 고문서와 맞교환 하기로 합의
2000년 11월 9일 덕수궁 앞에서 연세대 조하현교수(왼쪽)를 비롯한
대학생들이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요구하는 항의집회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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